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는 한강이 쓴 광주 이야기라면 읽는 쪽에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조차 휘청거리게 만든다. 이 소설은 그날 파괴된 영혼들이 못다 한 말들을 대신 전하고, 그 속에서 한 사람이 자기파괴를 각오할 때만 도달할 수 있는 인간 존엄의 위대한 증거를 찾아내는데, 시적 초혼과 산문적 증언을 동시에 감행하는, 파울 첼란과 쁘리모 레비가 함께 쓴 것 같은 문장들은 거의 원망스러울 만큼 정확한 표현으로 읽는 이를
고통스럽게 한다. 5월 광주에 대한 소설이라면 이미 나올 만큼 나오지 않았느냐고, 또 이런 추천사란 거짓은 아닐지라도 대개 과장이 아니냐고 의심할 사람들에게,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둘 다 아니라고 단호히 말할 것이다. 이것은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다.
신형철(문학평론가)
다 읽고 나서 작가가 왜 주어를 '너'나 '당신'으로 설정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한 가지 드는 생각은 그게 '너' 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이 소설을 읽으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넘어가는 종이들이 가슴을 베고 넘어가는 듯 아팠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은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나라가 그들을 죽인게 아니라는 듯이
「소년이 온다」 p. 17
이 책에서 한강의 문장은 그 끝까지 날을 갈다가. 날이 설대로 선 마지막 문장을 우리에게 던진다. 나는 그 문장들을 숨죽여 읽어내다가 마지막 문장을 읽고는 숨이 탁 막혀버렸다.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려지는 동안, 악절과 악절들이
부딪치며 생기는 미묘한 불협화음에 너는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하면 나라란게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소년이 온다」 p. 19
'너'는 불협화음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이 부르는 애국가는 불협화음이다. 그들이 살았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하나의 작곡가가 쓰는 악보가 아니다. 악보에는 청자들이 듣기 좋은 화음들을 그려 넣는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고정되고 안정된 음들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소신껏 자기 음을 낸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라면 그 사회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소리는 불협화음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게 하는 문장이었다.
······ 저 사람들은 누구여? 왜 얼굴을 가려놨는가? 정수리까지 천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노인이 묻는다. 의무를 피하고 싶어 너는 주저한다. 이 순간이면 언제나 주저했다. 피와 진물로 꾸덕꾸덕 얼룩진 흰 문명천을 들추면 길게 찢긴 얼굴, 베어진 어깨 블라우스 사이로 썩어가는 젖무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 채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 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거다.'"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쩍거리는 노인의 두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소년이 온다」 p. 45
그들이 국가라는 이름으로 휘두룬 폭력의 상흔은 그들의 가족과 주변인들까지 번졌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거칠게 꿰메어진 문장들, 문단 째로 검게 지워진 자리들, 우연히 형상을
드러낸 단어들을 그녀는 생각한다. 당신을. 나는. 그것은. 아마도. 바로.
우리들의. 모든것이. 당신은. 어째서. 바라봅니다. 당신의. 눈은.
가까이에서.멀리에서.그것은.또렷이.지금.좀더.희미하게.
왜 당신은.기억했습니까. 숯이 된 문장들 사이에서 그녀는 숨을 몰아쉰다.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소년이 온다」 p. 80
나는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우연한 문장에 압도되었다. '왜 당신은. 기억했습니까' 갑자기 이 페이지에서 이 문장만 툭 튀어나온 듯했다. 그들의 음성이 들렸다. '왜 당신은'과 '기억했습니까' 사이의 점이 날아와 가슴을 찌르는 듯했다. 내가 왜 기억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왜 그들을 기억해야 했는지는 넘어가는 페이지가 늘어날 수록 점점 더 명확해졌다. 계속 읽어내야만 했다.
내가 이 사건을 설명해야 합니까?
···중략···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김진수가 어떤 이유로 이 사진을 끝까지 가지고 있었는지,
왜 유서곁에 이 사진이 놓여 있었는지 내가 이제 추측해야 합니까?
여기 직선으로 쓰러져 죽어있는 아이들에 대해 선생에게 말해야 합니까?
무슨 권리로 그걸 나에게 요구합니까?
「소년이 온다」 p. 132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소년이 온다」 p. 135
두 번째 장은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혼자서 답을 해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어떤 질문에도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질문은 대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닌 듯 했다. 또한, 나의 슬픔과 고통의 깊이는
그들을 이해하기엔 너무나 얕았다. 질문할 권리는 물론 대답할 권리조차 나에게는 없었다.
이름만 걸어 놓고 얼굴도 한 번 안 비쳤던 유족회에 처음 나간 것은
부회장이란 엄마가 돌린 전화를 받고서였다이. 그 군인 대통령이 온다고,
그 살인마가 여기로 온다고 해서····· 네 피가 아직 안 말랐는디.
「소년이 온다」 p. 188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봤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었지마는 아무도 찾아올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 번 접어 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소년이 온다」 p. 192
이전까지 인물들은 입술을 꽉깨물고 우리에게 묻고 서사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 눈물을 참기엔 그 눈물의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었나보다. 사투리로 바뀌며 '엄마'가 나온다. 아들을 쉽사리 부를 수도 없는 엄마의 비애 앞에선 이전까지 나의 슬픔과 분노도 하찮은 것처럼 느껴졌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앗다. 광주가 수 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푹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소년이 온다」 p. 207
광주는 끝나지 않았다. 작가의 묘사는 잔인해서 더 현실적이다. 반복되어야 할 역사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는 왜 계속 반복되고 끝나지 않는 것일까?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 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소년이 온다」 p. 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