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도 바다가 있다던데 그곳의 파도는 어떻습니까
인용구
누군가를 종일 생각하느라
달 보는 것을 잊은 적 있습니까
그대가 보내는 하얀 시선에
들지 못한 얼굴이 붉어집니다
달의 밝음을 사유합니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존재가 있음을
그런 그대의 실재를 생각합니다
내 고요한 바다가 높아집니다
달도 매일 조금씩 멀어진다는데
우리 이별은 그보다 빠르겠지요
하지만 달은 뒷모습을 보여준 적 없고
그대도 마찬가지여서 좋아합니다
나만이 달님을 바란 줄 알았는데
그대도 나를 바라보기도 했단 사실이
만유인력의 발견처럼 나는 기뻐서
더운 파도처럼 내게 밀려와서
잠겨 죽어도 좋다고
그대의 탄생이 나의 종말이어도
아무도 찾지 못하는 사랑이어도
좋다고 좋아한다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보름마다 그렇습니다
달에도 바다가 있다던데
그곳의 파도는 어떻습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라고 하면 걔가 싫어한다. 어쩌라고 ㅎㅎ. 무슨 관계냐 하면, 고등학교 동창 친구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는 솔직히 엄청 친하진 않았던 것 같고, 대학교 올라와 동아리를 같이 하면서 가까워졌다. 나처럼 술 먹는 것도 좋아해서, 같이 정말 많은 술을 먹었고 그만큼 여러 에피소드와 흑역사를 만들었다. 만약 내가 가스파드의 <선천적 얼간이> 같은 만화를 그린다면, 단연 등장 빈도가 Top 3에 들어가는 친구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다. 왜냐하면 너무 좋은 친구다. 나에게도 늘 변함없는 착한 친구이고, 세상에도 오직 좋은 일만 하며 선하게 살아가는 멋진 놈이다. 이제 10년은 가뿐히 넘긴 이 녀석과의 우정을 생각하면 나는 더없이 마음이 든든해진다. 우리가 학부를 다닐 때에 약속 하나를 했는데, 그것은 "보름달이 뜨면 같이 술을 먹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수년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적이 거의 없다. (계산해보니 "보름팟"만 100회차가 넘었다.) 전후로 하루이틀 미루거나 당겨서 한 적은 있어도 빼먹은 적은 없다. 얘가 싱가포르로 교환학생을 가고 내가 인턴을 가있을 때도, 각자 취업과 졸업을 한 뒤로도. 군대 같은 이유로 정말로 술 먹는 것이 불가능한 게 아니면 보름달이 뜨는 날마다 마시는 술 사진을 톡방에 공유하며, 한 시간 넘게 통화하며 술을 먹었다. 삼국지에 도원결의가 있다면 우리는 망월결의를 한 사이인 셈이다. 진짜 보름달만 놓고 보면 아마 내가 이태백보다 더 좋아할걸. 아마 앞으로도 별일 없다면 그러지 않을까. 한 명이 먼저 죽어도 다른 한 명은 보름달이 뜰 때마다 누구를 생각할 것이다.
물론 내가 그러겠다는 얘기다. 사실 뭐, 짝사랑이다. 얘가 왜 좋냐고, 얼마나 좋냐고 물어보면 사실 끝도 없다. 훈련소에 있을 때 놈에게만 편지를 11장 썼다. 이 녀석 때문에 바늘을 무서워하는 내가 꾸준히 헌혈을 하고 있다. 이런 행동들을 빼도, 이미 내 주위 사람들은 나의 녀석 사랑을 다 알아서 굳이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맨날 냅다 고백 갈기기, 칼 같은 철벽치기를 WWE, 약속 겨루기처럼 주고받는 우리지만, (일방적인 저의 공격이긴 합니다) 오해하는 분들을 위해 말하면 진심으로 이 녀석과 어떤 연애를 상상하거나 기대하는 마음은 아니다. 지금 관계가 너무 이상적이고 더 바랄 것 없이 좋아서요. 말하자면 놈은 내 우정 샌드백(?)이다. 로맨스가 아닌 형태의 사랑은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나, 나는 녀석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작년의 오늘은 녀석의 생일이었다. 자정이 넘어가는 순간을 맞춰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하루 종일 녀석의 행복한 하루를 기원하며 평소보다도 더 자주 그 친구를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자정이 넘어가는 시각에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보름인데 왜 술자리 안 함?"
아뿔싸, 종일 너를 생각하다가 그날이 보름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매번 먼저 연락하는 쪽은 나였지만, 따로 달력에 저장해두거나 하는 편은 아니고. 항상 달의 위상을 예의주시하는 편이었는데 그날은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 자식, 내가 잊었다고 아무 말 없이 넘어가는 게 아니라는 게 기뻤다. 내가 안 가니 네가 와줬다. 퇴근도 못했던 터라 통화하며 술을 먹진 못했지만, 짧은 통화에 내 마음이 환해졌다. 무려 생일날 밤을 나와의 선약으로 비워두었다는 거잖아. 나를 기다려줬다는 거잖아. 그 미안함과 행복함으로 벅찬 마음으로 위의 시를 썼다.
완성하고 나니 내가 저렇게 노골적인 연시를 쓴 적이 없더라. 제목 사리는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클 때를 의미하는 단어다. 망이나 삭, 그러니까 보름마다 찾아오는 사리 때면 마음속 바다가 크게 부푼다. 달이 떠오르면 생각나는 사람, 보름달처럼 둥글고 환한 사람. 망월이 높이 뜬 밤은 네 덕에 낭만(浪漫, 흩어지는 파도)이 가득하다. 아무리 봐도 사랑이지, 응응.
1년이 지나 스물아홉 번째 생일을 맞은 너에게 꼭 선물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노래. 뒤의 가사도 딱 이맘때에 어울리는 것 같아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네 생각을 했다.
평생 외로웠던 것 같은 기분이야 스물아홉 해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렇기만 했던 건 아니지만
어둠이 내리는 도시의 골목을
나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걸어가
가끔 스스로도 믿지 않는 말을 해 나도 모르게
그러고 나면 난 늘 부끄럽고 미안해, 참 이상하지
...
사랑해, 알고 있지?
아직은 이런 밤에는 쌀쌀하지만
이제는 곧 봄이야, 봐, 꽃들이 피어나고 있어
사랑해, 알고 있지?
이제 곧 활짝 필 거야 개나리 목련
너무 밝아서 문득 괜히 눈물이 나기도 할 거야
며칠 전에도 보름이어서 우리는 멀리서나마 잔을 맞댔다. 술자리 끝에 또 부담스럽게 괜한 사랑 고백을 했다.
사랑해, 알고 있지?
... ㅋㅋ 미안 ㅈㄹ 작작할게. 좋은 하루 보내고, 다음 달에 보자 친구야. 생일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