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 한국어는 어려운 언어지만, 이것만 알면 쉬워요. 그는 강의를 들으러 온 외국인들에게 곧잘 이런 말을 했다. 그 말은 강의실 현장의 분위기를 조금 더 유하게 만들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외국인들은 그 말을 들으면 하나같이 눈빛이 달라지며, 다음 말에 유심히 귀기울이는 듯 보였다. 그 역시도 그 말을 하면 아무리 거짓말같다고 스스로 생각하더라도,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으면 된다. 그는 모든 언어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그것을 철칙으로 삼는 사람 중 하나였다. 사실 한국어를 배우는 일은 만만치 않아서 하나둘씩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더라도 그는 기초부터 천천히 가르치기만 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기역 니은과 같은 철자를 가르치고, 그것들을 서로 조합하여 읽는 방법을 가르칠 때, 집중도와 호응도는 매우 좋았다. 그들은 마치 한글이라는 세계에 처음 발을 딛여 본 아기처럼 흥분하기도 하고, 실수를 해도 까르르 웃기도 했다. 한글로 된 문장을 멈추는 일 없이 읽어가는 외국인들을 바라보면 뿌듯했다. 그들이 그 문장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까다로운 문법들을 속속들이 깨닫거나, 표현을 변용해서 구사하는 일들에 아직 서툴다고 하더라도, 한글 문장을 끝까지 읽는 일은 선생인 그 자신에게도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또한 자신은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이미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계속해서 다시금 배우고 깨닫는다는 마음을 받았다. 그러나 강의의 중반부를 향해 가고 있을 때, 언제나 집중도는 점차 줄어들었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부터 강의 과정이 중간을 지나갈 때부터 마음가짐을 가지런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그는 자신의 강의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일들을 한번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는 정이 많고 다정다감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외국인들 한명 한명의 이름을 외우고, 어디 나라 어떤 지방에서 왔는 지에는 충분히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가르치는 내용과 방법은 그가 처음 다녔던 국비지원 학원에서 배운 것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예를 들면, 그가 외국인들의 문화와 언어가 서로 다를 수 있으니, 꼭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라는 원칙을 들었기 때문에, 그대로 따랐다. 그 밖에 교재의 내용에 충실하라거나, 강의를 이끌어나가는 강습법, 아랍권 문화 여성들을 존중하는 방법들 역시 학원에서 모두 배운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는 어느 순간 이런 의문이 들었다.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며 어려움에 계속해서 직면하는 것처럼 나도 그러지 않으면 점점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그들과의 괴리감을 느끼지 않을까?" 그가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계기가 있었다.
그가 여느 때와 같이 강의를 진행하고 있던 따사로운 초여름의 오후 때였다. 그날 교재에서 진행하게 될 내용은 자신의 롤모델에 대해 한국어로 이야기해보는 것이었다. 간단하고 활용하기에 좋은 한국어 회화 문장 몇 개를 배우는 시간이 지나고, 그는 한국어 문법에 대해서 자세하고 차근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의는 순조롭게 흘러갔고 학생들은 너도 나도 입을 열어 한국어를 발화하고 익히는데 집중했다. 목소리가 큰 중국인, 억양이 특이한 이탈리아인, 밝은 색상의 히잡을 두른 튀르키예인, 웬일인지 조용한 일본인 등이 강의실에 착석해 있었다. 어느덧 강의는 중반부로 흘러갔다. 조금씩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간대이다. 그는 한층 몰입하여 강의내용을 따라가고 있었다.
