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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Jan 26. 2024

우울하지만 역동적인 세기말의 음악

블러 End of a Century에 대한 해석

  자신만의 추억을 담고 있는 음악 한 두개 정도는 다들 있을 것이다. 누구나 아는 히트곡부터, 본인만 아는 특별한 곡, 때로는 영화 OST로 사용된 곡까지. 어떤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 곡을 들을 당시의 기억까지도 머릿속에서 빠져나와 그 당시로 돌아가는 듯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온라인이나 사람을 직접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생각보다 이런 연상 작용이 꽤나 일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 듣고 있는 음악을 연결지어서 생각하는 것에 그다지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과거의 기억은 기억대로 생각나고, 현재 듣고 있는 음악은 그 음악 자체로 음미하고 느끼고 분석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지만 몇몇 음악은 예외가 있는데 바로 밴드 blur가 그렇다.


  밴드 블러는 다들 다분히 영국적인 밴드라고 말하곤 한다. 보컬 데이먼 알반의 특유의 영국 억양이 매 소절마다 감출 수 없이 드러나고, 대부분의 곡마다 담겨있는 우울하고 우중충한 뉘앙스는 영국의 흐린 날씨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어떤 아티스트들은 우울함 그 자체를 말하는 음악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라디오헤드)하지만 블러는 그러한 경우는 아니다. 블러의 경우 타고나고 감출 수 없는 우울한 감성을 유머나 냉소로 승화시키려고 한다. 대개는 깃털보다 가볍게, 어떤 때는 그들만의 낙관주의로 블러는 우울한 세상 안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보다 높은 차원으로 풀어낸다.


  나는 우울하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에 블러를 즐겨듣는 한 명의 대학생이었다. 전공 강의를 들으며 공책 한 페이지의 필기도 하지 않을 정도로 집중하지 않았고, 혼밥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집에 갈 시간만 기다리다가 막상 집에 오면 하는 것이라고는 컴퓨터를 켜놓고 인터넷 세계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인터넷 세계의 피상적이고 비실용적인 지식들을 흡수하며, 마우스를 딸깍거리고 있을 때 공허하고 의미없는 시간들이 그저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런 우울한 시간 속에서 느낌표로 다가왔던 것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블러의 우울하지만 생동감있는 음악들이었다.


And we all say Don't want to be alone

우리는 그리고 모두 혼자 있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We wear the same clothes Because we feel the same

우리는 똑같은 옷을 입어. 왜냐하면 똑같이 느끼기 때문이야.
And kiss with dry lips When we say goodnight

그리고 마른 입술로 키스해. 굿나잇이라고 말할 때
End of the century... it's nothing special

세기의 끝에. 그건 특별한게 아니야.


Blur - End of a Century


  블러가 말하는 말과 블러의 음악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와 악기가 캄캄한 방안에 비치는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우울감과 공허함은 우리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었다. 블러가 느끼듯 우리도 느낀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불편하고 우리를 해치는 곳이고, 세상을 사는 게 생각보다는 낭만있고 가치있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다는 것. 어쩌면 삶을 지속하는 것도 버겁다고 느낄 때가 많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차라리 세기말이었으면 한다. 세기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의 세상이 한 세기로써 마무리된다는 것과, 다른 세기의 시작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그다지 새롭지 않으면 어떠랴. 그 기대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는다면, 또 다른 단계로의 도약으로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터널의 끝에서 빛을 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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