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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Oct 01. 2024

발명가의 사랑 3

  고등학생이 된 예빈은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환한 표정을 지으며 밝게 말한다.


  "와 명석아 너 진짜 오랜만이다"


  나는 그런 예빈을 그저 바라보다가, 반달 모양으로 웃는 눈과 하얗게 보이는 목을 보고는 시선을 떨어뜨린다.


  "나 있잖아. 그때 너가 도와준 이후로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


  예빈은 여전히 웃는 눈으로 턱을 내쪽으로 약간 향하며 내게 말한다. 오래 웃다보니 보조개가 드러났고, 무언가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을 할 때 턱을 약간 내쪽으로 치켜드는 것은 예빈이 가진 습관이었다. 예빈은 목덜미가 보이는 하얀색 가디건과 몸매가 드러나는 짙푸른색의 스키니진을 입었다. 다른 것은 그대로였지만, 옷에서 드러나는 여성스러움이 예빈을 돋보이게 했다.


  "아 그때라는 게 혹시 언제야? 혹시 병아리 아니면 벌?"


  예빈은 그 말을 듣고는 어깨를 약간 움츠리면서 벌이라고 말하고 크게 웃는다. 하하하.


  "있지. 나 그때 이후로 항상 너 생각 많이 났어. 너한테 정말 고마워서 뭐라도 해주고 싶었는데"


  예빈은 이렇게라도 나를 보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하고는 커피를 홀짝이더니 창밖을 본다.



  우리는 초등학교 4학년의 어느 날 국립중앙박물관에 현장학습을 갔다. 마침 내가 푸른색 병아리들, 줄리와 줄리 2호를 살리지 못해서 예빈이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은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내가 우물쭈물하며 자초지종을 말하자, 예빈은 조금 놀라더니,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명석아 괜찮아?"


  예빈이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듯 했다. 내가 예빈이 화를 낼 것을 예상하느라 풀이 죽어 있었는데 예빈은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그녀는 턱을 내 쪽으로 약간 들고 나를 보며 말했다.

 

  "명석아 많이 힘들었지. 괜찮아. 그리고 그런 일로 너무 기죽으면 안돼. 남자가."


  예빈은 팔짱을 끼더니 우는 거 아니지, 라고 말하며 내 얼굴을 조금 어루만져줬다.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 뭔가 말하며 뿌리치려고 했는데, 말이 잘 안나온다.


  "몰라"


  나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상해서 박물관 앞에서 선생님들을 대기하고 있던 아이들의 대열에서 이탈해서 멀리 가버렸다.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상처난 자존심을 조금 회복하고 생각을 정리한 뒤에 돌아오려고 했던 거 같긴 하다.


  "명석아 어디가"


  대열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나 나는 대충 박물관 관내의 지리를 알기 때문에, 내가 아는 곳으로 총총 걸어갔다. 한적한 곳의 벤치에 앉으려고 한 것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는데, 예빈이 나를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예빈이 더이상 따라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내가 아는 장소로 나아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디에선가 커다란 벌 한마리가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꺅"


  예빈은 외마디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예빈은 그 자리에서 어찌 할 바를 모르며 벌이 움직이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피하며 어떡해, 라고 말하며 울먹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어떤 마음에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예빈이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벌도 꽤 큰 것으로 보아 말벌의 종류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예빈에게 달려가 저쪽으로 도망가라고 손짓하며 말했다. 그리고 예빈이 있던 곳에 상체를 세우고 팔을 벌리고 있었다.



  "그때 쏘인 건 괜찮은 거지?"


  예빈은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며 물어보았다. 나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당연하지, 몇 년이 지났는데 흔적도 없어.


  "나 그때, 너가 쏘이면서도 알려준 거 계속 써먹고 있어. 벌이 오면 아무리 무섭더라도 주저앉아서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면 말벌들은 더 공격한다고. 그래서 있지 나는 이제 벌이 오면 전속력으로 달려서 도망가"


  하하. 달리기하면 또 예빈이니까. 나는 웃으며 말한다.


  "나 사실 고등학교 들어서 며칠전까지 육상부 선수였다. 그런데 이제 공부해야 돼서 더이상 안해"


  그리고는 예빈이 육상복을 입은 자신의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다리가 모두 드러나는 옷이었다. 나는 짧은 사이 집중해서 보다가 약간 넋을 잃을 것 같다.


  "내가 그래도 지역구 대표까지는 나갔었는데, 전국 대회에서 3등하고 더 수상한 적은 없어"


  나는 사진을 계속 쳐다보다가 예빈이 하는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다. 어, 그렇구나. 예빈은 어딘가 모르게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내게 질문을 건넨다.


  "혁준이하고는 아는 사이야? 너 학교 중퇴했다면서?"


  "응 나는 따로 꿈이 있어서 검정고시 얼마 전에 합격하고 수능 바로 준비하고 있어"


  "와 대단하다"


  예빈의 반달같은 두 눈이 약간 커졌다. 나는 예빈과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지금,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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