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이 판치는 성진국
나는 같은 밴드 멤버를 비롯해 동아리의 뭇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친해지지 못했다. 내 무엇이 잘못된 건지 열심히 이유를 찾으려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냥 그들과 내가 맞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결이 맞지 않으니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불행히도 그 동아리의 70명 중 누구와 대화를 해도 재미가 없었다. 내 일본어 실력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내가 말을 못 알아들은 것도 아니었고, 하고 싶은 말을 못 한 것도 아니었다.
어찌어찌 공연은 한 번 참여했지만, 나는 동아리를 한 학기만에 그만두었다. 이유는 그들과의 대화가 재미없던 것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의 성희롱 문화였다. 일본 남자들은 선호하는 여자 가슴 사이즈 같은 이야기를 대놓고 한다. 오늘 처음 본 신입생 여자애 앞에서도 그런 류의 야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이다. 동아리 단체 라인(LINE) 대화방에도 야한 사진이 수시로 올라왔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 놀라웠던 점은 여자애들이 불쾌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불쾌해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여자력(女子力)’이라는 단어를 아시는가? 일본에는 여자력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높을수록 좋은 것이다. 여자력이 높아지려면 다음과 같은 것을 잘하면 된다. ‘여성스러운’ 옷, 즉 가디건에 치마 같은 옷 입기, 뿌리 염색을 적어도 한 달 단위로 하기, 매일 아침 완벽하게 화장하고 머리는 고데기로 세팅하기, 손톱은 예쁘게 다듬고 연핑크나 누드톤 색상 바르기(검은색 X), 큰 목소리 내지 말고 조곤조곤 말하기, 요리 잘하기, 다리는 물론이요 손가락이나 팔뚝 털까지 싹 다 제모하기… 이렇게 노력하면 여자력이 높다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 단어를 동아리 술자리에서 처음 들었다. 커다란 냄비에 나온 전골 요리를 어떤 여자애가 솔선해서 작은 그릇에 조금씩 담아 나눠주자 누군가 ‘여자력 높네!’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때 그 단어를 처음 들었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남의 나라에 간 이방인으로서 남의 문화에 기분 나쁜 티를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여자력 높다는 소리를 들은 장본인은 기뻐하는 듯했다. 나는 그냥 내 감정을 숨기고 불쾌감을 참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본 여성들을 계몽하지 못했다. 이방인인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동아리를 그만두는 것이 나았다.
수업 때 만난 여자애들도 졸업 후에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꿈인 애들이 많았다. 일본 여자들 사이에서는 그게 바로 인생의 승리라는 인식이 있었다. 돈 잘 버는 남자를 만나서 아기 낳고 살림하며 사는 것. 커리어를 중요하게 여기며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여자는 일단 인기가 없다. 일본 사회는 그런 여자를 ‘의식이 높다(意識高い)’는 말로 깎아내린다. 참 대단하시다, 뭐 이런 비아냥을 내포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