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의 시작 -아버지
누구에게나 아버지와의 추억은 있다.
나에게 그 추억은 소리로 남아 있다.
음악이 흐르던 집, 그리고 그 음악의 중심에는 늘 아버지가 계셨다.
나의 음악에 대한 시작은 아버지가 사주신 워크맨에서 비롯되었다.
지금처럼 브랜드를 따지고 모델명을 외우던 시절은 아니었다.
손에 쥐면 묵직했던 작은 기계 하나,
테이프를 넣고 ‘딸깍’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흘러나오던 소리.
그 소리 하나로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이던 시절이었다.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는 많지 않았다.
워크맨과 음악은 그 시절의 나에게 분명 고급스러운 사치였다.
하지만 그때 들었던 음악들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도 아버지와의 추억을 생생한 감각으로 기억할 수 있다.
소리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지금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2024년은 유난히 버거운 해였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2025년의 시작과 함께 또 한 번, 두렵고 피하고 싶은 고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달쯤 전,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셨다.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대학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림프종이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3개월 정도 지나면 많이 안 좋아지실 겁니다.”설마, 설마 했다.
하지만 시간은 정확했고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지금 아버지는 하루하루가 참 힘겹다.
곁에서 바라보는 나는 해드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저 고통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는 기도만 반복할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은
생각보다 깊고 오래 남는다.
몇 해 전부터 아버지는
뒷산에 있는 산소 이야기를 꺼내셨다.
“거기 정리하고, 내 자리는 어디쯤 해달라”는 말씀을
아무렇지 않게 하셨지만
나는 그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척했다.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도 이상했고,
미리 준비한다는 행위 자체가 왠지 송구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미루고, 또 미뤘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다급해지고 있다.
시간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제야 선명해진다.
돌아보면
내가 오늘날 카세트라는 취미에 깊이 빠져 있는 이유도
결국은 아버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릴 적 아버지가 듣던 카세트테이프들. 메이커도, 모델명도 몰랐지만
비슷한 모양의 카세트를 발견하면 마치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때의 공간과 냄새, 온도까지 함께 떠오른다.
1970년대,
아직 어린 나이였던 나는 아버지가 들으시던 노래들을 따라 외우고 다녔다.
이상하게도 그 노래들은 유난히 좋았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곡들이 있다.
아버지는 조용필의 노래를 한없이 들으셨다.
특별한 설명도, 감정 표현도 없이
조용히, 묵묵히.
그 노래들은 말이 적은 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의 마음을 전해주던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내 첫 워크맨도, 첫 카세트도
당연하다는 듯 아버지가 사주셨다.
그때는 몰랐다.
그 작은 선택 하나가
내 인생의 취향과 감수성,
그리고 지금의 나까지 이어질 줄은.
이제 나는 아버지의 음악을 다시 듣는다.
추억으로 가 아니라,
작별 인사처럼.
워크맨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사이로
아버지의 시간이 겹쳐 들린다.
그 소리들은 내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가장 오래 남는 유산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재생 버튼을 누른다.
아버지와 함께 시작된 이 여정의 처음을,
그리고 끝을
음악으로 붙잡기 위해서.
음악이 가장 좋았던 시절은
많이 가졌던 시절이 아니었다.
오래된 생각이다.
가장 음악을 좋아했고, 가장 위로받고 행복했던 시절은
공테이프 몇 개와 조그만 붐박스 카세트 하나가 전부였을 때였다.
(공테이프조차 비품이던 시절, SK 스매트도 아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녹음 버튼을 눌러 담아 듣던 그때가 음악을 가장 사랑했던 시절이었다.
지방 방송이었지만 별밤에 사연을 보내 신청곡이 나오면 숨죽여 녹음 버튼을 눌렀다.
친구 집에 있던 멋진 붐박스 카세트를 한 번 만져보고 싶었지만 쉽게 허락받지 못해
멀리서 구경만 했던 기억도 있다.
그래도 나만의 카세트 플레이어로 모던 토킹이나 아하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대학생이 되어 첫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큰 붐박스 카세트를 샀다.
핑크 플로이드, 탠저린 드림, 헬로윈과 메탈리카, 그리고 클래식 음악까지 음악의 폭은 넓어졌고
테이프도 늘어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행복은 크게 늘지 않았다.
점점 더 많이 가졌고, 점점 더 쉽고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도구와 자료가 쌓였지만
그에 비례해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듣지 않은 음반과 CD, 음원만 쌓여갔다.
많아지면 포기해야 할 것도 많아진다.
경제학의 기회비용처럼 음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자 취향의 문제다.
1,000장의 음반이 있어도 한순간에 다 들을 수는 없다.
실제로 자주 듣는 음반은 몇 퍼센트나 될까.
오히려
‘언젠가는 들어야 하는데’라는 압박이 나도 모르게 쌓여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음악에 대한 흥미가 서서히 사라졌다.
반젤리스의 〈불의 전차〉, U2의 〈With or Without You〉, 아하의 〈Take On Me〉,모던 토킹, 베토벤의 〈황제〉를 들어도 예전 같은 감흥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싶었고, 갱년기 탓인가 하며 넘겼다.
인생의 풍파를 겪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시간도 있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카듣사 카페를 만나게 되었다.
아마 오래된 카세트 모델을 검색하다가 들어갔을 것이다.
어릴 적 보았던 카세트들이 지금도 재생되고 여전히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일본 옥션, 이베이, 동묘까지 조금씩 발길이 이어졌다.
옛날의 방식으로 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던 테이프를 이미 다 버린 뒤였기에 테이프 하나하나가 더없이 소중했다.
시대를 거슬러 구식의 방식으로 음악을 들으니 음악은 다시 깊어졌다.
음악을 너무 편하게 듣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적어도 나에게는.
조금 불편하고, 조금 느린 방식의 음악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레트로 감성이라 불러도 좋겠다.
욕심이 생겨 테이프를 늘리고 싶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
슬로시티, 슬로푸드처럼 뮤직 라이프도 슬로우를 선택했다.
한 번에 많이 갖는 것보다
적게, 천천히,
충분히 듣고 느끼는 쪽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잘 맞는다.
그렇게 아무 테이프나 걸어 한 면을 끝까지 들어도 짜증 나지 않는 지금이 좋다.
행복은
소유와 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오늘도
테이프를 돌리며
아버지의 시간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