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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욱 Jul 30. 2020

갱년기, 제 몸이 꼭 오래된 아이폰 같아요(1)

 1인 가구 갱년기 여성, 가깝고도 멀었던 그 분들의 이야기



매일 이어지던 회의에서 잃어버린 정신이 돌아왔던 것은 대전으로 가는 기차 안이었다. 대전을 인터뷰하러 가보네. 대전에서 팀원 중에 한 분의 어머니를 인터뷰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인터뷰를 승낙해주신 분은 50대의 1인 가구 분이셨다. 딸고 함께 지냈지만 딸이 상경하신 후에는 혼자서 지내고 계신다. 지인의 어머니여서 오히려 더 떨렸지만 생각보다 더 큰 환대를 해주셨다. 대전은 처음이었는데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될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치고 박준 시인의 『우리가 장마를 함께 볼 수도 있겠습니다』를 드리고 왔다. 그렇게 대전의 아름다움만큼의 책임감도 가지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Part 1. 혼자 이겨낸다는 것의 무게




Q. 저희가 1인 가구 여성분들은 갱년기 동안 심리적이거나 감정적인 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라고 문제를 정의하며 프로젝트를 출발했습니다. 1인 가구로서 갱년기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갱년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냐면요. 갱년기도 처음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삶에서 어떤 역경들은 연차가 쌓이면 어떤 시점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될 거다’라는 예측이 가능한데 갱년기는 이게 예측이 안 돼요. 그래서 감정상태를 내가 컨트롤을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젊었을 때는 감정을 조절하려고 하면 그래도 조금은 가능했어요. 근데 갱년기에 들어서니, 나도 모르게 감정선이 뚝 떨어지는 날에는 거의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감정에 사로 잡혀요. 그런 날은 예고도 없이 오기 때문에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주변에 보통 친구들에게 그럴 때 어떻게 해결하냐고 물어보면 옆에 있는 사람을 막 괴롭힌다고 하더라고요ㅎㅎ 그렇게 감정은 담으면 안 되고 풀어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풀 데가 없으니까 그게 가장 힘들어요. 갱년기라는 게 이 고비가 넘어가면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무언가가 와요. 이게 또 매번 다른 게 어떤 때는 육체적인 증상으로, 어떤 때는 감정적인 걸로 와요. 그러다 보니, 젊었을 때는 스스로도 굉장히 성격이 무난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갱년기 이후에는 업 앤 다운이 계속되다 보니 그게 가장 정신이 없어요.


저는 처음에 갱년기가 왔을 때, 갱년기가 온 줄 몰랐어요. 그냥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상담을 받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주변에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 이야기를 듣자마자 다들 나도 그렇다고 말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어떻게 이겨냈는지 이야기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분들의 경우에는 누군가 같이 해줬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었지만 저는 그냥 스스로가 잘 넘어가야지…


이게 사춘기하고 갱년기 부모 자식이 붙으면 갱년기가 이긴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갱년기랑 사춘기가 달라요. 사춘기는 사실 애가 성장하는 과정이다 보니 주변에서 관심을 주고 케어를 계속해주잖아요. 그렇지만 갱년기는 제가 어른이잖아요. 또 제가 1인 가구이다보니 제가 알아서 스스로 해결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이걸 해소할 능력이 아직 안 되는 것 같은데 계속 뭔가 오니까… 시간이 지나면 그냥 지나가겠지…  없어지겠지…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냥 넘기려고 하는 것 같아요.




Q. 그럼 앞서 감정의 기복을 느끼시는 게 우울하시다거나 갑자기 화가 나신다는 이런 감정의 기복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게 감정이 하나씩 오질 않고 세트로 와요. 얘네들이 어느 날은 우울하고 어느 날은 불안하게 오고 우울, 화나고, 불안, 초조 이런 게 한꺼번에 이렇게 와요. 그런 날이면 진짜… 하, 정말 머릿속이 하얘지고 ‘내가 공황장애인가?’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무기력함으로 빠져요. 그럴 때, 누가 와서 딱 건드리잖아요. 그러면 막 화가 나요. 저도 갱년기에 대해서 이것저것 조사해봤어요. 책도 보고 검색도 해보고 이건 이렇게 넘겨야 해라는 걸 머리로는 알죠. 그렇지만 그 상황이 내 상황이 되어버리면 딱 얼어버리는 거예요. '이게, 정말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구나' 갱년기가 참 사람을 자신 없게 만들어요.


