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짐 걱정에 꼬박 밤을 새우고 공항에서 들려오는 모국어에 이질감을 느끼며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하고 방에 꽂혀있던 이 시집에 자연스럽게 손이 갔습니다. 돌아온 제주에 장마가 한창이었어서 그랬다고 하면 자연스러울까요. 손이 갔던 책은 박준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는 시집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마 인연의 온기가 남아있던 책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시는 '서정적이다'라고 많이 이야기합니다. 거슬러 올라가 원류를 살펴보면, 김소월 시인의 단어 쓰임과도 닮아 보이고 백석 시인의 느낌들이 풍기기도 합니다. 현시대에서 '서정적이다'라는 말은 그 말의 원류격인 '시적이다'라는 말보다 더 폭넓고 빈번하게 쓰이는 듯합니다. 그렇게 '서정적이다'라는 말은 시나브로 모호해져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시의 위기와 더불어 항상 서정의 위기 또한 평론가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논의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길을 헤쳐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보다는 그 사람을 바라보는 분들에 의해서 제기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서정적이라는 기시감을 주지 않았을 뿐이지 서정은 늘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우려 속에서도 서정은 명맥을 이어왔을 뿐 만 아니라 여러 가지 갈래로 나뉘며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며 발전해왔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영역의 시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주의 깊은 독자들에게는 서정적이지 않다는 것은 어떤 시인지, 어디까지 서정인지 오히려 반문을 던지는 듯한 시들도 있었습니다.
개괄적인 논의는 이쯤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서정이 무엇이냐'라는 글은 이렇게 짧고 좁은 식견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는 시 중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느낌을 주면서도 넓은 독자층을 품고 있는 시인이 있습니다. (사실 낭독회에서 다른 시인 분이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이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바로 박준 시인입니다. 서정적이다는 느낌이 '그게 그거'라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고 깊이 들여다보면 차이가 더 뚜렷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차이는 읽는 이에게 표면적인 활자보다는 이면의 어떤 '예감' 혹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선잠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는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선잠」 전문
1. 내가 아직 세상을 좋아하는 데에는
시집을 여는 독자에게 시인이 첫인사를 건네는 시입니다. 시를 읽으며 호흡을 같이 해 보면 그의 시에 독자들이 느끼는 감동과 애정 어린 느낌인 '박준스럽다'가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그의 시에서 어렴풋이는 비판조로 이야기될 때의 어렴풋함과는 결이 다릅니다. 그의 어렴풋함은 시인의 모호하거나 단순한 감정에서 기인하지 않습니다. 이 느낌은 그의 시 속의 다층적인 시간과 공간적 배경 속 인물의 복잡하고도 깊은 감정이 서로 만나며 만들어내는 느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 속의 배경과 사용되는 단어가 일상적이고 투박하더라도 독자의 감정과 깊은 곳에서 감응하며 긴 여운을 느끼게 합니다.
1부 제목이기도 한『내가 아직 세상을 좋아하는 데에는』깊이 들지 못하는 선잠 같았던 인연도 하나의 이유였나 봅니다. 그때를 떠올리며 그는 '그해'라는 단어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선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라고 회상합니다. 그는 우리가 간과했던 '섣부르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때는 최선이었겠지만 지금 돌아보니 설고 어설펐던 감정으로 빚어냈던 마주침이었습니다. 아쉽다면 때를 원망해야 할까요. 그러나 그의 감정선은 이미 그런 어린 감정을 지나선 듯합니다. 이어지는 연들을 보면 그는 기억을 돌아보며 내딛는 걸음 속에서 섣불렀던 기억들의 녹을 벗겨내면서 빛났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예를 들면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과 같은 순간이거나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을 나누었던 때일 것입니다. 돌아보는 그의 시선은 순간의 장면들을 포착하면서 "발을 툭툭 건드리"기도 했으며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으로 향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순간 속에서 걷고 이야기하며 "우리"는 그렇게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를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시 속에서 선잠은 불충분하다는 단어의 '정의'보다는 아쉬운 여운인 '느낌'으로 바뀌어 독자에게 다가옵니다. 그래서일까요. 시의 마지막 연인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은 독자들에게 아련하고 어떤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며 쉽사리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시에 잠기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