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의 경우 - 근의 공식

by 쿼카의 하루

영호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10살짜리 어린아이다. 는 수학보다는 영어를 좋아한다. 영호는 운동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못 되는데, 가끔 체육 선생님이 영호네 반의 아이들을 반으로 나눠서 피구를 시킬 때만큼은 꽤 재밌어한다. 초여름이었던 어느 체육 시간, 영호가 던진 공이 키 큰 남학생을 맞추고, 그 공을 주운 여자애가 두 손으로 힘껏 던진 공을 영호가 받아냈을 때를 영호는 가끔씩 등교길에서 회상하곤 한다. 그 때 정말 짜릿했다고 속으로 생각한 영호는, 어느 날 남몰래 자신의 두 손을 자랑스러운듯이 펼쳐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 같은 반 은석이가 영호의 뒤에서 달려와 인사를 했다. 그 바람에 영호는 깜짝 놀라서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고 순간 딸꾹질이 났다. 영호는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을 약간 붉히고 은석이에게 대충 손을 흔들고 앞만 보며 딴청을 피운다. 그리고 영호는 학교 건물쪽으로 잰걸음으로 들어간다. 그 사이 은석이는 영호에게 같이가자고 말했지만, 미처 듣지 못한 영호는 교실까지 걸어갔다. 영호는 교실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서 친구들을 만난다. 담임선생님은 교탁 앞에 앉아서 책을 보고 계셨다. 영호는 자리에 앉아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필기구와 교과서를 준비한다. 마침 1교시는 수학시간이었고, 영호는 팔로 머리를 괴고 수업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영호가 수학을 싫어하는 것은 영호네 부모님도 알고 있었다. 영호의 어머니는 말한다. "영호가 수학을 멀리하는 데에는 내 탓도 있는 거 같아요" 영호네 아버지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턱을 쓸어만지며 말한다 "내가 한번 고민해볼게" 영호네 아버지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 출판사는 초등학생, 중고등학생을 위한 교재를 주로 취급하고 있다. 그 교재 중에는 최근 입소문이 파다한 책이 있다. 도매상들도 너도 나도 찾으러 오는 책이다. 기적의 계산법. 큼지막한 별이 그려져 있는 이 책은 수학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계산을 빠르게 하도록 돕는 교재이다. 책에는 비슷한 유형의 다른 문제들을 수없이 많이 실어놓았다. 영호에게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영호의 아버지는 회사의 선배에게 부탁하여 책을 직원가로 여럿 사들였다. 책을 사들고 집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와 영호의 책상 위에 툭 내려놓는다.


영호의 아버지가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에, 영호의 어머니는 책을 이미 펼쳐놓고 영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영호야 이거 꼭 자기 전에 한 페이지라도 풀어보렴. 영호는 네, 라고 대답한다. TV에 열중하던 영호는 책을 만져본다. 표지를 관찰하고 뒤로 돌려보지만, 본격적으로 펼쳐보기는 나중에 하기로 마음먹는다.



영호가 그 산수책의 진도를 한 쪽 씩 빼는 일과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시키기 때문에 했지만, 영호는 언젠가부터 스스로도 나름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자릿수끼리 더하고, 다음에는 빼기를 하고, 곱셈을 하는데는 조금 지겨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TV를 앞에 두고 재밌는 만화를 시청하면서 진도를 나갔기 때문인지 나름대로 잘 해나갈 수 있었다. 나중에는 어머니가 신경을 안 쓰는데 영호가 알아서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정말 어려운 것은 나눗셈이었다. 영호는 아직 나눗셈을 능숙하게 잘 하지 못하는 학년이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나눗셈이 문제였다. 풀다가보면 영호도 TV에선가 들어봤던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이 얼핏 이해가 될듯도 할 정도였다. 이걸 어떻게 푸냐고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거나, 신경질을 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도 그럴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어머니도 영호가 산수책을 푸는 일에는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재면서 풀어야 하는 페이지에 직면했을 때는 영호는 아예 울고만 싶었다. 하늘이 떠내려가라 욕을 한바탕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영호는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그 책을 끝끝내 다 떼기에 이른다. 채점은 제대로 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영호는 넌덜머리가 났다. 나눗셈이라면 이제 현기증이라도 날 정도였다. 자다가도 나눗셈을 푸느라 얼마나 어려웠는지 생각하면 눈물이 약간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영호가 이제는 나눗셈을 더이상 만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영호는 금방 고등학생이 되었다.


'근의 공식'


영호는 처음에 수학 교사가 이것을 설명했을 때, 하품이 나왔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증명 과정에 오히려 눈이 뜨이다가 다시 분자를 분모로 나눈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그는 왜 나누는가를 열심히 생각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증명의 중간 부분에서 흐름을 놓쳤기 때문인지, 영호의 의식속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분자가 위에 있고 작은 상수값인 분모로 나누는 일밖에 없었다. 끝이 없는 의문과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그는 수학과 또다시 담을 쌓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보충으로 수학 수업을 들을 때, 맨 뒷자리에서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근의 공식이 뭐야 먹는건가? 라는 농담을 따먹으며 시간을 보내기에 이른다.


20대가 된 영호는 혼자서 등산을 한다. 풀리는 일도 없고, 자신은 재수없는 일만 당하는 것 같았다. 등산로에 조촐한 운동기구와 그네가 마련된 곳을 지나갔다. 멍하니 그네를 타며 생각했다. 근의 공식때문에 수학을 포기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도대체 근의 공식을 외우는 것과 취업이 무슨 상관일까? 그는 풀리지 않는 의문을 그만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비탈진 산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는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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