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작별」 & 혁오의 「Tomboy」
이런 시대 속에서 사랑은 가능한 것일까. 희망이 악몽 같은, 성공하기도 전에 실패를 예견해야 하는 세대, 다들 넘어져도 괜찮다고 말하지만 넘어진 사람에게 손을 건넬 여유조차 없이 달려가야 하는 시대, 그렇다고 이전처럼 혁명을 이룩할 수도 없는 세계 속에서 사랑은 가능할까. 생계가 보장되지 않고 그렇게 삶이 붕괴하는 과정 속에서도 사랑은 필요한 것일까. 우선 대답을 해보자면 그렇다. 사랑이란 힘겨운 세상 속에서도 인간이 끝까지 지켜내야 할 마지노선이며, 절벽 끄트머리를 겨우 붙잡고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손이다.
평소 한강 작가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작품을 쓰신다고 하셨다. 이와 같은 질문은 경험론적 '사람'이 존재론적 '인간'이 되기 위해 모든 허위와 가식을 벗겨내려는 질문이다. 그래서 그럴까 이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애틋하다거나 낭만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위와 같은 세계에 놓인 주체들이 그런 사랑이 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순수하기보다는 순진한 생각이다. 다만 작가는 일상 속사랑의 다양한 층위를 그려내며 절박하게 항변한다. 완성된 세밀화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사랑은 아무리 물러서더라도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무언가 임을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무너져 내리며 다시 시작할 것이다.
현수와의 이런 관계가 "시작이 언제였는지 그녀는 확신할 수 없다." 언제부터 "보이지 않는 길고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그들을 연결하는 실체로서 존재하게 되고, 그 실의 진동이 출발하고 도착하는 투명한 접지가 몸 어딘가에 더듬이처럼 생겨난 까닭을" 그녀는 모른다. 그래서 혼란스러워하는 그녀가 현수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자 현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걸 사랑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믿지 못한다. 그녀에게서 사랑은 "강렬하게 생겼다가 사라지고 뜨거워졌는가 싶으면 환멸 속에서 식는 무엇"이다. 반면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무색무취인 데다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고요함이어서 거의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함께할 어떤 미래는 기약도 없이, 일 년이 채 되지 않는 지난 시간 동안 그녀는 다만 그 실의 감각만을 매 순간 실체로서 느낄" 뿐이다. 나는 그녀에게 공감하며 "이게 사랑인가?"라고 의문을 품었다. 동시에 이것은 소설 밖의 독자가 작가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이에 작가는 소설 내부에서 끊임없이 '이것도 사랑이다'라는 대답을 품으며 둘의 사랑을 그려나간다. 치열한 그림 속 소설이 끝날 즈음에 절박한 작가와 성실한 독자의 위치는 서로 전치된다. 작품 속에서 '이것까지도 사랑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던 독자에게 작가는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 물어올 것이다.
눈사람이 된 그녀는 "더 이상 그 실이 느껴지지 않았다. 눈이 되어서인지 그 투명한 접지의 감각도, 고요한 진동도 사라졌다" 다만 앞서 서술했듯이 아이에게서 어떤 애틋한 감정을 느낄 뿐이다. 아이와 인사를 끝내고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기 전 망설이며 그녀는 유년시절을 떠올린다. 그녀는 어렸을 적 "살아 있는 자식들을 사랑하는 대신 죽은 첫아이만을 그리워하는 부모의 삶을 그녀는 분명하게 이해하며 지켜"보며 자라왔다. "유년기의 오빠가 실은 조그만 폭군이었다는 사실은" 그녀 자신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으며, 가정에서 그랬던 그가 고등학생이 되어 "학급에서 괴롭힘을 당하다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는 사실을" 그녀는 믿기 어려웠다. 그녀가 더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은 "그녀의 부모가 가해 학생들의 부모로부터 대단찮은 합의금을 받고 사건을 매듭지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유년을 보내온 그녀에게 타인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러나 무참하게 그녀에게 폭력을 가한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야, 그렇지 않아?" 이런 지나치며 들리는 말에 그녀는 "의도적으로 공격받은 것 같은 분노와 굴욕감을 그때마다 느꼈다." 이어서 한강 작가의 특징적인 독백이 나온다.
