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한 쪽 페달을 네가 밟고 있는 한

by 쿼카의 하루

서영은 태석과의 약속 장소로 갔다. 태석은 금광아파트 근처 지하철역에 일찍 도착해서 개찰구 근처에 서있었다. 서영은 태석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태석도 반가움에 활짝 웃으며 목례를 한다. 서영은 밝은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귀걸이를 했고, 긴 머리는 묶지 않고 단정하게 손질해서 차른하게 어깨 아래로 내려온다.


"바로 앞이라 많이 꾸미고 나왔어요"


태석은 웃으며 자신도 평소보다는 두 배는 더 준비하고 온 것 같다고 한다. 태석은 카라가 있는 짙은 초록색 무지 티셔츠를 입었고, 청바지를 걸쳤다. 서영은 아닌 것 같다고 장난투로 말하며 홍대역까지 가면 되는지 물어본다. 태석과 서영은 개찰구쪽으로 걸어간다. 태석은 서영에게 설명했다.


"밴드 '민물장어'가 원래 혜화 소극장 쪽에서 공연을 자주 했었는데, 홍대 쪽은 처음이에요. 아마 낮에는 카페로도 활용되는 작은 공연장에서 공연할 것 같은데, 관객석과의 거리가 꽤 가깝다고 했어요"


태석과 서영은 지하철에 올랐다. 지하철은 둘을 싣고 홍대의 공연장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서영은 태석과 함께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걸으면서 태석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홍대 주변의 건물들을 주욱 살펴본다. 평일 이른 저녁의 거리에는 사람이 꽤 있다. 개성있는 옷차림과 독특한 머리스타일의 사람들을 호기심있게 관찰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서영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이 아닌 주변의 아파트 단지였다. 태석과 서영은 마침 어떤 아파트 단지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서영은 태석에게 말을 건넸다.


"이 쪽은 신축 아파트인 것 같아요. 우리가 살고 있는 금광아파트보다 훨씬 더 좋을 것 같아요. 당연히 가격은 비교할 수도 없겠죠"


태석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죠, 서울인데. 태석이 맞장구를 친다.

"언제 이런 아파트에 살아보나 싶어요. 괜찮은 환경이 마련되어야 청년들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텐데. 우리가 살고 있는 10평 남짓의 집과 열악한 학군에서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나요. 그런 어려움 말고도 살면서 고생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태석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개를 계속 주억거리는 일말고는 없었다. 깊이 생각하며 음, 이라는 말을 무의식중에 흘리는 것 말고는 말이다. 도저히 답이 안나오는 문제에 부딪히고 해결방안이 생각나지 않을 때 태석은 이렇게 멍한 기분이 된다.


"제가 별 말을 한 거 같아요. '민물장어'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태석은 멍한 기분에서 빠져나와서 이야기를 한다. 민물장어가 요번에 신보를 냈어요, 노래가 너무 좋아서 바로 콘서트까지 예매해 버렸어요. 태석은 설레는 마음으로 이야기한다. 서영도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둘은 벽에 담쟁이덩굴이 자라나고 있는 건물의 지하로 내려간다. 공연장은 꽤 정숙한 분위기였고, 입구는 낮았다. 태석은 허리를 약간 숙이고 들어갔고, 서영도 부딪힐까봐 머리를 조금 만지며 입구로 들어갔다. 무대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가까워서 세션이나 보컬의 표정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일 것 같았다. 태석은 심지어 드럼에 몇개의 탐탐이 달려 있는지 셀 수도 있었다. 태석은 마음 속 깊이 설레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서영은 공연장의 세련된 소품들과 오프닝을 하기 전에 배경음악으로 깔려 있는 팝송이 꽤 마음이 들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윽고, 밴드 민물장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관객석에는 조용한 환호와 절제된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보컬이었던 황은 이렇게나 관객석이 가까워서 조금 놀랐다고 말했다. 기타리스트인 김은 맞장구를 치면서도 관객 여러분들이 너무 낯을 가리는 건지 얌전해서 신기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태석과 서영도 박수를 치며 민물장어의 모습을 지켜본다.


이렇게 가까운 위치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정겨운 분위기에서는 다과같은 걸 해도 될 것 같다고 김은 말했다. 황은 그렇다고 양갱같은 걸 꺼내 먹는 건 좀 아닐 것 같다고 무리수를 던진다. 김은 영화 설국열차가 생각나니까, 그런 것보다는 자갈치 과자 같은 게 어울린다고 말했다.


베이시스트 눙눙은 자신의 근황을 조금 늘어놓았다. 조금 두서없는 이야기이었지만 자신의 퍼스널컬러를 알아보는 검사를 했다고 말하니 관객석에서 호응이 작게 터져나왔다. 셋은 웃는다. 쿨톤과 웜톤이 있는데, 자신은 쿨톤에 가까웠다는 걸 알았고, 더불어 더 잘 어울리는 옷 색깔을 찾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 서론이 길었죠. 저희가 이번 여름에 신곡을 발표했는데요. 이제 술래잡기, 라는 곡을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민물장어는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약간 끄덕인다. 눙눙은 드러머였던 객원 멤버를 쳐다보았고, 눙눙은 다시 황을 바라본다. 긴장감이 드는 정적이 조금 흐르고, 밴드는 연주를 시작한다.



그 여름 어스름한 공기 조그마한 마을 키가 작던 아이

그리 착하지 않던 아이 별로 친하지 않던 아이들과 함께 했던 술래잡기

좋아했던 너에게 두 손 모두 잡혀버린 난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어

너의 두 눈만 한없이 바라보았어

너의 두 눈 속에 내가 비친 10초 동안의 골목길



둘은 박수를 쳤고, 일어서서도 박수를 계속 이어갔다. 태석은 중간에 눈시울을 조금 붉혔고, 서영은 좋은 음악을 들었다는 마음으로 충만했던 저녁이었다. 둘은 계단을 올라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술래잡기'를 들으면서 생각했던 게 있는데, 옛날에 살았던 동네에 대해서 많이 떠올랐어요"


태석은 웃으며 말했다. 좋은 추억일 것 같네, 요즘 시대에는 잘 없는.


"신보에 나온 수록곡들 다 좋으니 한번 들어보세요, 서영씨"


태석이 말하자, 서영은 귀를 기울이며 알았다고 말한다.





메인 이미지 출처 : 전기뱀장어 EP - 너의 의미


참고곡 https://youtu.be/VsP6wCKQv1Y?si=c5qPcuUh1ahc4C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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