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것'이 아니라 가여운 것'들'인 이유

2025.8. <가여운 것들>을 쿠팡플레이에서 보다

by 김산

근래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는 OTT 서비스는 놀랍게도 쿠팡플레이다. 내가 평소 보고 싶었다가 놓쳤던 영화들이 대거 들어오고 있고, HBO도 송출하고 있어서 볼거리가 풍성하다. 요즘 그닥 인상적인 넷플릭스 시리즈가 없는 지금 쿠팡플레이에서 더 많은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브루탈리스트>와 함께 바로 찜 목록에 넣어뒀던 영화가 바로 이 <가여운 것들>이었다. 개봉 당시 화제성과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던지라 꼭 봐야겠다 생각했다가 또 놓쳤던 작품이다.


처음 인트로가 나오고 타이틀이 뜰 때 거의 10년전에 유행했던 폰트가 등장해서 신선했다. 동시에 내가 그 당시에 봤던 영화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당시 나는 미셸 공드리의 영화를 좋아했었다. <가여운 것들>을 보는 내내 공드리가 생각났다. 특히 <수면의 과학>과 <무드 인디고>가 바로 떠올랐다. 가장 큰 이유는 초반 영화에서 보여주는 동화적, 판타지적 설정값 때문이다. <수면의 과학>은 모든 요소가 손으로 만들어진 거친 동화적인 느낌을 깔고 가고, <무드 인디고> 또한 판타지적 장면들이 아무렇지 않게 뻔뻔하게 드러난다. 게다가 공드리 특유의 빈티지한 색감도 그 판타지적인 부분에 보탠다. <가여운 것들>의 첫 시작은 엠마 스톤이 파란 드레스를 입은 채로 다리에서 낙하하는 장면이다. 이후에는 흑백 화면으로 전환되어 진행되었다가, 벨라가 성장함에따라 일순간에 컬러로 화면이 물든다. <가여운 것들>의 와이드 샷들 또한 몽환적이고 그림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는데, 마치 야외 씬들조차 스튜디오에서 배경지를 두고 찍은듯한 인공적인 느낌을 준다. 이런 측면에서는 <신 시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드리와 신 시티가 떠올랐다는 말은 일단 시각적으로 볼거리가 많고 독특하다라는 것을 반증한다. 그리고 그 시각적 즐거움은 다루는 내용의 기괴함을 동화적으로 희석해서 관객이 일단 '잡솨보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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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것들>은 다리에서 떨어져 자살을 기도한 여자를 갓윈이라는 천재 외과의사가 발견했을 때, 모체가 뇌 외에는 완벽하게 온전했으며 그 여자의 뱃속에 있던 아기는 뇌만 온전했던 상황이었다는 기괴한 상태였다. 갓윈은 여자의 뇌를 꺼내고 뱃속의 아기의 뇌를 이식하고, 여자의 뇌가 성장하는 동안 그녀를 돌본다. 갓윈은 마찬가지로 의사였던 아버지가 실험 대상으로 그를 썼기에 온 몸에 수술자국으로 가득하다. 얼굴에 있는 봉합의 자국들의 모양을 보면, 단박에 갓윈의 모티브가 프랑켄슈타인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태어난 '벨라' 또한 외형적으로는 프랑켄슈타인같지는 않지만 본질 자체는 프랑켄슈타인과 동일하다는 점 또한 영화 초반에 우리가 알게 되는 사실이다. 다만, 성별이 여자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이다. 그리고 그 차이로 인해 어쩌면 너무 다른 전개로 이르게 된다. 성인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뇌는 아기의 뇌인 여자의 행동은 그 괴리로 인해 더 기괴하다. 무언가를 집어 던진다던가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녀가 '모자라' 보이기 때문에 그녀를 동정하게 된다. 하지만 만약 그런 행동을 아기가 한다면 동정심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화가 나거나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아기이기 때문이다. 아기의 발달 과정에서 무언가를 집어 던진다거나 하는 일은 그렇게 큰 일이 아니고, 어쩌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어른의 몸이라는 이 부조화에서 우리는 측은지심을 느낀다. 그 괴리 때문인지 벨라는 쉽게 대상화된다. 아름다운 여성의 육체에 순진한 아기의 행동은 남성들의 호기심과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갓윈은 자신의 조수로 벨라를 관찰하는 일을 하던 맥스에게 벨라와 결혼하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한다. 맥스는 벨라를 관찰하다 벨라에게 반하게 되었던 참이지만, 맥스는 벨라의 동의가 있어야만 결혼하겠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찜찜하다. 벨라의 지성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어린아이 정도의 발달 정도였을 때였기 때문이다.) 벨라는 맥스와 결혼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엉큼한 변호사 덩컨이 함께 멀리 여행을 떠나자고 도발적이고 성적 대담함을 보이는 것에 호기심을 가진 벨라는 냅다 덩컨과 떠난다. 