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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Feb 12. 2023

예술가

나 그대 때문에 시인하게 됐소

예술가

                                    인용구

나 비록 화가는 아니지만

어떤 날은 종일 그대 얼굴 그리고

그리운 그대 바라보다 화가 나기도 했소


나 비록 가수는 아니지만

어떤 날은 종일 그대 이름 부르고

하늘 노래질 때 가수*에 들기도 했소


나 그대 때문에 시인하게 됐소

나 그대 덕분에 배우기도 했소


예수를 사랑해 본 적 없고

예술을 이해해 본 적 없는데

누가 내게 "얘, 술 좋아하니" 물으면

예, 하고 술을 밤새도록 하게 되는

고작 그런 놈이 됐소


*가수(假睡): 의식이 반쯤 깨어 있는 옅은 잠




    최근 갑자기 브런치 구독자 수가 늘었다. 몇 시간 간격으로 새로운 구독자가 생겼다는 알람이 와서 무슨 일인가 통계를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나는 시였다 글이 또 어디선가 재발굴되어 읽히는 모양이었다. 브런치는 유입 경로, 다시 말해 어느 사이트에서 나의 글을 클릭해 들어왔는지에 대한 정보도 제공해서 나도 조금의 검색 끝에 "나는 시였다" 글을 다시 찾아준 고마운 게시물을 볼 수 있었다.

인스티즈: https://www.instiz.net/name/52996078

    헤헤... 일단 고맙습니다. 전에도 가끔씩 어딘가 글이 올라오면, 댓글에 페이스북이나 브런치 페이지 좌표를 찍어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그럴 때마다 일단 내 글을 여전히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에 한 번, 댓글의 따뜻한 반응을 보며 한 번, 또 새롭게 찾아주시는 분들에 한 번, 이렇게 여러 번에 걸쳐 감동을 받고는 했다. 관종이라서요!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좋게 읽어주시면 참 뿌듯하고 행복하고 그렇습니다.

    뭔가 새롭게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집에 손님이 찾아왔으면 다과라도 내놓는 게 인지상정이잖아요. 바쁜 시기지만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예전에 썼던 글 중에 하나를 들고 와봤다. "나는 시였다" 글만큼이나 말장난으로 점철된 글인데, 좋아하실지 모르겠네. 눈치 보는 건 아니다. 그냥 이런 글 쓰는 사람입니다,라고 하나 더 보여드리고 싶은 것뿐이다. 말장난 없는 글도 여럿 있으니 심심할 때 둘러보셔요.


    이 글도 "나는 시였다"를 비롯한 나의 여러 글들과 마찬가지로, 언어유희로 점철된 詩답잖은 시. 화가, 가수, 배우, 시인 같은 예술가의 직업들의 단어가 가진 중의적인 쓰임을 고민하며 하나의 주제로 묶어서, 그 중의적 의미로 읽기에도 어색함이 없도록 조사 하나, 어휘 하나 열심히 다듬었다. 수차례의 퇴고를 거쳤음에도, 이번에 브런치에 올리면서 "예, 하고 술이나 꿀꺽꿀꺽 마셔대는" -> "예, 하고 술을 밤새도록 하게 되는 (예술을 밤새 한다는 뜻으로)" 이렇게 또 한 번 손보기도 했다.

    나는 이 작업이 재밌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단어들을 곱씹어 생각해 보면서, 이리저리 연상해 보다가 어떤 의미를 만드는 것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걸 감성적으로, 이지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즐겁다. 글 한 편을 만드는데 남들 몇 배의 시간이 걸리지만, 만족스러운 글이 나올 때의 보람 때문에 고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을 모두가 아는 단어들을 조합해 풀어낸 글이기 때문에, 내가 쓰는 글은 누구라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남들보다 더 오래 고민하고, 더 많이 고치면서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더할 뿐이다.

    그렇게 만든 결과물이 독자들에게 잘 와닿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의 부족함 때문이겠다. 위에 링크 달아놓은 게시물도, 댓글 반응을 보니 냉랭한 반응들도 적지 않았다. 대충 요약하면 "저게 뭐가 잘 쓴 거야?" "그냥 말장난 같음." "한줄한줄 따로 노는데, 너무 이과스럽다." 같은 말이다. 악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취향의 차이를 부정할 필요도 없고, 사실 다 맞는 말이다. 전에도 비슷한 반응을 여러 개 받아봤고, 개인적으로도 "나는 시였다"가  잘 쓴 글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진짜 괜찮다.

    그래도 그 반응들 때문에 글 공유해 주신 글쓴이 분이 괜한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것 같길래 "싸우지 마세요 ㅠㅠ" 하고 댓글 달고 싶었는데, 인스티즈 가입이 안되더라고요. 다 맞는 말씀입니다. 특히 익 72님 너무 분석 잘하셨어요! 말씀하신 방식으로 글 쓰는 사람입니다. 댓글 달아주신 분들, 글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진짜 너무 별로다! 생각하시면 이쪽에 댓글 달아주시거나 개인적으로 연락 주세요. (딱히 드릴 말씀은 없지만요...)


    글로 돌아와서 개인적으로는 이 글이 내심 마음에 드는 게, 따져보면 내 얘기가 분명 있다. 술 좋아하는 것도 맞고, 학부 시절에는 영화 동아리를 하면서 '배우'기도 했던 적이 있으니까. 억지스러운 부분도 분명 있지만~ 원래 이런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편이다. 외재적 관점에서(?) 보면 또 재밌다? 랄까요.

    아무튼. 모처럼 기회가 되어 여러분께 편지를 쓴다. 나 한 번도 시인이라 직접 시인한 적 없지만, 그래도 평범한 인간 구인용에게 글 쓰는 자아, 인용구라는 정체성은 분명 큰 자부심이고 기쁨이어서.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용구를 사랑해 주는 여러분에 있다. 최근에 오랜 구독자에게 팬레터를 받았다. 나의 글을 열심히 읽어주고 반응을 남겨주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내게도 자주 보여서 기억이 난다.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먼저 연락 주셔서 답장을 빌미로 길게 마음을 표현했다. 여러분 덕에 나는 시였던 적이 있었다고, 나 그대 때문에 시인하게 됐다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도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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