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장작이다, 너는.
어느 순간 나는 대학을 '직장을 얻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 또는 '평생을 따라다니게 될 꼬리표'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대학을 '12년 교육과정의 최종 성적표'로 여기며 대학의 이름으로 나의 가치를 규정하려 했다. 어느 순간 나는 대학에 대한 로망을 잃은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대학을 들어간다면, 그 대학이 어디에 있는 어떤 대학이든 나는 의미 없는 4년을 보낼 것이다.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열정 없이. 나태하게. 모두가 거치는 길에, 어쩌면 조금 좋은 길에 올라탔다고 자만한 채 곪아가겠지.
다시 답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꽤 많이 고민했던 '의미를 찾는 문제'였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등학생의 신분을 놓으면서 달라지는 가장 큰 것은 바로 우리가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인이 된다는 것이다. 나의 행동에 완전한 자유를 행사할 권리를 가지고, 사회의 성숙한 구성원으로서 존중받는 개인이 된다. 권리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 만큼 전과는 달리 나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주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대학생은 동시에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마지막 시기를 갖는다. 경제적, 사회적 부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의 열정을 찾아 돌진하는 젊음의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이 소중한 4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이후의 인생을 크게 좌우할 것이다. 대학에서 불꽃을 피우지 못한다면 고졸로 사회에 뛰어드는 사람보다 나은 것이 없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이듬해 봄에 나는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어디서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채였다. 입술 위에는 코밑수염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고, 다 큰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전혀 어찌할 바를 몰랐고, 아무런 목표가 없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즉 내 내면의 소리, 그 꿈의 영상만은 확실했다. 내 임무는 그것이 인도하는 대로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수월한 임무가 아니어서, 나는 날마다 버티며 반항했다. 내가 혹시 미친 게 아닐까? 내가 혹시 다른 사람들과 다른 걸까? 나는 걸핏하면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나도 뭐든지 해낼 수 있었다. 조금만 열심히 노력하면 플라톤을 읽을 수 있었고, 삼각법 문제도 풀 수 있었으며, 화학 분석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단 하나,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다른 학생들이 그러하듯이, 내면에 어두컴컴하게 숨겨진 목표를 끌어내어 내 앞 어딘가에 그려 보는 일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교수나 판사, 의사나 예술가가 되려고 했으며,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오랜 시일이 필요한지, 어떤 이점이 있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런 것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는 그런 사람이 될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나도 몇 년에 걸쳐 찾고 또 찾아야 하겠지만, 무엇도 되지 못할 수도 있고, 어떤 목표도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혹시 나도 어떤 목표를 달성할지도 모르지만, 사악하고 위험하며 끔찍한 결과로 드러날 수도 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