다음 내용에 실린 것은 발음하기 어려운 문장들이 있어서 발화하기 어렵더라도 그 문장을 그대로 따라 연습하는 과정을 할 차례였다. (간장공장 공장장은… 이런 것을 잰말놀이라고 한다) 그가 일본에서 온 학생 한 명에게 시켰더니 곧 잘하는 게 아닌가. 예전부터 그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그는 일본 학생들이 발음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히 다른 학생들도 잘 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해왔다. 일본인들은 대개 한국어 발음에 상당히 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하고 엉거주춤 다음 수업 내용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그날 수업이 끝나고 많은 학생들에게서 질문이 있었다. 이 문장을 어떻게 발음하는 건지, 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인들이 각양 각색의 영어 억양으로 물어보았기 때문에 일일이 한명씩 영어로 답변해주느라 진땀을 뺐던 기억이 있다. 알고보니 그 일본 학생은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에 열광적인 팬이었고, 조용한 성격 뒤에 실력을 감추고 있는 능력자였다. 그야말로 한국어 발음의 귀재였던 것이다. 그는 선입견에 갇혀서 실수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결국 마인드를 고쳤다. 그는 이제 매일 오후 강의만 있는 날에는 짬을 내서 오전에 강의 연습을 한다. 카메라를 켜놓고 학생들이 있다는 상상을 하며 녹화를 하고, 2배속으로 돌려서 다시 본다. 약 20분간 메모지를 앞에 두고 피드백을 진행한다. 이 설명은 빼는 게 좋을 것 같고, 이 부분은 더 자세하는 게 좋겠고. 학생들과 주로 소통하는 언어인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매일 영어 책을 읽기도 한다. 하루는 그가 영어 책을 펼쳐 놓고 꾸벅 꾸벅 졸다가 엎드려 그만 잠에 빠져 들었다.
꿈에서 그는 학생들을 마주 대한다. 라트비아인, 예멘인, 마다가스카르인 등이 강의실에 착석해 있다. 그는 한글로 된 문장을 가르치고, 다양한 한국어 표현을 그들에게 소개하다가 목에 핏대가 도드라질 정도였다. 그는 이제 무대를 가로질러 걷다가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계단을 올라선다. 그 계단은 굴곡진 나선형으로 길게 이어져있다. 올라간 곳에 커다란 철문이 있었다. 그는 철문을 열어 젖힌다. 그러자 이제 그는, 다수의 청중들이 앉아있고 사진기 셔터음이 들리는 곳에서 영어로 연설을 한다. 또 영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영어로 유창하게 말하는 그는 강의를 마무리 짓고 대기실에서 차를 홀짝이고 쉬고 있다. 그러다 그는 일본인인 한 여자를 우연히 마주친다. 그는 그녀와 얼굴을 마주보고 질문을 건넨다. '일본어로 된 잰말놀이를 가르쳐 줄 수 있나요?' 하지만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큰 눈으로 그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의 팔목을 간지럽힐 정도로 그녀는 다가선다. 그녀는 부드럽고 따뜻한 손으로 그의 손을 붙들고 일어서서 발걸음을 옮긴다. 복도는 연달아 이어져 있다. 어디를 가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와 그는 서둘러 그들이 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빛 바랜 창문은 달빛을 통과시키고 있다. 어둡지만 고즈넉한 빛이 그녀의 얼굴을 희미하게 보이게 한다. 그녀는 기뻐하고 있거나 웃고 있을까? 아니면 슬퍼하고 있거나 당황할까? 의지에 차 있거나 두려워 할까?
차갑고 둔탁한 울림을 주는 발자국 소리가 멈추고, 그는 꿈에서 깬다. 그는 책상에서 발버둥을 치며 일어났다. 그가 얼마나 잤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강의를 시작해야 될 때이다.
하나라는 이름의 일본인 여성은 오늘도 자리에 앉아서 한국어 교재를 펼쳐 예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수업 중에 유난히도 그날따라 그녀와 눈이 많이 마주쳤다. 또렷하고 맑은 눈동자의 그녀에게서 마치 좋은 향이 나는 것 같았다. 그는 갑자기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고민하다가 결심이 섰는지 칠판 위에 무엇인가를 적는다. 꿈, dream, 夢 … 그는 설명한다. 이 세 가지 단어는 모두 밤에 꾸는 꿈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미래에 관하여 품는 소망이나 바람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어요. 그는 조용히 말을 고르며 설명했다. 아마도 이건 아무리 멀고 다른 나라의 언어더라도,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웅성거리던 학생들은 어느새 조용히 듣고있었다. 그러니 여러분, 언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 너무 어려워만 하지 마세요. 아셨죠? 학생들은 일제히 네, 라고 답했다. 우리는 다르기보다는 같은 것이 많으니까요. 그는 수업을 계속 이어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