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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하는 거 없습니다만 잘하는 것도 없습니다.

뭐라도 한 가지만 잘했으면...

by 벼꽃농부

나는 못 하는 운동이 없다.


줄넘기를 하면 2단 뛰기를 10개는 하고, 배드민턴을 치면 구석구석에 셔틀을 꽂아 넣는 랠리를 꽤나 해댄다. 탁구도 드라이브, 스매싱 못 치는 게 없다. 심지어 테니스까지도 어느 정도 땀을 흘릴 줄은 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없다. 그렇다고 잘하는 운동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임을 시작할 땐 누구보다 의욕적이지만, 끝나고 나면 존재감 없이 스쳐간다. 아마도 나는 ‘중간’이라는 영역에 안착해 버린 사람일 것이다. 운동신경이 특별히 좋지 않다는 자각은 언제부턴가 자연스러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이 좋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매일 무언가에 얽매인 삶에서 잠시나마 일탈할 수 있고, 경기주도권을 쥘 수 있는 짜릿한 순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나에게 요즘 가장 큰 재미이자 도전은 당구다. 처음에는 공을 툭툭 치는 단순한 놀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구(특히 쓰리쿠션)가 매우 어려운 경기라는 걸 아는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놀이는 단순한 공놀이라기보다, 빠르게 계산하고, 순간에 집중하며, 아주 미세한 감각을 조율해서 40초 내에 쳐내야 하는 고도의 게임이라는 걸. 당구대를 마주하면 손끝의 떨림과 눈앞의 각도가 그대로 승부로 이어진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여기선 잘 통하지 않는다. 고도의 감각, 반복된 훈련, 공간 지각력, 그리고 심리적 안정까지… 모든 것이 정교하게 결합되어야 한다.


처음 큐대를 잡았을 때, 나는 이 게임이 꽤 나와 잘 맞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의욕만 앞서고 실력은 따라주지 않았다. 어느 날은 분명 각이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깻잎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갔다. 어느 날은 회전을 준다는 의식은 했지만, 큐 끝에서 전해진 미세한 떨림이 공을 엉뚱한 곳으로 보내버렸고 그건 일명 '삑사리'가 되어 심장을 도려내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었다.


당구는 생각보다 아주 많이 어렵다. 아니, 어려운 정도를 넘어섰다. 그 어렵다는 ‘감’이 요구되는 게임이었다. 한눈에 각을 잡고, 적절한 회전과 스트로크를 몸이 기억하게 만드는 이 과정은 마치 숙성에 가까웠다. 책으로는 알 수 없고, 강의로는 다 채울 수 없는 고요한 훈련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면 단 한 공조차 제대로 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요즘 당구를 통해 느끼고 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더 잘하고 싶다. 잘한다는 것이 반드시 프로선수처럼 치는 건 아닐 것이다. 적어도 스스로 예측한 공의 방향대로 가고, 의도한 회전이 먹혀드는 손맛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 혹은 그림을 그리듯, 내가 만들어낸 선이 실제로 당구대 위에서 구현되는 경험. 그 짜릿한 쾌감을 맛보고 싶은 마음이다.

사람들은 ‘운동신경’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한두 번 해보고도 공의 각을 기가 막히게 맞추고, 힘 조절까지 잘 해낸다. 타고난 감각이라는 말 앞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나는 묻고 싶다. 감각은 과연 타고나기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 나는 둔하다. 몸이 빠르게 반응하지 않고, 순간적인 판단력이 좋지 않다. 하지만 내게는 천천히 배우는 힘이 있다. 반복해서 익히는 인내와, 무수한 실수를 기억하는 끈질김. 스스로가 감각이 없다는 걸 알기에 더 오래 고민하고, 더 많이 연습하는 자세. 그것이 오히려 나만의 감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때론 그런 생각을 한다. 삶도 당구와 닮았다고. 어떤 일을 잘 풀고 싶지만, 번번이 미세한 오차로 엇나간다. 나는 왜 이리 불리할까 싶지만, 다시 큐를 잡고 자세를 가다듬는다. 한 번의 실수는 다음 샷의 밑거름이 된다. 공은 항상 같은 자리에 놓이지 않으며, 그때마다 나의 감각은 조금씩 자라난다.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당구를 배우는 일은 공을 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조율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리고, 정확한 스트로크를 위해 몸을 바로잡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시도한다.

나는 오늘도 큐대를 잡는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다시 서는 마음이다. 운동신경이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당구대 앞에 서서 스스로의 한계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계속 칠 것이다. 한 공, 한 공. 언젠가 내가 그리는 궤적이 정확히 공을 따라갈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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