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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퀴터 Nov 05. 2022

일본에서 밴드 동아리를 그만둔 이유

성희롱이 판치는 성진국


나는 같은 밴드 멤버를 비롯해 동아리의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친해지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열심히 이유를 찾으려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유 같은  없었다. 그냥 그들과 내가 맞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결이 맞지 않으니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불행히도  동아리의 70  누구와 대화를 해도 재미가 없었다.  일본어 실력의 문제는 아닌  같다. 내가 말을  알아들은 것도 아니었고, 하고 싶은 말을   것도 아니었다.


어찌어찌 공연은 한 번 참여했지만, 나는 동아리를 한 학기만에 그만두었다. 이유는 그들과의 대화가 재미없던 것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의 성희롱 문화였다. 일본 남자들은 선호하는 여자 가슴 사이즈 같은 이야기를 대놓고 한다. 오늘 처음 본 신입생 여자애 앞에서도 그런 류의 야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이다. 동아리 단체 라인(LINE) 대화방에도 야한 사진이 수시로 올라왔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 놀라웠던 점은 여자애들이 불쾌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불쾌해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여자력(女子力)’이라는 단어를 아시는가? 일본에는 여자력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높을수록 좋은 것이다. 여자력이 높아지려면 다음과 같은 것을 잘하면 된다. ‘여성스러운’ 옷, 즉 가디건에 치마 같은 옷 입기, 뿌리 염색을 적어도 한 달 단위로 하기, 매일 아침 완벽하게 화장하고 머리는 고데기로 세팅하기, 손톱은 예쁘게 다듬고 연핑크나 누드톤 색상 바르기(검은색 X), 큰 목소리 내지 말고 조곤조곤 말하기, 요리 잘하기, 다리는 물론이요 손가락이나 팔뚝 털까지 싹 다 제모하기… 이렇게 노력하면 여자력이 높다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 단어를 동아리 술자리에서 처음 들었다. 커다란 냄비에 나온 전골 요리를 어떤 여자애가 솔선해서 작은 그릇에 조금씩 담아 나눠주자 누군가 ‘여자력 높네!’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때 그 단어를 처음 들었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남의 나라에 간 이방인으로서 남의 문화에 기분 나쁜 티를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여자력 높다는 소리를 들은 장본인은 기뻐하는 듯했다. 나는 그냥 내 감정을 숨기고 불쾌감을 참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본 여성들을 계몽하지 못했다. 이방인인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동아리를 그만두는 것이 나았다.


수업 때 만난 여자애들도 졸업 후에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꿈인 애들이 많았다. 일본 여자들 사이에서는 그게 바로 인생의 승리라는 인식이 있었다. 돈 잘 버는 남자를 만나서 아기 낳고 살림하며 사는 것. 커리어를 중요하게 여기며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여자는 일단 인기가 없다. 일본 사회는 그런 여자를 ‘의식이 높다(意識高い)’는 말로 깎아내린다. 참 대단하시다, 뭐 이런 비아냥을 내포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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