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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째 글을 올리며

생애 첫 여행을 다녀왔다. 인천으로. 당신에게로

by 변민욱



지난해 여름부터 올해 여름까지 브런치에 글을 썼다. 백 번째 글을 준비하며 생애 첫 여행을 다녀왔다. 책상 위에 작년에 큰 맘먹고 산 시계, 기대하며 읽고 있는 책, 감사하지만 익숙해진 만년필, 지우개가 없어 쓰지 못하는 연필, 배경을 장식하는 수많은 책과 찢어진 종이를 남겨두고 떠났다.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하지만 여행이라고 쓰고 말해보니 무계획을 설렘이 가득 채웠다. 인천은 예전부터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갈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다섯 가지 선택지를 만들고 같이 일하시는 분께 하나 뽑아달라고 부탁드렸다. 인천이 나왔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은 어쩔 수 없고 마주해야 할 일은 결국 맞닥드리기 마련이다.



'여름이었다'외에 다른 계획은 없었다. 지하철에 타고 생각해보려고 했다. 집에서 인천역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리고 인천역에서 인천 공항까지는 40-50분 정도 걸린다고 나와 있었다. '생각보다 가깝네'라고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가깝고도 먼 여행을 떠났다. 그래서 지도는 오류 투성이었다. 사람에게 장소는 균일하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경복궁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조그마한 카페가 더 클 수도 있다. 나에게 인천은 인천 전체보다 인천 공항이 더 컸다. 우리는 그렇게 제각기 다른 지도를 만들며 나아간다. 나는 그 지도만을 믿고 존중한다.



인천 개항지 거리를 걸었다. 제물포 구락부를 비롯해서 근대의 건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 사진과 전시된 사진 사이에 내가 있었다. 과거 이곳은 개항의 상징적인 장소이면서 수탈의 대표적 장소였다. 새로운 문물이 유입되고 누군가의 빼앗긴 것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현재 이곳은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리는 대표적인 명소였다. 누군가에게 열려있다는 것은 내 무언가를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동시에 열려 있지 않으면 어떤 것도 안을 수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매시간마다 흘러나오는 종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 사이를 여행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카메라 사진 찍는 소리 위로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가야 할 곳이 정해졌다. 이동 중에 책을 보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먼 길을 떠날 때면 멀미를 하게 된다. 서울에서 사천까지 가야 했던 귀영 버스가 그랬고 제주 공항에서 집에 가는 버스에서도 가끔은 지하철에서도 그랬다. 어렸을 때는 분명 멀미를 안 했는데 언제부터 하게 됐는지 모른다. 어지러움이 고통스러웠지만 떨쳐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떠올렸던 질문이 주는 느낌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먼 여행을 떠날 때마다 멀미가 함께 찾아온다. 하지만 멀미 때문에 우리는 멀리 가고 있음을 지각할 수 있다.





어서 공항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도 익숙한 풍경이 스칠 때마다 "조금만 천천히 가주세요."라고 수십 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버스가 정류장에서 멈출 때마다 누군가 내리고 누군가 탔다. 몇몇 정류장은 그냥 지나치기도 했다. 그러나 내 기억은 매 정류장마다 타고 내리면서 환승을 거듭했다. 우리가 누군가를 추억하는 방식도 이럴 것이다. 우리는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을지 모르지만 그곳이 다르게 기억되었을까 무서웠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까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버스는 정해진 길을 달린다. 우리는 살아 있는 한 기억으로부터 도피하지 못할 테지만 때로 기억은 살아있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심지어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지금 당장 내가 사라질지라도 누군가에게 내가 남아 있다면 나는 남아있는 존재다. 처음에는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요즘은 그게 두려워진다. 글은 누군가에게 남기는 편지다.



라고 생각할 때 버스가 공항에 닿았다.


공항의 백야는 기억을 종종 기억을 오인하게 만든다. 항상 밝기 때문이다. 헤어지는 사람을 다시 만날 사람으로 혹은 다시 만난 사람을 헤어질 사람으로 오해하게 한다. 공항에서 스무 살의 절반을 보낸 것 같다. 나는 누군가의 말을 통역해주고 돈을 받았지만 내 말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스무 살의 절반은 오해였던 셈이다. 공항의 불은 밝았지만 채도는 진했다. 공항에서 뛰어다니지 않고, 지나가는 외국인들을 무심하게 쳐다보고, 공차에서 테이크 아웃한 블랙밀크티를 여유롭게 마셔본 것은 얼마만일까?라고 적으며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사람들이 서서히 보였다.



