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봤습니다. 책기둥을요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눈을 떠보니 휴대폰이 12월이라고 했다. 아침부터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그래서 너랑 나랑 아직도 어색한 사이인 거야"라고 핸드폰에게 말할 뻔했다. 벌써 한 해가 다 지나가고 있다니. 이런 생각을 하다가 책상을 바라봤는데 위태롭게 책기둥이 내 키만큼이나 자라나 있었다. 정리해야지 하면서 짜증을 내며 바라보다가 문득 재미있었다.
방이 좁아서 책을 둘 곳이 없었다. 그래서 책을 보고 나서 한편에 정말 그냥 쌓아놓아 두었는데 지층처럼 한 해를 요약해 보여주고 있었다. 12월 첫 날을 그냥 보내기는 아쉬워서, 문우 분들도 책장을 한 번 잘 살펴보시라고 말하며 글을 적는다. 매번 글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소화하기 급급해 무겁게만 적으면 자주 체한다. 올해 다짐이 무게중심을 잘 유지하자였으니 마지막 달만이라도 잘 지켜보자.
책 밑에는 영어 관련 서적이 많았다. 제일 밑에 보이지 않는 책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이다. 지역학을 공부하다 보니 읽었는데 아마 번역본을 보다가 '차라리 원서를 보고 말지'생각이 들어 샀던 책이다.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 많이 변했다"라고 다이어리에 적혀 있었다. 그다음 아마 북커버에 쌓인 책은 코이카에서 나왔던 『국제개발협력』인 것 같고 그렇게 책을 읽다가 복학을 하려고(이 때는 군대에 있었으니까) 영어 공부를 하다가 '문득' 걱정이 많아졌나 보다. 『채근담』이라니! 책을 읽으며 걱정을 덜어내려고 했었던가. 책을 읽을수록 고민이 더 깊어지는 요즘의 나는 이때의 나를 잘 이해지 못할 것 같다.
그다음은 마케팅 관련 책이 나왔다. 이중전공이 광고 쪽이어서 공부를 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결과가 어땠냐고 물으시면 다음 책이 친절히 답변을 해준다. 조금 과장을 섞으면 그것이 올해 2학기에 겪고 있는 '죄와 벌'이다. 최근에 과제와 팀플을 하면서 생각이 들었다. 가게에서 옷이 정말 잘 맞을 것 같아 고민 없이 샀는데 막상 집에서 입어보니 정말 안 맞는 옷을 사 와버린 기분이다. 그래도 뭔가 얻는 게 있겠지. 새는 매번 알을 까고 나오니깐. 알은 세계이니까. 다음 책은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세트다. 알라딘에서 초판본 모델로 새로 나와서 고민 없이 구매했다. 데미안은 힘들 때 종종 펼쳐보느라 저기 없다.
그러는 사이 드디어 '무기여 잘 있거라'를 외치며 학교로 그리고 사회로 돌아왔다. 문예창작 이론과 실제라는 수업을 들으며 『돈키호테』가 된다. 문학회를 들어가서 다양한 사람과 시인을 만난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곡 '임파서블 드림' 중에서)라는 말을 의역하면 "내 인생을/ 시로 장식해 봤으면/ 내 인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 내 인생을 혁명으로 불질러 봤으면/ 세월은 흐른다/ 그렇다고 서둘고 싶진 않다"(신동엽「서둘고 싶지 않다」)가 될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어느새 "시 안 쓸 거예요"를 입버릇처럼 말하던 내가 우체국에서 붉은 글씨로 '신인상 공모 투고작'을 눌러쓰고 있었다.
힘들 때마다 예전 다이어리를 펼쳐본다. 그다음에는 최근의 책들이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깊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인들의 말에 경외를 느끼면서도 이내 입을 다물고 이에 지지 않으려고 글을 적어낸다. 브런치에, 내 글을 봐주시는 분들 중에 그런 치열함을 가지신 분들이 많다. 할머니께서 내게 인복이 많을 거라고 말하셨는데 인생에서 유일하게 지금까지도 맞아떨어지는 예언이다. 그렇게 매일 『느낌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며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다.
밑에 있는 사진 두 장은 동아리 방에 차려 놓은 미래 서점!이다. 언젠가 책방을 열거면 지금부터 연습해야지! 생각하고 만들어 보았다. 혹시 첫 번째 사진을 보고 정리를 귀찮아하는 성격이구나 생각하셨다면, 이 사진을 보고 오해하지 마시길. 지금까지 제 글을 읽어와 주셨던 분들이면 익숙한 책들이 보이실지도 모르겠다. 입꼬리가 올라가실 당신에게 감사를 드린다. 당신이 제 스물셋이었나 보다. 아무튼 좋은 책은 돌려보고 나눠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가져다 놓았다. 금요일마다 동아리 합평할 때 좋은 간이 도서관이 되어주고 있다! 그럼 싱숭생숭했던 12월 첫 날도 안녕! 안전상 책기둥도 안녕!
*책기둥은 고유명사처럼 쓰고 싶어서 붙여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