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이에 글을 쓸 때 한 문장을 쓰고 내릴 때마다 왼팔로 윗줄을 가리는 버릇이 있다. 아무도 없을 때에도 그렇게 몸을 잔뜩 웅크려서는 몰래 글을 쓴다. 가끔씩 손목을 들춰 직전의 문장을 훔쳐보면서, 그렇게 전하지 못할 마음을 적는다.
부끄러움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너를 사랑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죄악 같아서, 비참함이나 자기 연민을 느끼는 것조차 송구스러워서 나는 편지를 썼다 지운다. 네 이름을 2인칭 단어로 바꾸고는 아무나에게 바친다.
아주 가끔 너를 너무 좋아하는 내가 너무 싫어질 때가 있다. 그럼 나는 베개를 적신다. 울음을 손목으로 닦는다. 손목이 젖는다. 손목도 울고 싶을까, 그런 생각은 베개를 적시는 상상으로 이어진다. 손목을 젖히는 상상으로. 돼지 저금통처럼 커터칼로 딱 필요한 만큼만 열어젖히는 것이다. 너를 그만 좋아하도록, 나를 그만 미워하도록.
Q) 단두대를 세 글자로 하면?
A1) 단두대는 이미 세 글자인데요?
A2) 목베개.
- 필통에 꽂힌 팔베개를 보며 떠올린 유머.
걱정 마라. 내 편지에는 마지막까지, 그러니까 예컨대 유서에도. 네 이름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만은 알았으면 한다. 내가 너로 잠시 살았고 이제 아닌 것을, 너만은 눈치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