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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은 당구장이 맛집

당구장의 추억

by 벼꽃농부

토요일은 이른 새벽부터 부산스레 몸을 움직인다. 지난밤에 아내와 막걸리 한 잔 하며 먹었던 그릇들 설거지와 아내가 즐겨 마시는 커피의 맛과 향을 책임질 커피머신 청소 그리고 한 주간 밀린 빨랫감 세탁과 소소한 남자의 손길이 필요한 것을 이것저것 해내면 조금 한가해진다.

아내는 오늘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으니 '당신은 당구장에 가서 놀다 와'하며 크게 선심을 쓴다. 어쩔 수 없이 혼자 TV나 보고 있는 것보다 당구장에 가는 게 낫겠다며 서둘러 장비를 챙긴다. 수년 전 내 생일을 기념해 아내와 아이들이 선물해 준 수제큐를 꺼내 쓱쓱 매만지며 촉감으로 오늘의 경기는 어쩔지 기대해 본다.




예전에 친구들과 당구장에서 짜장면 내기 게임을 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단순한 한 끼 식사였지만, 그 안에는 치기 어린 승부욕과 우정, 그리고 젊은 날의 열정과 패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내기에 걸린 것은 단돈 몇 천 원짜리 짜장면 한 그릇이었지만, 그 작은 내기 하나가 게임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우리들은 몇 천 원짜리 내기에 눈이 벌게 지고, 세치 혀로 내뱉는 중얼거림은 고도의 치열한 심리전을 방불케 했으며 큐대를 잡은 떨리는 손에 힘이 들어가고, 한 공 한 공을 조심스레 계산하며 신중하게 샷을 날리던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게임이 시작되면 다들 말수가 줄어들고, 평소 장난기 많던 친구들도 진지해졌다. 한 점 한 점 따라잡으며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순간의 짜릿함, 실수라도 할까 봐 숨죽이며 바라보는 긴장감, 그리고 마지막 공을 성공시켰을 때의 환호성. 승리한 사람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으하하하 야, 난 짜장면 공짜네?” 하고 외쳤고, 진 사람은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정작 짜장면이 나오면 다 같이 젓가락을 들고 서로 한입씩 빼앗아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곤 했다. 그렇게 짜장면 한 그릇 앞에서 승자와 패자의 구분은 흐려지고, 우리는 다시 친구로 돌아갔다.


그런데 요즘 당구장에서는 음식 시켜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 당구장 사장님 말로는 음식 냄새가 당구장에 배면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고, 바닥에라도 흘리면 치우기 곤란하고, 시끌벅적하게 먹는 모습이 영업에 방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공기 맑고 깔끔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하지만 어딘가 허전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당구대 위에서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게임을 하다가, 땀을 식히며 짜장면 한 그릇을 비우던 그 시간이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당구장의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요즘은 주로 조용한 분위기에서 경기를 즐기는 손님들이 많아졌고, 예전처럼 소란스럽게 장난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당구장은 그저 게임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던 추억의 장소다. 짜장면 한 그릇에 담겼던 그날의 즐거움과 열정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언젠가 친구들과 다시 모일 수 있을까? 당구장 안에서는 더 이상 짜장면을 먹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큐대를 잡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공을 굴리는 그 순간만큼은 다시 느껴보고 싶다. 짜장면을 내걸지는 못하더라도, 그 시절의 분위기만큼은 다시 재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문득 당구장 한쪽 구석에서 짜장면을 기다리던 우리가 떠올라,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시진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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