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얼굴을 하고 있다
엄마, 엄마도 귀에 뭐 예쁘게 달았으면 좋겠어요. 반지도 하고...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하원 하자마자 울먹이며 반지를 들먹이기 시작하던 아이. 알고 보니 담임 선생님께서 하고 온 반지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거다. 갑자기 반지를 사 달라고 하는데, 결혼반지는 도둑맞았고 아이의 돌반지마저 다 처분해버린 상태라 집에는 반지라곤 없던 터였다. 다행히 보석 사탕반지로 금세 달래어졌지만 아이 눈에 이쁘게 보였을 선생님의 액세서리가 엄마에게 없는 게 아쉬웠는지 한 마디를 보탰다. 갑자기 그 말에 당황스러워졌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 편안한 옷차림의 엄마 모습이라도 "엄마는 예뻐요. 우리 엄마가 제일 예뻐요."라고 말해주던 아이였는데. 괜히 거울을 한 번 들여다본다. 보이지 않던 기미와 잔주름이 눈가에 가득하다. 액세서리 하나로 이뻐질 나이는 아니다.
외할머니는 내 얼굴을 보고 용기가 없는 얼굴, 용맹이 없는 얼굴이라 하였다. 용기가 있는 얼굴은 어떻게 생긴 얼굴일까... 두껍게 아이라인도 그리고 마스카라로 눈썹을 길게 올려 눈매에 힘을 줘볼까? 그렇게 한들 용기가 충천해질 수 없는 걸 알면서도 헐빈한 화장대를 흘끗 쳐다본다. 이제껏 귀를 뚫지 않아 귀걸이조차 하나 없는 내가 그런 화장도구를 산들 몇 번이나 할까. 걸리적거리는 액세서리는 내 취향이 아니다. 가끔씩 멋 내는 일에 무관심했던 내 청춘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꾸미는 일에는 여전히 젬병일 게 뻔하다. 그게 나다.
어쩌면 시시하고 밋밋한 내 글도 내 얼굴을 닮았을까. 짧고 굵게, 예리한 펜으로 생각과 가슴을 깨우는 문장가는 못된다. 논문이 훨씬 읽기 편하다는 남편은 내 글을 소위 '흔한, 여자들의 글'이라고 평가하곤 한다. 뭐, 웃어넘기지만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겐 공격적 발언이 아닐까 하고 쏘아붙였다. 어쩌면 글도, 얼굴도 한 사람의 삶의 태도와 성격이 스며있어 어쩔 수 없이 그러한 거 아닌가 싶다. 나는, 내 얼굴은, 내 글은...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의 목표물이 될 때가 있다. 급한 일로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차비를 좀 달라하는 청년,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다가오며 도를 아십니까 묻는 2인조 아저씨들, 특별히 싼 값에 주겠다면서 길거리에서 홍삼액을 들고 판매를 유도하시는 분... 온갖 홍보와 구매실적의 목표물이 되는 나의 얼굴에 한동안 속상했던 적이 있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어떤 이들에게 용기가 되는 만만한 얼굴인가 싶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때론 못 이긴 척 들어주고 알면서도 속아준다. 그들의 의도가 나쁜 것이라 여겨지면 짧은 말로 거부하기도 하는, 나름 아줌마의 저력도 보여주면서... 그리고 내 글도, 나의 존재도 어떤 이에겐 다가가기 쉬운, 용기내기 쉬운 존재이기를 바라보는 거다.
엄마가 안 예쁜 거야?
아니, 아직도 예뻐. 혼내기는 하지만 예뻐.
금세 웃는 얼굴로 엄마를 보듬는 아들의 얼굴은 어쩔 수 없이 나를 닮아 있다. 아이의 여린 마음이 묻어나는 얼굴은 때론 상처 받는 일에 더 많이 노출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인 나에게만은 너무 예쁜 얼굴이다. 사랑하기에 예쁠 수밖에 없는 얼굴. 시절이 지나며 삶을 담은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너에게는, 나에게는 그런 얼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