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구름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똑같은 눈물을 품으면서도 먹구름처럼 어둠을 표하지 않고, 누군가의 바람을 따라 고요히 춤을 추는 의중을. 축축히 젖은 무거운 슬픔을 가볍고 보송보송한 솜처럼 단장할 때의 각오를. 자신의 그늘마저 어둡지 않도록 높이 높이 올라간 노력을.
감히 흰 구름은 슬프다고 말하지 않겠다. 그 선택을 존중하기로 한다. 아이들의 그림 속처럼 흰 구름은 웃고 있다고 믿는다. 따사로운 봄날, 즐거이 떠다니는 흰 구름이 빚어낸 화사한 풍경.
[사진 출처] Pixabay, by Gianni Crestani
사실 브런치에 올리는 시는 그날그날 쓰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썼던 것을 마지막으로 퇴고를 거친 다음에 업로드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래의 줄글만 적당히 추가하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웬걸. 2016년의 시를 지금 다시 보니 참... 손 볼 곳이 많더라. 비문도 많고, 반복되는 표현에 구차하게 디테일한 부분들도 간간히 보인다. 부끄럽기도 한데, 좀 귀여워. 글은 그 순간의 나를 박제하는 수단이다. 잘 쓴 글이 아니어도, 그때의 시를 읽으면 내가 왜 그 글을 썼는지, 어떤 감정으로 썼는지 거의 4D로 새록새록 기억이 나더라고. 사무치게 썼던 글들을 보면 안아주고 싶을 때도 있고, 좀 놀리고 싶기도 하고. 매주 동아리에 시 한 편 들고 가겠다고 캠퍼스를 돌아다니던 내가 조금 기특할 때도 있다. 그래도 이곳에는 조금 더 발전된 시를 '발표'한다는 마음으로 시상이나 메시지, 맘에 들었던 표현 한 줄 정도 남기고 거의 다시 쓰고 있는데, 리뉴얼한 시들이 과연 이전보다 나아졌는가 하면 또 그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야겠지만 나는 꽤 이 과정을 즐기고 있다. 그때의 어쩔 줄 모르던 감정들, 표현들은 따로 간직하면서조금 멀찍이서, 바라건대 더 성숙한 시선으로 그것을 다듬으려는 노력을 하는 중이다.
그런데 위의 시는 브런치에 업로드하는 과정에서 거의 수정을 거치지 않았다. 잘못 쓰인 쉼표 하나, 표현 하나 지운 정도. 전부터 몇 차례 퇴고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글이다. 완벽해서는 절대 아니고, 원체 짧기도 하고 그냥... 이대로 좋은 것 같아서 그냥 두었다. 좀 어른스럽다 이 글은. 사실 원래는 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글감 정도로 남겨두었던 글인데, 형식도 바꿔보고 행갈이도 이것저것 시도해보았으나 어떤 것도 맛이 살지 않더라고. 근데 뭐 굳이 더하지 않아도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분명한 이미지로 간결하게 잘 표현한 것 같아서, 아주 짧은 산문 시라고 두어도 좋을 것 같다.
흔히들 비가 오는 것을 "하늘이 운다"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구름은 고인 눈물 같은 것 아닌가. 비가 올 때의 잔뜩 흐린 먹구름은 내 마음까지 우중충하게 만들지만, 햇살 밝은 날에 떠다니는 하얀 구름은 제법 기분 좋은 풍경이 된다. 살다 보니 그런 흰 구름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 슬픔을 품고 있지만, 그것이 우울함으로 이어지지 않는 사람들. 저마다의 트라우마나 콤플렉스를 안고 살면서도 밝은 모습으로 주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보며 많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 번은 내가 좋아했던 선배가 깊은 고민을 술자리에서 털어놓았는데, 평소에 그런 내색을 한 적이 없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형, 힘들지 않아요?" 하고 조금 동정 어린 마음으로 위로를 전했을 때 "괜찮아"라고 말하던 선배의 괜찮지 않았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는 '저렇게 안으로 묻어 두고 삭히고 살면 나중에 힘들 텐데'라고 걱정을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알겠다. 저건 진심으로 괜찮아지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나도 선배의 입장이 되고, 나를 올려다보는 후배들이 생기니까 실제의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지더라. 나의 고충은 나만의 것으로 남겨두고 이 친구들에게는 나의 최선만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괜찮은 척'을 했다. 그리고 언젠가 문득 느끼기로, 실제로 괜찮아졌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보다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에 더 집중하다 보니, 이들과의 관계가 부여한 새로운 역할이 어느새 나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상처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으면 어느새 딱지가 굳고 치유가 된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을 외면하라'는 것이 아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동안에도 계속 문제는 고개를 내민다. 그럴 때 그것에 잠식되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 놓으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도 물론 계속 나의 고충을 꽁꽁 숨겨서 혼자 끙끙 앓고만 있지는 않았다. 술자리에서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가끔은 소나기를 쏟아내듯 울음 섞인 이야기를 털어놓곤 했다. 애쓰는 나를 기억해주는 친구들은 그걸 잠자코 들어주었고, 가끔은 자신의 눈물도 몇 방울 더해주었고. 그러면 나의 구름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살면 되는 거 아니겠냐, 날씨처럼. 서로의 구름을 존중하면서. 때로는 함께 비도 맞으면서.
솔직히 아무런 문제도 슬픔도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부담스럽다. 투명하게 맑은 하늘은 오래 보면 눈이 부시잖아. 구름 한 점 없는 사람이 애초에 실존할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고~ 나의 구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괜찮아"라고 말하는 괜찮지 않은 당신을 나는 응원한다. 그 하얀 마음을 좋아한다. 사실 어떤 문제는 해결이 안 되기도 하거든. '괜찮아'는 '개의치 않아'의 준말이 아닐까. 어딘가에 남아있는 문제를 나를 대할 때만큼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강한 마음을, 배려를 나는 소중하게 생각한다.당신이 개의치 않기로 결정했다면, 나도 당신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기로 한다. 괜히 꿰뚫어 보는 척, 당신의 약점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당신을 대하는 것이 오히려 당신을 '괜찮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