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만 허락하고 싶다
인용구
가끔씩만 허락하고 싶다
유해한 너인 걸 알고 있지만
늦은 밤 남몰래 너를 꺼내
짓궂게 불을 붙였다가
몇 모금 숨결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는 우그려 꺼뜨릴 테다
네게 준 붉은 씨앗 짓밟으면서
시치미 떼며 너를 부정하리라
그래도 너는 기뻐할 것을 안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너의 냄새에
내가 쓴 글 중에서 아마 제일 못된 글 아닐까 싶다. 나쁜 남자에 빙의해서 아주 변태적인 시를 써봤다.
"어느 으슥한 골목에서 물고 빨고 다 해줄게. 너를 애태워줄게. 그러나 내 입술이 네게 닿았다는 것은 영원한 비밀이야. 하룻밤의 불장난, 일회용 사랑. 그거라도 괜찮다면..."
- 같은 상상을 하면서 썼다. 으앙, 너무 야하지 않니? 아뇨, 추한데요;
자해를 하는 상상을 할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몸에 상처를 내면 흔적이 남으니까, 그리고 실수로(?) 죽으면 좀 후회될 것 같아서. 그냥 내가 겁쟁이라서, 자해를 해본 적은 없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가끔 내가 싫은데, 아픈 건 더 싫거든. 그래도 죽고 싶다는 엄포를 소심하게 실천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몸에 뻔히 해로운 짓을 무책임하게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술을 조절 없이 먹는다든가, 담배를 피운다든가 같은 거 말이다. 사실 부모님이 내가 술 먹는 것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하셔도, 담배는 절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씀하셔서 이런 경험을 푸는 게 좀 죄스럽긴 한데. 과음, (은 자주) 해봤고. 담배도, 해봤다.
솔직히 담배를 입에 댔던 것이 막 "나는 오래 살 자격이 없어~ 폐세포 다 죽어라~" 이런 자기 파괴적인 욕구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고, 처음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담배 없이 못 산다는데, 뭐가 그렇게 좋은지 평생 모르고 살다 죽으면 좀 억울하잖아. 적당히 궁상을 피우고 싶었던 날, (정확히는 당시 여자 친구랑 헤어진 날이었다.) 친구에게 빌려 담배를 처음 피워보았다. 콜록콜록, 뜨겁고 매운 연기가 들어오는데 담뱃불이 영혼에 닿는 것만 같았다. 정확히는 지옥불처럼 느껴졌다. 간디가 고기를 먹으면서 느꼈다는 죄책감이 뭔지 알겠더라. 누렇게 색 바랜 필터를 보면서, 손가락에서 나는 '똥내'에. 한 번의 들숨만으로 순식간에 타락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처음 맛 본 담배 연기가 너무 매워서 그랬을 수도 있다.
여하튼 그날 나는 담배는 정말 나쁜 것임을 체감했다. 심리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담배 불을 꺼뜨린 '직후'부터 폐활량이 5% 정도 낮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과 마음에 비가역적인 손상을 입은 것 같았다. 입안의 건조함이, 쉬이 빠지지 않는 검지 중지의 냄새가 불쾌했다. 내가 주머니에 담배를 넣고 다니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 그러나, 그 후로도 나는 가끔, 아주 가끔 담배를 입에 문다. 술자리에서 선배에게 속담과 겉담의 차이를 배우면서. 좋아하는 친구가 피우는 담배는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 조금의 망설임 끝에, 술김에 한 대를 빌린다. 또 정말 정말 가끔씩, 나쁜 생각이 가득한 비 내리는 밤에. 나를 진흙탕 속에서, 세상의 모든 음란과 문란과 혼란이 있는 그 질척거리는 진창에 나를 굴리고 싶을 때.* 내가 싫을 때 나를 싫어할 정당한 자기혐오의 명분이 필요해서 나는 담배가 간절해진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불량 학생들은 담배가 멋있어 보여서 피웠다고 했나. 나는 <비트>에서 정우성이 맛깔나게 담배를 빨아제낄 때에도 속으로 한심해 보인다는 생각밖에 안 했다. 어른? 고독한 남자? 개나 줘, 그거 아니야. 한 번도 담배를 멋있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담배를 가끔 입에 대는 것도 어떤 동경 때문이 아니다. 내게 담배는 연민이었다. 비흡연자들의 질색을 받으면서도, 더러운 구석에 숨어 웅크린 어깨로 불을 붙이는 모습이. "needle은 하지 마라" 같은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반박의 여지없이 해로운 그 막대기를 물고 있는 모습이. 하염없이 궁상맞아 보였다. 그들을 연민했다. 그래서 조금은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 이유다, 내가 가끔 불붙은 빨대로 숨을 쉬는 것은. 상대방의 좋은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동경이라면, 상대방의 나쁜 모습도 사랑하는 것은 연민이겠다. 담배를 피우고 나면 불쾌하기만 하고 머리는 뻐근해지지만... 선배를 기다리며, 친구를 궁금해하며, 외할아버지를 기억하며, 궁상맞게 스스로를 연민하며. 가끔 나는 흡연자 무리에 섞인다.
담배 피운다는 말을 길게도 하네! 변명하지 마 이 더러운 흡연자-라고 하면 힝, 미안해요. 나 진짜 완전 몰래 피는데. 나도 담배 싫어. 담배 피우는 나도 싫고... 나 진짜 간헐적 흡연자. 주머니에 담배를 넣고 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도 안 한다. 애초에 이 정도 의미 부여하는 것부터가 개허접이란 뜻입니다. 절대로 담배를 즐기지 않는다. 아 이쯤 되면 그냥 믿어주세요. 저 담배 안 해요.
어쩐지 시랑은 별개로 그냥 담배에 대한 나의 생각을 풀었는데, 내용이 부끄럽지만 비밀로 두기는 싫어서 그냥 이대로 두기로 한다. 시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기도 하고. 그냥 나쁜 생각 할 때 있잖아요, 담배 피우는 생각 같은 거 할 때. 나쁜 남자 컨셉입니다. 담배 피우는 것도 다 컨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