내가 널 원망할 거라고 생각해왔을지 모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네가 윤이와 나에게서 멀어지는 순간을 난 명백히 이해했어. 자신을 건설하기 위해 가깝고 어두운 이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사람의 용기를. 정말이야,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어. 같은 방식으로 윤이가 나를 떠났다 해도 난 서슴없이 이해했을 거야. 다만 분명히 알 수 없는 건 이것뿐이야. 먼지투성이 창을 내다보는 것처럼. 아니, 얼음이 낀 더러운 물 아랠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 (P.46)
톨스토이가 적었듯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그래서 행복한 추억을 공유할 때 우리는 대부분 우리로서 행복했지만 아픔의 측면에서는 아픔이라는 형식은 같았지만 홀로 아파했다. 그녀는 앞서 말했듯이 현수뿐만 아니라 아이와도 사랑에 어색하다. 세계의 모습과 성질은 사랑의 형상과 특징에도 영향을 미친다. 위와 같은 세계 속에서 사랑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랑을 받아본 적 있는 사람만 타인에게 사랑을 줄 수도 있게 된다. 이러한 성질은 이어서 사랑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야기한다. 그렇게 사람들 속에서 사랑의 가난으로 인해 "철이 들어 먼저 떨어져 버린" 우리는 어느새 보니 "우리는 우린 서로 다른 점만 닮아"있었다. "먼지투성이 창을 내다보는 것처럼" 당신을 바라보고 "얼음이 낀 더러운 물 아랠 들여다보는 것처럼"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너와 이젠 나도 닮았"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김수영-「사랑의 變奏曲(변주곡)」
이어서 작가는 앞서 물었던 두 가지 질문 중 첫 번째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를 그려낸다. 회상과 독백을 끝낸 그녀는 점차 녹아내린다. 그녀 역시 알고 있다. "그녀의 뺨과 눈과 콧날의 윤각이 녹아, 돌이킬 수 없이 변형되었다는 것을." 이제 문제는 소멸이 아니다. 만약 소멸이 확정적이라면 문제는 소멸까지의 과정이다. 변형되어가는 그녀를 바라보는 현수를 보며 "처음으로 이렇게 서로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던 지난여름"을 그녀는 기억한다. 그때 현수에게서 그녀는 "거의 인간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절대적이 신뢰만이 둘 사이에 존재한다고 느꼈었다." 그녀가 아이 외의 타인에게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너무 많이 녹았어요"라고 그에게 말하며 그녀의 곁을 지켜준다. 그는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말을 하기보다는 침묵하는 편이었다. 소멸해가는 그녀를 차분하고도 세밀하게 그려나가며 독자들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며 작가는 한계를 물으며 동시에 경계를 허무는 질문을 한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안타까워하고 있는 당신 역시 눈사람 같은 존재가 아닌가? 회사에 입사하던 인턴을 환기하며 작가는 묻는다. "몇 시간 편하게 자면 뭐하겠어요? 이젠 여기가 집 같아요. 활짝 미소 짓는 인턴의 얼굴은 창백했고, 어떤 야심이나 오기보다는 무서운 피로를 충혈된 눈 뒤편으로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다. 작가는 소멸해가면서도 사랑을 나누는 그녀의 모습을 병렬적으로 그려내며 동시에 "당신의 모습은 눈사람보다도 더 붕괴위험에 처해 있지는 아닌가"라고 묻고 있다.
그 사이에도 그녀는 점점 소멸해간다. 그녀는 현수에게 이제 그만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한다. "삼 남매가 회전목마를 타며 서로의 작은 몸들을 껴안았던 순간, 젖먹이 윤이가 깨어나 스물네 살 난 엄마를 고요히 바라보던 여름 아침 같은 순간들을 더" 생각해 보려 한다. 소멸의 순간 속에서 비록 그녀는 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아직 그녀는 사람이다. 그녀는 눈과 귀와 입술 (감각)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지만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은 오히려 그녀의 기억, 사랑의 순간들이다. 그녀는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고 생각하면서도 소멸의 순간에 대해서는 막상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냥 끝이야"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 순간에 무엇을 할지가 중요해진다. 우선, 홀가분함과 후회 속에서 아이와 대화를 나눈다. 아이는 "나도 사랑해"라고 전화를 끊으며 엄마에게 달려간다. 멀어졌던 거리가 소멸하며 가까워진다.
또한 내리는 눈이 진눈깨비가 되어가며 "이제 다 틀렸어"라고 말하는 순간 현수와 그녀의 입술이 마주한다. "그가 차가움을 견디는 동안, 그녀는 입술과 혀가 녹는 것을 견뎠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랑을 받을 사람만이 사랑을 줄 수 있지만 때로 우리는 그 사람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사랑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은 그 사랑 속에서 소멸해가지만 "그것이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막 수간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그러니 버티는 것이다. 그리고 바라본다. 사력을 다해서. 소멸의 순간 옷(허위)을 벗어내리는 그녀는 "무엇을 돌아보는지 알지 못한 채 사력을 다해, 그녀는 가까스로 뒤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