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필사 #16]
소풍을 갑시다-허수경

오 오 소풍을 갑시다, 울지 맙시다

by 변민욱





우리가 읽어왔던 시들에서 자연은 늘 아름답다. 늘 영원하거나 이상향으로 사용되어 왔다. 자연이 치열한 삶의 혹은 격변의 현장이었던 적은 많이 않다. 그러나 이제 그런 자연은 유효하지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서정의 도피처가 될 수 없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연이라는 '풍경'은 더 이상 전통적인 서정의 배경이 되기 어렵다. 그 풍경에 소리를 치든, 비난이나 힐난을 가하든, 욕을 하더라도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아가 자연을 소비하는 것은 신형철이 말했듯, "서정적 자아가 타자를 타인으로 소화하는 메커니즘의 확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이러한 시 속에서 자아는 새로운 단계로 도약이나 추락하기보다는 나르시시즘을 공고히 할 뿐이다. 그러나 이제 자연은 더 이상 당신의 나르시시즘에 기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과 우리의 상처를 드러낸다. 위 시에서 배경이 되는 "갈잎 듣는 그 천변"은 더 이상 화자의 아름다운 욕망을 투영하거나 희석하는 세계가 아니다.


"폭약 많은 오후"들의 결과로 "이름 없는 집단 무덤"에서 "머리 없는 뼈들을 보"거나 "오래 뒤에 내가 그대를 발 굴할" 세계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허수경 시인 특유의 "오 오 소풍을 갑시다, 울지 맙시다"라는 청원은 더욱 애틋해진다. 유토피아적인 환상으로의 도피가 아닌 자연은 본디 그곳에 있었으며, 치유와 망각을 매개하는 장소가 아닌 상처와 드러냄의 공간이 된다.





*이 시는 이후에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에 '연등빛 웃음'으로 바뀌어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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