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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비버 Oct 23. 2024

[롱울] 어느 날 내 일상으로 권고사직이 들어왔다

예정에 없던 쉼표가 찍힌 스물아홉 여름

언제부턴가 내 글에는 쉼표가 많아졌다. 저 멀찍이 떨어진 마침표를 대신해서 숨 고를 타이밍을 일러주는 친절한 이정표. 사회인이 된 후로 출근과 퇴근, 쏜살같이 사라지는 주말을 반복하는 사이, 내 일상에도 쉼표가 간절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한번 사회에 발을 들인 이상, 글이 아닌 일상 속 쉼표라는 것은 예전만큼 반갑지도, 마음 편하지도 못한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내 자의로 쉼표를 찍고 싶을 때면 더 그랬다. 지금도 내 하루는 어찌저찌 굴러가는데, 그럼에도 쉼표가 필요하다면 그 명분은 무엇일까. 주변 사람들은 물론 나 자신에게도 소명하기 어려웠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나 돈. 정기적으로 따박따박 나가는 카드값과 적금,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데 근로소득을 포기한다고? 그동안 열심히 모아둔 돈이 있다지만, 지금 당장 나를 위해 쓰기에는 너무나 작고 소중한 액수였다.


그래, 회사는 돈 벌러 가는 곳이지. 지금처럼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시대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 자체로 감사해야 했다. 적어도 내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리해서 쉼표를 찍을 생각은 없었는데…. 뜻밖에도 쉼표가 찍히는 순간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어느 날 회사 그룹웨어에 장문의 공지문이 올라왔다. 회사 경영 악화로 인한 대규모 권고사직. 책임자는 강 건너 불구경 화법으로 유감을 표했다. 하루아침에 갈 곳 잃은 사람들의 분노는 곧 저격글로 이어졌다. 누구 때문에 회사가 망했네 어쩌네. 분열이 일어나고 서로 책임 소재를 따지기 바빴다. 정보를 의도적으로 통제하는 듯한 사측의 태도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상실감과 배반감을 충분히 느낄 새도 없이, 내 머릿속은 당장에 먹고살 궁리를 하느라 빠르게 식어갔다. 개중에 다행으로 희망자에 한해 비슷한 규모의 회사로 흡수된다는 선택지가 주어졌다. 달리 말해 지금 여기서 회사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강제적인 상황 탓을 할 수야 있겠지만 결국 입사 포기는 내 선택이 되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라야 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더 늦기 전에 업계와 직무를 전환하려면 쉼표가 필요하다는 결심이 섰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새로운 직장에서 똑같은 위기를 겪더라도 지금처럼 무기력할 것만 같았다.


어렵게 결심을 이야기했을 때 예상했던 대로 부모님은 걱정하셨고, 직장 동료들은 만류했다. 그렇지만 또 누군가는 내 결정을 지지해줬고, 나 또한 답이 정해진 사람처럼 내가 듣고 싶은 의견에 더욱 무게를 실었다.

예정에 없던 쉼표 선언을 거쳐 마침내,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처음 며칠은 도리어 마음이 평온했다. 오랫동안 앓던 사랑니를 뽑은 듯해 속이 다 시원했다. 지난 경력과 경험을 돌아보며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한편, 나에 대한 보상으로 한 달간 잉여 인간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뒤늦게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라는 게임에 빠져 300시간을 플레이했다. 이것이 진정한 메타버스구나 감탄하면서. 그렇게 평소의 주말보다 더 쏜살같은 한 달이 지나갔다.


행복했던 메타버스에서 눈을 떠 현실의 내가 눈에 들어오자, 그동안 모른 척 미뤄두었던 불안감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나는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 의연할 만큼 유연한 성격이 못된다. 걱정도 많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이라, 최대한 상황을 예측하고 통제하기 위해 습관처럼 플랜 B, C를 세운다. 그런데 문득 그 플랜들의 실현 가능성이 과연 몇 %나 될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스물아홉에 불쑥 찾아온 예정에 없던 쉼표. 글에서 쉼표는 이정표라면, 일상 속 쉼표는 그래서 내가 숨을 얼마나 길게 골라야 하는지, 쉼표 이후에도 무엇인가 존재하기는 하는지, 그 어떠한 정보도 제공해주지 않는다. 이대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나이만 먹으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있을까. 덜컥 겁부터 났지만, 달리 물러설 곳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이직 시장에 뛰어들었다.


시간이 지나 새로운 곳에서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게 된 지금, 돌이켜 보면 내 쉼표는 쉼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갑작스럽게 문을 닫은 회사도, 주변의 걱정이나 호기심 어린 시선 탓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마음이 힘든 시기에 나를 상처 입히기 가장 쉽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내 취준 생활은 만성적인 자기 비하와 일시적인 회복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위안이 된 사실이 있었다. 몰랐는데 나는, 적어도 학생 때보다는 실패와 거절에 면역이 되었더라. 그렇다고 해서 뭐 대단한 면역력은 아니다. 여전히 나를 부정당하는 것은 아프고 괴로운 일이다. 좌절감, 무력감에 못 이겨 순간의 감정에 매몰될 때도 많았다.


그렇지만 내 마음이 망가지지는 않을 정도, 바닥을 찍어도 씩씩거리고 욕하면서 딛고 일어설 정도, 딱 그만큼의 면역이 나에게 생겨 있었다.


일상 속 초대받지 않은 쉼표 따위는 이제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지만, 사람 일은 모른다고 또 언제든 내 일상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아직 쉼표를 지나친 지 얼마 안 된 탓에, 그때의 기억도 내가 입은 상처도 생생한 까닭이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분노를 원동력 삼아 불청객을 내쫓든 그 등쌀에 못 이겨 이사를 가든 나는 나대로 다시 살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행복이 일시적이듯 불행 또한 영원하지 않음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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