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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Jun 29. 2021

주정

막걸리에 빠진 수개미 하나

막걸리에 빠진 수개미 하나

주정

                        구인용

구석진 자리에 남자가 앉아있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더듬이가 잘려나간 부분을 매만지며


내쉬는 한숨마다 낮은 웅얼거림이 그를 떠난다

시발 쉬발, 기억에서도 휘발될 말들

저주를 가장한 그리움과

숙취처럼 남을 외로움


시시시시...

불현듯 남자는 웃기 시작했다

아니, 조금 더 들어보니 그것은


곡소리였다

수개미 하나가

막걸리에 빠져 죽어있었다



    술을 좋아한다. 혼술도 꽤 좋아한다. 그러나 혼자 소주를 먹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 아주 맛있는 국밥이 앞에 있지 않는 이상, 혼자 마시는 소주는 궁상스럽다. 소주 쓰잖아. 솔직히 소주는 함께 잔을 맞대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자체로는 싸구려 알코올에 불과하다. 편의점에서 팩소주를 사서 혼자 마셔본 적이 있는데, 빨대로 조금씩 넘어오는 독한 액체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정말 맛없다.

    혼술을 한다면 가볍게 맥주를 할 것이다. 조금 더 호젓함을 즐기고 싶다면 양주나 칵테일을 마시겠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상황을 즐기기 위해 술을 곁들이는 것이지, 술에 취하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두는 것은 아니다. 만약 내가 '취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혼술을 한다면 결국 나는 막걸리를 찾을 것 같다.

    물론 나는 알코올 중독이 아니기 때문에 취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살다 보면 취해야만 견딜 수 있는 시간이 있나 보다. 한국 드라마나 뮤직 비디오를 보다 보면 이따금 이별을 겪은 사람이 술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소주를 마시고는, 온갖 궁상은 다 피운다. 다 머릿속에 상상되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그걸 보면서 나는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소주는 진짜 맛없는데...'

    그래서. 진부하고, 묘하게 거슬리는 그 장면을 주종만 살짝 비틀어서 묘사해보고 싶었다. 이미지를 시적으로 표현해보자-라는 의도의 습작인데, 개인적으로는 '더듬이가 잘려나간 부분을 매만지며'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뒤에 등장하는 술에 빠져 죽은 수개미 (숫개미, 수캐미라고 자꾸 쓰고 싶은데 맞춤법 상 수개미가 맞다고 한다.)와 남자를 살짝 동일선 상에 놓으면서,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는 이미지에 상실의 고통이라던가,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린 막막함을 잘 표현한 것 같달까... 이렇게 혹시 해석을 해주신 분이 있다면 꽤 기쁠 것 같다.

    시의 모든 요소는 고심 끝에 나오는 표현이지만, 그걸 모두 해석해버리면 또 독자의 재미를 뺏는 것 같아 여기서 글을 줄인다. 봄학기도 끝나고, 연구도 잘 풀리지 않아서 아이디어를 새로 탐색 중이다. 오늘은 혼술이나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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