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시 「선잠」은 회상이 주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84p」의 첫 연에서 그의 시간관이 단순한 회상에 그치지 않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의 시집을 찬찬히 읽다 보면 현재 시점의 일을 서술하면서도 '~할 것입니다'와 같이 끝나는 문장이 많습니다. 이러한 문장 구조는 그가 현재, 혹은 과거에 서 있더라도 미래를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해주는 매개체는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모두 답이 다르겠지만 그에게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는 일전에 산문집인『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서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구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p.19)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에게 '말'이라는 행위는 현재에 이뤄지지만 과거와 미래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그의 문장에는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나 현재, 혹은 현재와 미래 같이 하나 이상의 시간을 흐르는 문장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 속의 그는 과거에 머무르면서도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살아내며 다가올 시간들을 준비합니다.
이 시에서도 첫 연 이후에 '삼일열'과 '자작나무 꽃'에 대해 듣고 읽었던 바를 찬찬히 적습니다. 그가 과거에서 발걸음을 떼는 순간은 다음과 같은 문장일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전부터 알고 있던 것입니다." 이 문장을 기점으로 그는 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다음 연을 보면 그가 왜 과거로 발걸음을 옮겼는지가 나옵니다.
2. 기다림에 대하여
온몸으로 온몸으로 혼자의 시간을 다 견디고 나서야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다림이란 카톡을 보내면 0.1초도 걸리지 않는 현대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감정이지만 제가 좋아하는 시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돌이켜 보면 학창 시절 반복법, 영탄법과 같은 것만 필기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시였습니다. 여담이지만, 물론 교육 제도도 문제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너무 일찍 시를 읽어버리고 질려버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여기까지 들어오신 분들은 '우리'에 포함되지 않으실 테지만요.)
다시 돌아가자면, 이런 '사소한' 기다림의 미학을 과거에 잘 드러냈던 시가 「즐거운 편지」라면 현대에는 이 시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늦은 해가 나자/ 약을 먹고 오래 잠들었던/ 당신이 창을 열었습니다"와 같은 문장은 그가 과거로 다녀오면서도 현재에서 '당신'을 정성껏 기다리고 있었음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늦은 해"가 보여주듯 꽤나 오래 기다렸음에도 '기다렸던 당신'과 같은 말이 없고 그냥 "당신이 창을 열었습니다"라고 입을 열면서도 동시에 이전 행에서 "약을 먹고 오래 잠들었던"을 통해서 그의 기다림을 보여줍니다.
감상이 아닌 단순 분석에 그친다면 그렇게 대단한 문장은 아닙니다. 그냥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일상적인 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의 대단함과 매력은 이렇게 툭툭 던지는 듯 보이는 공들인 문장에서 새어 나오는 아름다움입니다. 이어지는 연에서도 그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제 입고 개어놓았던 옷을 힘껏" 터는 것을 지켜보고 "그 소리를 들은" 후에 하고 있던 일을 정리합니다. "창밖으로" 새들을 바라보면서 말이죠.
그의 시가 아름답게 혹은 감동적으로 느껴졌던 이유가 다음 연에서 나옵니다. 사뭇 평화롭게만 보였던 시의 일상 또한 "온몸으로 온몸으로 혼자의 시간을 다 견디고 나서야" 맞이 하는 일상이고 그렇게 마주한 당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상과 당신은 쉽사리 다가와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견디고 나서야 "겨우 함께 맞을 수 있는 날들"입니다. 그렇기에 기다림이 가치가 있고 아름다웠으며 또다시 어렵고 힘들 나날들일지라도 늘 또다시 "새로 오고"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