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에 하루. 하루를 벌었다.
2016년 2월 29일은 내가 "인용구"라는 필명으로 처음으로 시를 쓴 날이었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시 쓰는 행위를 가끔씩 했지만, 저 날에 했던 몇 개의 끄적임, 그중에서도 고드름이라는 시를 쓴 것을 나는 내 시작(詩作)의 시작으로 여기고 있다. 하필 그날이 윤날인 탓에 시 쓰는 용구의 생일은 4년에 한 번 돌아온다. 덕분에 나의 시 쓰는 자아는 0.25배속으로 늙으며 앳됨을 유지할 수 있다. (?)
4년 전, 2020년의 2월 29일도 기억이 난다. 대단할 것은 없는 하루였지만, 시 쓰는 용구의 첫 돌을 축하하며 그동안 내가 썼던 글을 모두 모아 쭉 읽어보았었다. 글의 무시무시하게 좋은 점 - 필력에 따라 사람이 글을 잘 쓸 수도 있고 못 쓸 수도 있지만, 아무리 못 쓴 글이라도 내가 쓴 글은 적어도 나한테 만큼은 정확하게 읽힌다. 무슨 마음, 무슨 생각으로 그 문장을 썼는지 거의 그 당시로 돌아간 것 같은 수준으로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이래서 일기를 쓰나? 아무튼 당시 나의 글쓰기를 오랜만에 점검하면서 느낀 점들이 있었다.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퇴고도 열심히 하고 노련함도 늘면서 조금 더 매끄러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2016년의 쓰던 풋풋한 글들이 더 마음에 들기도 했다. 이건 최근 들어하는 고민이기도 한데,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짓기만 하는 것 같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에까지 신경 쓰며 가장 optimal 한 글이 나올 때까지 다듬다 보니, 자꾸만 글이 어딘가에 수렴하는 느낌. 자유분방하고 형식을 깨는 글을, 가끔은 아무렴 어째 글을 싸제끼는 것도 시도해 봐야겠다고 다짐하는 요즘이다.
윤날이 좋다.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올림픽이나 월드컵보다 사실 윤년을 더 기대할 정도로. 나는 학사 16학번, 석사 20학번. 대학교와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는 해가 모두 윤년이었다. 3월은 새 학기가 시작하고 새 계절이 돌아오고, 아무튼 무언가 시작하는 느낌이 강한 달이다. 그래서 2월은 유독 짧게 느껴진다. (실제로도 제일 짧아요;) 하루가 더해진다고 해도 일 년 중에는 가장 짧은 달이긴 하지만, 윤날은 확실히 뭔가 '덤'으로 하루를 벌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4년 열심히 살아서 적립한 포인트를 쓰는 날 같달까. 정말 평범한 1일이지만 어떤 의미든 부여해 가며 무엇이라도 축하하고 싶은 기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 16년의 윤날 시 쓰기를 잘했어. (정작 당일에는 아무런 의식이 없었음.) Quotation, 생일 축하해!!
3월 1일은 또 공휴일이니까, 조금 더 여유를 부리며 아예 이틀을 연달아 놀아도 좋을 것이다. 더군다나 곧바로 주말도 다가오잖아.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3월 7일까지 또 논문 제출을 앞두고 있다. 바쁜 와중에 이런 글을 쓰는 여유를 부리는 것도 어떻게 보면 사치다. 그런데 그냥 여유 좀 갖고 살려고요. 논문 못 쓴다고 죽는 거 아니고, 잘 써서 붙는다고 막 내 삶이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이 되고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물론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이것 관련해서 요즘 드는 생각도 있는데, 그건 진짜 논문 낸 다음에 한 번 글로 써보고자 한다. 아무튼, 우리 독자님들 4년에 하루 돌아오는 윤날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대단히 특별한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해도 괜찮아요. 대단히 특별한 날은 아니니까 사실. 그냥, 잉여 날이니. 잉여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