제가 돌아봤을 때 청소년기는 커가는 과정이라 더 멋있어지고 더 젊어지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막연히 꿈꿔왔던 어른이 되는 거죠. 그런데 갱년기는 노화의 과정이잖아요. 노화하는 내 모습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 솔직히 너무 슬퍼요. 저희 어머니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갱년기가 곧 노화로 느껴져서 겪으실 때 너무 충격이고 슬펐다고…


나, 이제 노인이 되는구나 아직 내 인생 덜 살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거 아직 많은데 내 옆에 같이 있어줄 사람이 있으면 괜찮은데
나 혼자 이렇게 하다가 자식들에게 짐이 되면 어떻게 하지?

Q. 그럼 그런 생각이 드실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그냥 … 이야기를 많이 해요. 하지만 아이가 바쁘고 떨어져 있다 보니 다른 엄마들도 보통 그럴 거예요. 제 또래의 혼자 혹은 같이 있는 엄마들도 아이들이 독립을 많이 하는 시기이잖아요. 그래서 갱년기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식에게 건강하지 않겠다 싶어요. 그래서 교회 가서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아요.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계시니까 교회에서 앉아서 푸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요즘 코로나 6개월 동안은 그마저도 못했잖아요. 그래서 더 심한 멘붕이 왔어요.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Q. 코로나 19 때문에 더 힘드셨겠어요.


어느 날 보니 꽃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어요. 요즘 시대에 자식이 바쁜 것은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거니 내 딸이 바쁘다고 ‘너 왜 바빠?’ 이렇게 뭐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친구들이 교회 안에 있으니 친구들이 이야기를 많이 해줘요. 또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있다 보니,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경제적으로 도와주고 우리가 건강하게 잘 버텨주는 게 애들 도와주는 거야"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해요. 이건 모든 부모님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교회 용어로 우리가 신실하게 서 있으면 애들은 알아서 크지 뭐, 이런 이야기를 해요.




Q. 그래도 교회의 친구 분들과 함께 멋있게 이겨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지금 일도 하고 계시잖아요. 혹시 일하시면서 어려운 부분들은 없으셨나요?


갱년기 초반에는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가 공황장애인 줄 알았어요. 도무지 감정 조절이 안 돼서요. 그래서 사고를 한번 크게 쳤죠. 회사를 때려치운 거죠. 그러고서 곧장 딸과 여행을 갔어요. "어차피 우리 인생 한 번뿐인데, 우리 여행이나 가자"하고요. 그렇게 둘이 여행 가서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서 미친 듯이 놀았어요. 그때는 진짜 너무 힘들었던 것이 '설마 내가 마흔아홉인데 내가 갱년기가 오겠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주차를 하고서 사무실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심장이 불안할만치 심하게 뛰는 거예요. 그래도 어떻게 가슴을 부여잡고 사무실에 앉아서 업무를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제가 콜센터에서 상담업무를 하다 보니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요. 근데, 그런 감정 상태로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하잖아요.


그 자리에서 한 시간을 그냥 일을 멈추고 생각했어요. ‘이러다간 안 되겠다 내가 진짜로 죽을 수도 있겠다’ 숨이 쉬어져야 일을 하잖아요. 진짜 모니터도 안 보이고 집중도 안 되었어요. 그래서 작년 5월 한 달을 영혼 없는 사람처럼 놀았죠. 딸이랑 여행 가고 친구랑 여행 가고 한 달간 오로지 쉬는 것에 집중했어요. 그러다 또 제가 일을 잘하기도 하고 운이 좋게 다른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인터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가을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 박 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그해 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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