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이 글은 야설(夜說), 밤의 이야기. 미성년자, 혹은 마음의 준비가 안된 분들은 아래는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2022년 11월 8일은 개기월식이 있었던 날이다. 살다 보면 드문드문 유성우나 행성 정렬, 혜성 같은 다양한 천문 현상을 만나게 되지만, 그중에도 내가 으뜸으로 치는 우주 쇼는 월식이다. Lunar eclipse. 태양과 지구, 달이 직선 위에 놓이며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가리는 현상. 특히 개기월식이 발생하면 달이 완벽하게 지구가 만든 그늘 안으로 들어오며 태양광이 조금도 달에 직접 닿지 않는다. 다만 지구의 대기로 인해 굴절한 햇빛이 달을 조금은 밝히는데, 짧은 파장의 푸른빛은 대기에서 쉽게 산란하여 흩어지고 붉은빛만 달에 도달하기 때문에 블러드 문 (Blood moon), 피처럼 붉고 어두운 달이 잠시동안 보이게 된다. 석양을 볼 때의 하늘이 붉은 것 역시 같은 원리인 것을 생각하면, 개기월식의 블러드 문은 달이 지구의 노을로 물드는 현상으로도 설명할 수 있겠다.
이렇게 낭만적인 이벤트를 아무 기념 없이 넘길 수는 없지, 휴대폰 메모장을 켜고 학교 근처 가장 어두운 공터로 나가서 4시간 동안의 월식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뭐랄까,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숨는 달을 관찰하는 동안 내 몸 안에 혹시 늑대 인간의 피가 흐르는 걸까 싶을 정도로 이상한 체험(?)을 했다. 왠지 모르게 숨이 고르게 안 쉬어지더니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달아오르며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문득 전 연인과의 기억이 떠올랐는데, 그 강렬했던 기억이 그림자처럼 번져 점점 머릿속을 가득 채워나갔다. 그때 몸의 예민함까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에휴, 그래. 이 표현은 안 쓰고 싶었는데, 발정(...)이 났다.
그러면서 시상이 떠올랐는데, 태양은 모르는 지구와 달의 은밀한 만남을 고혹적으로 그려내기로 했다. 어딘지는 말 못 할 어느 어두운 골목에서 나도 누군가의 하얀 얼굴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적이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너의 붉어지는 낯빛을 보다가 입술을 몸을 포개기도 했었다. 풀린 눈으로 붉은 달을 올려다보며 (관측? 관음?), 신음 같은 한숨을 간간이 내뱉으면서 1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글을 고쳐나갔다. (나와의 카톡에 그때 실시간 퇴고 내용이 아직도 있음;;ㅋㅋ) 완성된 글을 문학 동아리 후배한테 보여줬다가, "형 미친놈이세요? 달이랑 *스하고 있네?? 이건 외설인데;;" 라는 반응을 받았다.
그래서, 당시 동아리에는 안 들고 갔지만~ 글은 좀 잘 쓴 것 같아서 언젠가는 공개하고 싶었다. 엊그제가 슈퍼 블루 문이라길래 마침 생각이 났다. (슈퍼 문: 달이 궤도상 지구랑 가까워서 밝게 보이는 현상. / 블루 문: 한 달 안에 보름달이 두 번 있을 때 두 번째 달. *파란색 아님.) 뒷이야기는 지금 쓰면서도 많이 민망하긴 한데, 시 자체는 음담(陰談)일지언정 음담패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묘사도 없고. 그러나 시를 읽으면서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꼴렸으면(???) 그것은 승리로 두겠습니다.
시 1연에서 글만 보고도 소재인 개기월식에 대한 유추가 가능하도록 "고요한 바다" (달에는 '고요의 바다'라는 크레이터가 있다.)라는 힌트를 넣었다. 4연의 '황홀'이라는 표현이 좀 센데, 네이버 국어사전 찾아보면 세 가지 뜻이 나온다. 어느 것으로 해석해도 좋다. 제목 "영원(影源: 그림자의 발생지)"은 흔히 쓰는 영원(永遠)과 한자가 다르다. 이에 대한 해설은 생략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