공항은 애틋한 온기가 포옹으로 피어나는 곳이다. 포옹은 그러나 부재에 대한 예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만난 사람도 헤어질 사람도 꼭 끌어안는다. "이대로 그냥 있자."는 당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시간을 향한 절박한 외침이다. 그러나 기억도 시간도 인간의 편은 아니다. 왜 우리를 버리는지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지 말자. 그들은 곤혹스러워하며 당신을 가져본 적도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제 탈고를 끝내고 발행을 누르는 순간 이런 예감을 백 번째 느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공항 밖에서 비가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이 비가 사람들에게 헤어짐과 만남의 순간은 조금 오래 더 기억하게 하는 저주이자 축복이 될 것이다. 얼굴이 비치지 않게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 아직 이곳을 다 경험하지 못했다.라는 돌아올 이유를 남게 두었다. 건너가지 않았다. 다음에는 한 발짝 더 멀리 내디뎌 보려 한다.




여행의 미학은 떠난 지점으로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는 데 있다. 나는 생애 첫 여행이었지만 백 번 정도 여행을 다녀왔다. 여권도 없이. 그것이 죄라고 생각하자. 돌아오는 거리에는 수많은 외로움이 걸어 다녔다. 외로운 날에는 달을 바라본다. 아직도 내 문장이 "달은 잃어가면서 익어간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길을 향해서 걷지 말았어야 했을까. 밤하늘에 내가 부서지며 빛났다. 우리가 밤하늘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모두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무수히 부서져 있기 때문이다. 그 빛이 밤을 밝힌다. '나를 기억할 수 있겠니......?'라고 묻는 당신의 모든 글을 나는 사랑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울어 본 비밀이 없는 사람을 나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목놓아 울어봤다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나는 이 여행이 시작되었던 하나의 편지를 본다. 그날은 훈련소 기간 중에서도 훈련이 유독 고된 날이었다. 밤이 되자 밖에선 비가 내렸다. 10시쯤 점호가 끝나자 조교가 편지를 주고 갔다. 고 동기가 말했다. 내 것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 기뻤고 보내온 사람을 듣자 기우뚱거렸다. 당신이 맞았다. 소등하고 자리에 누웠다. 당연히 나는 담요를 덮어쓰고 전자시계 불로 당신 편지를 읽었다. 담요 안은 캄캄했지만 한 달 반 만에 나는 비로소 편안했다. 아주 편한 잠 지리에서 나는 소리 없이 목놓아 울었다.


동이 터오를 때까지 나는 사라졌던 기억 속으로 향했다. 오늘은 꿈을 꾸게 해달라고 붉어진 눈시울이 절박하게 기도했다. 그러곤 꿈도 꾸지 않고 푹 잤다. 그날 이후 꿈을 꾸지 않는 날에도 꿈을 꾸었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더 힘들고 혼자일 당신에게. 백 번째 글은 당신을 위해 쓰겠다고 했다. 말을 하진 않았으니 이건 약속이 아니라 다짐이다. 그렇게 했던 다짐을 중간중간 조금 후회할 뻔했다. 기억하는가? 당신은 두 번째 편지를 보낸다고 했다. 첫 번째 편지와 두 번째 편지 사이에서 백 번째 메아리에 보낼 내용을 이렇게 적었다. 그럼에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당신께 가장 먼저 드린다. 희망뿐일지라도 당신이 아니면 다다를 수 없는 깊이와 높이였다. 메아리의 울림만을 여행이라 불러야 한다는 걸 오래전 당신에게 이미 배웠다.





여름을 강 위 나뭇잎처럼 비에 떠내려 보낸다. 여행 후 시차 적응 중이다.







글을 마치며

백 번째 글을 어렵게 털어놨습니다. 매번 감사합니다. 구독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또 매번 댓글을 달아주시는 윤작가님께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가끔 소중한 댓글을 읽을 때 마주 져 본 적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스치면 작가님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게 한 번쯤 스쳐보기를. 매번 읽어주시는 흑설탕님과 여러 작가님, 가장 먼저 읽어주시는 인디 공책님에게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멀리서 응원과 좋은 글로 격려와 자극을 주시는 예나네 작가님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서술어가 똑같은 걸 보면 글은 백 개를 써도 쉬이 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밖에라고 밖에 부를 수 없어 죄송한 여러 스쳐간 분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빼놓을 뻔한 멀리 있는 내 고향에 있는 최재영 작가님에게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같이 읽고 쓰는 분들 모두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글을 아쉽게 맺습니다. 거창한 인사였습니다. 혹자가 보면 수상 소감인 줄 알까 봐 머쓱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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