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저녁 뉴스 말미에 기상캐스터는 내가 사는 동네에 한파와 눈이 많이 내릴 것이라며 겁을 잔뜩 주었다.
슈퍼컴퓨터를 등에 업은 기상캐스터의 예측은 이른 새벽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어둠 속에서 내린 눈은 아파트 통행로를 보이지 않게 만들었고, 하늘에서는 여전히 눈송이가 쉼 없이 춤을 추며 떨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해야지.”
나는 경비실 옆에 세워둔 빗자루를 집어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벽 공기는 차가웠지만, 몸을 움직이면 이내 따뜻해지리라는 생각으로 첫 빗질을 시작했다. 길목을 따라 쌓인 눈을 밀어내며 나는 예전처럼 이웃들이 나올까 기다렸지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불빛만이 조용히 깜빡일 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등 뒤에서 “같이 할까요?”라는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이웃의 한 남자가 두꺼운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나보다 훨씬 커 보이는 고무삽이 들려 있었다. 그건 마치 불도저의 앞날처럼 한 번에 눈을 밀어붙여 단박에 끝낼 것 같은 큰 것이었다.
“같이 하죠. 혼자 다 치우기엔 너무 많잖아요.”
그의 말에 나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말없이 한참 동안 눈을 치웠다. 눈은 치운 자리마다 다시 쌓였지만, 둘이 힘을 합치니 일이 한결 수월하게 느껴졌다. 숨이 가빠지고 이마에 땀이 맺힐 즈음, 아내가 따뜻한 코코아 두 잔을 들고 내려왔다.
“수고 많으세요. 이거 드시고 잠깐 쉬세요.”
우리는 삽과 빗자루를 내려놓고 길 옆에 잠시 멈춰 섰다. 코코아의 따뜻한 향이 차가운 공기를 녹였고, 나와 남자는 종이컵을 들고 한 모금씩 마셨다.
“요즘은 이런 거 잘 안 하잖아요. 그냥 관리실에서 해 주겠거니 하면서…” 남자가 말했다.
“그렇죠. 그래도 이런 날엔 누군가 시작하면 또 도와주는 사람도 생기더라고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컵을 내려놓고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엔 약간의 여유로움과 옅은 미소가 흘러 보였다.
눈 치우는 일이 끝났을 때쯤, 우리는 서로 고맙다고 짧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창밖을 보니, 아까까지 나와 남자가 치운 길 위로 이웃들이 조심스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이와 손을 잡은 어머니, 교회에 가는 듯한 성경책을 든 어르신, 그리고 댕댕이를 데리고 가볍게 산책에 나선 이들까지. 그 길 위엔 이미 많은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눈은 다시 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새벽, 작은 실천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한 다리를 놓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