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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May 02. 2021

나라는 제목의 시

그날의 우리가 사무칠 수 있도록

나라는 제목의 시 

                                                인용구

나 그대 가슴 한 켠에

시 한 편 되게 해 주오


한 때 재밌게 읽고 잊은 소설책 말고

매일 무심히 흘려보낸 일간지 말고

애틋한 마음으로 한 줄씩 곱씹었던

시로 남게 해 주오


마음이 달그락거리는 날 펼치면

흑백 활자에서 온갖 빛깔이 흘러나오는

무성영화의 소음처럼 어렴풋한 향기의

추억되게 해 주오


사랑한다는 나의 말 한마디가

그대 한 때를 장식했던 글귀로 남아

옅은 미소로 속삭이듯 읊조리는

그리움 되게 해 주오


그렇다면 나

문득 펼쳐본 책장에서

그날의 우리가 사무칠 수 있도록

이날의 풀꽃 하나 끼워놓으리




 슬프지 않은 사랑 시를 많이 쓰고 싶었는데, 그게 나는 참 어려웠다.
 
 나는 메타 생각, 또는 메타 감정을 많이 경험한다. meta-, '더 높은 차원의' 또는 '초월한'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지만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고, 다시 말해 나는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갖는 것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을 자주 떠올린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상황 1. 친구가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픈 영화라며 추천해준 영화를 보았다.

(생각) 음, 슬프긴 한데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픈"지는 잘 모르겠는걸.

(메타 생각) -라고 생각하는 나는 감수성이 많이 부족해졌나? 왜 눈물이 나지 않지?

상황 2. 길을 걷는데 날씨가 화창하다.

(감정) 날씨 좋다~! 즐겁다!!

(메타 감정) -라며 히죽히죽 웃어대는 내 얼굴 상상했더니 기분이 나빠졌어...


 이렇듯 어떤 상황에서 반응하는 나-에 대해 제삼자의 시선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일이 잦다. 그렇다고 '자기 객관화를 잘하는 건가' 하면 그것도 아닌데, 어차피 그렇게 메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나도 주관적이니까... 반성을 잘 하기는 하는 것 같다. 아무튼, 대개 그렇게 찾아오는 감정은 초라함이나 비참함이다. 그렇게 몰입해서 희로애락 중 하나에 빠져있는 내가 얕은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어린아이 같아서 애처롭달까. 가끔 '어? 이런 나 좀 귀엽지 않아?'라며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 메타 감정에 대한 '메타- 메타 감정'이 다시 한심함으로 귀결되고 만다.

 메타 감정, 메타 생각이 글 쓰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작가와 화자가 분리되면서, '나'라는 캐릭터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그 상황에 대해서는 몰입이 깨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잔뜩 신나서 부푼 마음을 어찌할 줄 모르다가, '그렇게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밖에서 보면 얼마나 꼴사나울지 생각하고는 확 시무룩해지기도 한다.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연애를 하면서 느끼는 메타 감정은 나를 놀래킬 때가 많았다. 어떤 순간에는 '정말 나 이 정도로 당신을 좋아했었나' 주체가 안 되는 낯선 감정에 또 한 번 가슴이 벅차오를 때도 있었고, 안 좋은 순간에는 '아, 우리 사랑은 진작 끝이 났었구나'라는 체감이 확 들기도 했다. 온통 상대방에게 마음과 정신을 쏟아야 할 시간에 이렇게 나 자신에 과몰입하는 것이 별 자랑은 못 되지만, 무튼 연애를 할 때는 이런 메타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 글을 많이 썼다.

 사실, 내가 쓰는 글에는 언제나 '당신, 그대, 너'라는 존재가 사뭇 절절하게 등장하는데... 그렇다고 그게 꼭 '애인'인 것은 또 아니다. (연애를 많이 해봤어야지;) 친구를, 가족을, 동아리를, 나를 상대로 편지를 쓰는 것이다. 다만 그 존재가 너무 특정 가능해버리면 독자 입장에서 대입해보기가 힘드니까, 2인칭 당신으로 두는 것뿐이다.

 그래서 고백하자면 위의 사랑 시도 연애를 하지 않을 때 썼던 글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즐거움을 넘어서 기쁨을 느끼는 날. 메타 감정도 그 순간의 행복을 방해할 수 없는 날이 있었다. 그냥, 그 순간을 액자처럼, 아니 시처럼 남기고 싶다는 메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행복이 당신에게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나를 가득 채웠다. "아, 너무 좋다. 너무 행복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일부러 티를 내며 오글거리는 말을 했지만, 그렇다고 "너도 그렇니?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직접 물어볼 용기까지는 없어서 저렇게 오글거리는 시를 썼다.

 오글거린다-는 말이 참 멋없긴 한데. 나는 저 시가 참 오글거린다. 그래서 소중하다. 괜한 우울감으로 빠지지 않고, 내 마음에 좋은 것만 끌어모아서 씁쓸함 없이 끝맺은 시가 하나쯤은 있다는 게. 참 다행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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