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그해 봄에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가을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 박 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그해 봄에 」
일상(日常), 영어로는 Daily life 정도로 옮길 수 있을 듯합니다. 단어를 이루는 말 때문일까요. 이 일상이라는 단어는 늘 그래 왔고 그럴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래서 종종 따분하다 혹은 지루하다와 같은 단어가 뒤를 잇습니다. 일상 속의 만남도 그러합니다. 단순히 지나치고 만나는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라고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말처럼 어쩌면 익숙함에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지루하던 일상과 사람이 막상 큰 일을 마주하거나 예상치 못한 이별을 겪고 난 후에야 얼마나 소중하고 귀했던 시간이고 사람이었는지 절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첫 연부터 시인이 자신 특유의 어조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라고요. 일상적이지도 않고 자칫 끔찍하게 묘사할 수도 있는 장면이 어조로 인해서 나직이 혼자 읊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두 번째 연에서도 이러한 효과는 계속 나타납니다. "검고 붉은"이라는 부분을 통해 '얼마 전'이라는 시간이 그래도 어느 정도 흘렀으나 아직 외상도 그렇고 내상 또한 완벽히 낫지는 않았나 봅니다.
사건의 전 당신의 삶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3연의 이전에 있던 '물'과 '봄'과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대비되는 '술'과 '밤'과 '나'를 통해서 삶이 순탄하게 흐르지 않았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물은 술이 되었고 봄과 사랑하던 사람은 가고 없습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 처음 던진 질문은 /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에서 우리는 시인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시 속의 나처럼 기다립니다. 감당할 수 없는 문장들이나 순간들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그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도 않으면서 예컨대 다음과 같은 대답을 스스로 들을 수 있을 때일 것입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 내게 고개를 돌려 / 그럼 가을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손목을 그은 당신이 (아마 걱정스럽게 당신을 바라봤을) '나'를 바라보며 외려 웃으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또한 나는 당신에게 왜 죽으려 했는지 직접적으로 묻지 않습니다.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라고 묻습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시를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을 듯합니다. 방점을 봄에 찍을 수도 있겠고 왜에 찍을 수도 있고 혹은 질문 그 자체에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보면 간접적인 질문으로 보이기도 하고 다시 읽어 보면 봄이 뜻하는 바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아니면 너무 어렵게 생각한 것일지도요. '나' 또한 당신의 이러한 순간들을 모두 지켜보고 견뎌주며 이를 함께 이겨낸 사람의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일주일이 넘게 고민하고 고민을 하던 문장입니다. 그러나 답이 나오지는 않더군요. 아직 삶의 깊이가 이 문장의 깊이에 닿지 못하나 봅니다.
그렇게 '나'와 '당신'의 봄과 봄 사이가 흘렀으며 흐르고 있습니다. 위처럼 시는 다양하게 해석하고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통해 새롭게 느낄 수 있다는 면에서 아름답기도 하지만 다음과 같이 확 다가오는 문장으로 인해 또 다르게 그리고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
봄에는 널려 있었다" 언젠가 한 번 느꼈을 감정을 한 문장으로, 한 문단으로 짧지만 깊게 표현합니다. 그렇게 '나'와 '당신'은 봄과 봄 사이를 지나갑니다.
아파하던 마음에 따스한 햇살이 힘겹게 돌아오니 어느새 봄이 가고 있네요
- 그해 봄에 가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