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예 에너지 드링크를 30캔 한 박스를 시켜놓고, 연구실에서 근 2주를 밤낮없이 지냈다. 그렇게 논문을 냈다. 잘했는지는 모르겠고, 고생했다. 오랜만에 기숙사에서 잠을 푹 잤다. 밤에 게임도 실컷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거짓말처럼 앙상한 나무 끝마다 꽃봉오리가 알알히 맺혀 있었다. 부지런한 매화랑 목련 몇 개는 이미 하얗게 꽃잎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 세상은 봄이구나. 내 제출 마감 기한을 기다려 딱 맞춰 온 것인지, 아니면 나만 미처 몰랐던 것인지. 성큼 다가온 봄이 반가워 한참 꽃을 관찰하다가 걸음을 뗐다.
이맘때쯤이면 항상 꽃에 대한 시를 쓰고는 했다. 진짜 거짓말 아니고 확인해 보니 매년 하나씩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게, 원래 시는 슬프고 아름다운 것들을 써 내려가는 행위 아닌가. 봄에 처음 피는 꽃만큼 슬프고 아름다운 게 또 어디 있으랴... 어제는 모처럼 문학의 뜨락 정모도 참여해서 (8년째 동아리를 나오는 화석이 있다?!) 감수성이 가득 충전이 돼서는,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위의 글은 사실 어제 완전히 새롭게 쓴 건 아니고, 대학에 입학했던 해 (2016년)에 썼던 글을 퇴고하고 다듬은, 말하자면 "목련 (2022 ver.)"이다. 주제의식과 가장 핵심이 되는 펀치라인 (피=꽃)만 빼고 거의 모든 표현과 형식을 바꿨으니, 다시 쓴 글이라고 봐도 되겠다. 문학의 뜨락에 한 후배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기 위해 한번 모든 글자수를 엄격하게 맞춰보았으나, 어떻게 노력해도 만족스럽지 않은 구절이 있어 한참을 퇴고했다. 글쓰기 너무 어렵다;;
2016년의 봄, 하면 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목련, 나의 사촌 동생의 어린 시절의 볼의 살집 같은.
이라는 짧은 구절만으로 나의 세계를 바꿔놓았던, 시의 역할을 알게 해 준 동아리 선배가 있다.
아니 어떻게ㅋㅋ 저런. 글을. 쓰지. 저 글을 읽은 후부터는 목련을 생각하면 조건 반사처럼 저 구절이 떠오른다. 두툼하고 보드라운, 하얗고 순수한. 목련의 꽃잎을 표현하는 가장 아름다운 한 문장이 아닐까 싶다.
2016년의 나는 그 형의 피드백을 받기 위해 매주 글을 써 들고 동아리 정모를 나갔다. 글로 대화를 하며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고, 또 영영 멀어졌다. 이제는 그 선배와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뜨락에 남아 꽃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어린 후배들의 글에서 종종 적잖은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딱 그 무렵의 나로 돌아가, 잘 쓴 글이든 못 쓴 글이든 신경 쓰지 않고 무작정 글을 쓰고 싶어진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쓰는 글이, 당신의 글이 당시의 내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에게 어떤 감동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어서. 글 쓰는 게, 내보이는 게 참 어려운 요즘이다. 모르겠다. 글 잘 쓰는 선배- 하기에는 너무 글 잘 쓰는 멋진 후배들이 많고. 대신 술 잘 사는 선배나 해야지. 학교 생활의 작은 낭만들을 알려줄 수 있는 선배만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벚꽃이 만개한 4월의 카이스트는 어느 잔디밭에 앉아도 즐겁고 낭만적인 한 때를 보낼 수 있지만. 8년 차 선배가 추천하는 명소는 바로 목련 마당이다. 단, 밤에 갈 것. 가로등 조명을 받아 달빛처럼 반짝이는 목련 그늘은 인생에 잊히지 않을 시간을 선물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