이당시 처음으로 성적 쾌락에 눈을 뜨던 시기였고, 덩컨 또한 성적으로 왕성한 사람이었기에 둘은 여행 내내 광란의 밤을 보낸다. 귀족 사회에서 성적 욕망을 꽁꽁 숨기는 것과 다르게 그런 사회적 규범에 대해서 전혀 무지하기에 쾌락에 거리낌이 없는 벨라가 순수하고 남들과는 다르다며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밥을 먹는 사교의 장에는 벨라에게 사회적 규범을 지키기를 강요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도 매우 꼴볼견. 벨라는 그러다 마을로 여행을 떠났다가 덩컨은 그녀가 없어졌다며 다른 남자와 무슨 일이 있었을까봐 전전긍긍한다. 덩컨과의 일화들은 대놓고 나오는 우화이다. 질투에 눈이 먼 덩컨은 벨라가 휙 떠나지 못하게 크루즈 여행을 함께 떠난다. 벨라는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꾸준히 성장한다. 몸의 성장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쓰는 유년기에 이미 다 성장한 몸을 가지고 있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벨라의 지적 성장의 속도는 매우 빠르다. 게다가 성장이 매우 독립적이다. 경험을 해보고 자신이 직접 판단하고 결정한다. 돌아보며 생각했을 때 이 부분이 조금은 설득이 잘 안되는 부분. 어릴 나이일수록 환경이나 주변인에 의해 자아가 형성되는데 큰 영향을 받거나 가스라이팅 당하기 쉬운데, 그런게 없이 직선적으로 성장한다. 이건 아마도 이 캐릭터가 올곧을수록 우화화된 사회의 부분이 도드라지기 때문에 그렇게 설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크루즈에서 벨라는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 바로 시선을 나에서 타인으로 돌리게 된 것이다. 배에서 잠깐 내려서 본 슬럼가의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벨라는 절규한다. 그러고는 덩컨의 돈을 전부 가져와 그들에게 줘야 한다고 하지만, 이미 선박은 항구를 떠난 이후이다. 벨라를 통제하던 선원들은 자기들이 그들에게 돈을 전해주겠다고 하고 자기들이 그 돈을 쓱싹한다. 덩컨은 자신의 전재산이 없어진걸 절규하지만 벨라는 이해할 수 없다. 돈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던 덩컨이 그토록 돈에 집착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덩컨과 벨라는 프랑스에서 무일푼으로 내쫓긴다. 덩컨은 계속 징징거린다. 벨라는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쾌락을 주는 잠자리와 동시에 돈을 벌 수 있는 사창가에서 몸을 팔고 덩컨에게 먹을 것을 사다 준다. 하지만 덩컨은 그녀가 매춘부가 되었다며 역겨워한다. 벨라는 그에게 갓윈이 준 비상금을 주고 영국으로 돌려보내고 자신이 몸을 팔았던 곳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다시 영국으로 벨라가 돌아가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까지 쭉 이어진다.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는 '프랑켄슈타인이 예쁜 여자라면 어떻게 다를까?'라는 상상에서 시작된 듯 하다. 그런 경우에 마주할 사회적 부조리를 이모 저모 다 적은 후에 그것을 우화로 만들어 한 사람의 인생에 투영한 듯한 느낌을 준다. 납득이 가는 부분도,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견이 없을 부분은 엠마 스톤의 훌륭한 연기와 영상미이다. 원형으로 모션 블러가 들어간 장면들이나 흑백 컷들, 아름다운 의상과 미술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끊임없이 부여한다. 영화를 보며 꽤나 생각할 것도 많다.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꽤 갈리는 것 같은데, 그것이 맞고 틀리고를 판단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다. 다만 이 영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판 혹은 호평을 하며 많은 대화와 토론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소기의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는 감독은 목표를 달성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왜 '가여운 것'이 아니라 가여운 것'들'일까? 처음에는 가여운 것들이라고 한 것이 갓윈과 갓윈의 집에 있는 해괴한 접합동물들, 그리고 벨라를 통칭해서 기괴하게 접합된 것들이 다수라서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나의 해석은 벨라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은 내내 그녀를 가여워하지만, 사실 세상 자체가 부조리와 자기모순, 쓸데없는 굴레와 이기주의에서 허덕인다. 그런 점에서 벨라의 눈에는 모두가 '가여운 것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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