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에 대처하는 공동체의 자세

비행기 참사를 목도하며

by 쿼카링

평소 비행기 탑승을 꺼리는 편입니다. 청소년기에는 별생각 없이 타고 다녔는데, 성인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 추락에 대한 공포가 마음속에 스멀스멀 올라와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착륙할 때 가장 긴장이 되고(대다수의 사고가 이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한창 운항 중인 기체가 흔들리기라도 하면 심장이 떨리고 마음이 아득해져, '아무 일 없이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공항에서 희희낙락하고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 다독입니다. 그래서 알코올을 제공하는 비행에선 재빨리 한 잔 들이켜고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2024. 12. 29. 제주항공 2216편 여객기가 착륙 후 활주로를 이탈하여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둔덕에 충돌한 결과, 승객 175명 전원 및 승무원 6명 중 4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였습니다.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아 동체착륙을 시도하였으나 충분히 속도를 줄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 사고를 접했을 때는 생존율이 낮은 비행기 사고에서 2명이나 구조되었다기에 큰 사고가 아닐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는데, 이내 사고 영상을 보고 나서는 탄식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구조된 2명은 그야말로 천운이었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비행기 탑승을 저어하는 만큼 사고 직전 희생자들은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상상하며 몸서리쳤습니다.


이러한 비극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은 공동체에 전염됩니다. 공동체에 스며들어 구성원들을 절로 침울하게 만들고, 사회 분위기를 가라앉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비극 앞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 비극을 잊고 없는 일처럼 취급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일시적으로 기분을 환기시킬 수는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공동체를 좀먹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비극 앞에 경악하는 이유는 그것이 완벽한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운명의 여신이 변덕을 부렸다면 얼마든지 나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불운하게 결말을 맞이한 이들의 처지에 공감하며 그 주변인들이 다시금 일상을 찾아가기를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저는 비극에 대하여 우리가 기억할 것이며 추모하고 있다는 의사를 외부에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공동 분향소가 마련되면 이를 방문하든지, SNS 프로필을 추모하는 내용으로 올리는 것과 같은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이런 행위를 비교적 가볍게 여겼습니다. 추모하는 카톡 프로필을 올린다고 희생자 가족들에게 그런 마음이 전달되는 것도 아니고,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하등 도움 될 것 없는 행위라고 생각했으며, 일종의 관심종자나 '내가 이렇게 사회문제에 관심 있다'는 것을 표출하려는 것 아닌가 다소 냉소적인 태도까지 지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을 달리합니다. 내가 공동체의 비극에 가슴 아파하고, 모두가 이를 극복하기를 기원한다는 마음을 외부에 표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으레 남들도 마음속으로 추모하고 있겠거니 생각하지만, 이를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크게 다릅니다. 인터넷으로 초연결시대가 되었다고, 지구촌 시대가 열렸다고 자축하지만, 실은 한 꺼풀만 벗겨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공동체는 생각보다 취약합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국가, 신화, 종교 등을 '상상'함으로써 단합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발전을 거듭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상상력에 금이 가는 순간, 믿음에 금이 가는 순간 공동체라는 허상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내려 갈 수 있다고 봅니다. 개인화, 파편화되어 분절된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러한 표현을 서로 공유하며 비로소 아직까지 우리가 타인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음을, 서로를 생각하는 하나의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소속감은 장기적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초석이 됩니다. 사족을 달자면, 심리적으로도 그냥 넘어가기보다 무언가라도 추모의 마음을 표출하는 단계를 밟음으로써, 마음의 빚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극에 대처하는 공동체 구성원의 두 번째 자세로, 겸손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비극의 희생자들을 숫자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면면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들의 이야기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평범한 일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겁니다. 앞서 언급한 취지와 마찬가지로, 그저 우리는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왔고, 그들은 뒷면이 나왔을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은 마치 여리박빙(如履薄氷)과도 같은 것 아닙니까! 이런 깨달음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으로 소중한 것일지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나아가 내가 가진 이기심이 얼마나 하잘 것 없는 존재인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 게 좋을지 재고하게 만듭니다. 나의 하루를 조금만 더 겸손하게 생각해 보면, 한층 가볍고 너른 마음으로 남들과 기분 좋게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을 단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시민 공동분향소를 다녀왔었습니다. 시청 역을 나오는 순간 커다란 얼음 스케이트장이 펼쳐져 있어, 그 뒤에 가려진 분향소를 발견 못하는 바람에 약간 헤맸습니다. 처음엔 추모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시설이 코앞에 설치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조문하고 나오는 길에 스케이트장에서 깔깔대며 움직이는 아기들의 얼굴을 보니, 세상이란 게 원래 이런 것인가 싶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시시각각 교차하는 가운데 산 자는 삶을 좇고, 죽은 자는 점차 기억에서 옅어져 가는 것.


추모의 마음을 아무리 숭고하게 포장하더라도, 조문을 하는 마음 한편에 제가 비극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일말의 안도감이 없었다고는 자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공동체 구성원은 이웃에게 닥친 비극에 대하여 약간의 마음의 빚을 짊어지되, 여기에 익사하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2025. 1. 29.(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인근 공항에 접근하던 여객기가 미 육군 헬기와 충돌 후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여객기에는 승객 60명과 승무원 4명이, 헬기에는 승무원 3명이 탑승 중이었다고 하고 생존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부디 더 이상 사회적 참사 없는 한 해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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