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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Sep 10. 2024

예멘에서 온 행운의 편지를 열어보았다(2)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이 있을까…


  … 뭔가를 애타게 기다려야 하는 때마다 내 마음속에 울려 퍼지는 시 한 구절이다.

  기다림에 대한 낭만을 이야기한 이 시의 구절을 녹색창에 검색해 보니,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였다. 글쓰기에 대한 '프로젝트'를 제안한 제안자를 기다리던 나는, 말 그대로 가슴이 애려오기 시작했다. 사실 좋은 느낌은 아니다. 예전부터 쭉 기다리는 일을 싫어했다. 잘 참고 잘 기다리는 일이 어른스러운 일이라면, 그냥 아이로 남아있어도 좋다는 마음이까. 특히 기다리는 대상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나에게는 몸이 절로 뒤틀리고 꼬이는 고문과도 같았다. 작가로 '데뷔'할 수도 있는 기회를 기다리는 나는 그렇게, 시(詩)적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사지를 베베 꼬며 기다릴 무렵, 나에게 의문의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제목에는 그렇게 쓰여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들어가 본 나는, A4 용지 1페이지는 족히 넘을 장문의 글과 첨부된 사진 파일 두 개를 발견한다. 그 글에는 자신이 예멘에서 일하는 인도주의자이자 의사라고 밝히고 있었다. 글은 너무나 장황하며 경어체와 반말을 번갈아가면서 사용했다. 인내심과 독해력을 십분 활용하여 읽어본 결과,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자신이 예멘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의료인이고, 어떤 환자를 정성스레 치료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딸이 있었으며 금괴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무장폭력 단체들에 쫓기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환자는 죽었고, 그래서 그 금괴와 어린 딸을 호송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라…는 이야기로 들리긴 한다. 그러면 심지어 보상으로 금을 50%로 나눠준다고 유혹을 한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설명하기에는 굉장히 빈약한 것 같다. 도대체 왜 예멘인 환자는 금괴를 보관하고 있었을까. 의료인에게 그것을 유산으로 물려주었고, 가장 중요한 건 왜 내가 그 금괴와 딸까지 맡아야 한다는 말인가… 이쯤 돼서 알겠지만 나는 진지하며 매사에 심각하게 생각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한 가지는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피싱(fishing)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당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참 딱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여하에 관계없이 당신이 보내온 제안에는 글쓰기에 대한 내용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나는 떡밥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물어뜯은 결과 처참하게 낚인 것이었다.



  작가지망생은 그렇게 낚싯바늘을 물어뜯고, 뚫려 버린 입술을 부여잡는 동시에 슬피 이를 갈며 울었다. 내가 다시 한번 속나 봐라… 그래, 금괴가 그렇게 좋으면 너나 실컷 가져라. 작가적 상상력이 풍부한 거 보니까 아예 작가를 하지 그러냐… 엄한 사람 낚지 말고 착하게 살거라 능력 좋은 인도주의 코디네이터 의사야. 하하. 그렇게, 궁상맞게 궁시렁대며 웃음으로 한껏 승화시키려는 나였다.


p.s. 그리고 인스타 스토리에 업로드하여 공개적으로 웃음거리가 되기를 피하지 않는 쿼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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