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이든
해가 서산에 걸릴 무렵, 모짜렐라 치즈처럼 쭈욱 길어진 우리의 그림자. 높은 가을 하늘, 적당히 선선한 바람은 아이들을 지칠 줄 모르게 만든다.
매미채 한가득 참개구리들을 모아 구석진 벽까지 나를 몰아넣고 겁을 주던 오빠의 짓궂은 장난 이후로는 잘 잡던 메뚜기조차 겁을 내던 나였다.
엄마를 안 닮아 다행인 건지, 아들 셋은 폴짝거리는 것들을 쫒아 눈을 빛내며 뛰어다닌다. 덥석 덥석 메뚜기를 잡는 형아를 따라 동생들도 메뚜기는 장난감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메뚜기를 잡은 아이들은 해맑게 행복하여도 잡힌 메뚜기는 조몰락대는 아이들 손에서 얼마나 괴로울까. 메뚜기를 볶아 먹으면 맛있다는 왕할머니 말에 신나게 메뚜기를 잡고는 요리를 기다린다. 간식이 없던 시절에나 먹었던 메뚜기 아닌가, 내 어릴 적에도 먹지 않던 음식?인데 설마 하니 먹을까 싶었는데 소금 넣고 참기름에 들들 볶은 메뚜기를 맛있다고 먹는 아이를 보며 나는 그저 뜨악하게 쳐다만 보았다.
커가는 호기심만큼 걸음도, 눈치도 빨라졌다. 장맛비에 쑥쑥 자라는 잡초들만큼 거침없이 크는 것 같은 아이들... 계절이 바뀌는 시점을 지나치지 못하고 또 한 번 열이 아이들을 휩쓸고 가지만 열만 떨어지면 호핑 스텝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곁에서 나만 녹초가 된다.
제 키만큼 자란 강아지풀을 훑어 손에 쥐고 들꽃이 보이면 꺾어 민들레 씨앗처럼 후후 불어보다 제 풀에 지쳐 휙 던져버린다. 마당에 굴러다니는 탱자 하나도 기막힌 장난감이 되어 아이들 손에 속이 다 까발려진다. 느릿느릿 기어가는 민달팽이도, 사진에서나 보았던 붉은 깃의 딱따구리를 먼발치에서 구경하게 될라치면 나도 어느새 아이와 숨죽여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께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이 하루가 또 지나지만, 어른인 나에게는 아이들은 모르는 소식들과 걱정들도 함께 얹어진다.
어느 날 털썩 주저앉은 고모네 할머니는 일어날 기미가 없으시고 우울증 약을 끊으셨다던 시어머니의 병세는 심상찮다. 내일 곧 뵈러 가야 할 것 같다.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저물어 가는 하늘 아래 밭일을 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어우러진다. 참 평화로운 장면 같지만 하루의 고단함과 수고, 그들 안에 있는 어떤 사연들은 아마도 묵직하게 그들의 삶을 일구고 있을 것이다.
어릴 땐 몰랐던 어떤 무게들을 지고 저마다의 터를 일구고 있는 우리네 하루가 오늘, 저물어 간다. 아이들의 눈에는 아름답기만 한 노을. 그 노을이 내게 건네는 의미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