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四季)의 위로

자연스럽게 자라기를

by 꿈꾸는 momo

시골이 싫었다

진양건강원, 창수네 청과, 문산 상회, 현대떡집, 흑백사진관…. 칠이 벗겨지고 빛바랜 간판의 문구들이 그대로다. 이 동네는 40년이 지나도록 변한 게 없다. 아니, 더 쇠락했다. 5일장이 서던 골목은 한산했고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장터의 규모는 형편없이 작다. 오래된 가게들이 즐비한 중심가를 벗어나 한적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논밭이 펼쳐지고 낡은 집들이 부락을 이루고 있다. 군데군데 새로 지은 집들이 보이지만 주변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건축이 용이한 패널집이 대부분이다. 우물이 있던 곳에 자리한 끝집을 지나 200미터쯤 더 들어가면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자락 아래 친정집이 있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난 시골이 싫었다. 비가 오면 신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길과 건조한 때의 흙먼지 냄새도 싫었다. 굵고 윤나는 탱자나무 가시가 나를 위협하던 길, 먹지도 못하는 탱자가 가시나무의 진한 어둠 속에서 달큰한 냄새를 풍기는 것도 싫었다. 가끔씩 풀밭 사이를 유유히 기어 다니는 뱀을 보거나 갑자기 튀어 오르는 개구리를 만날 때면 꽥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곤 했다. 어디선가 쏜살같이 날아드는 곤충들도 언제나 내게 두려운 존재였다.

시골이 싫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심심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늘 바쁘셨다. 그래서 놀이의 공간은 늘 썰렁하고 조용했다. 마당에서 제법 동글동글한 돌멩이를 골라 공기놀이를 하거나 낙서하다 심심해지면 집 앞 언덕을 올랐다. 언덕배기까지 5분도 안 걸리는 낮은 곳이라 봉긋 올라온 무덤도 겁내지 않고 지나다녔다. 그러곤 아무데나 퍼질러 앉아 꽃을 댕강댕강 꺾거나 삐비를 따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재미있어서라기보다 심심해서였고 맛있어서라기보다 먹을 게 없어서 그랬다. 어쩌다 칼풀을 잡아 빼다 손을 배이면 시큰시큰한 손바닥을 옷에 슥슥 문지르곤 했다.


아이와 다시 찾은 시골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게 벅찼다. 지친 몸을 이끌고 아이를 데리고 간 것은 첫째가 4개월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가끔씩이라도 아이를 업고 돌봐 주시는 친정엄마와 외할머니가 계신다는 것이 그렇게 큰 힘이 될 줄은 몰랐다. 온통 아이에게만 가 있던 내 시선이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생겼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 시골의 풍경은 내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엄마, 개미 좀 봐요. 줄을 서서 지나가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자연은 아이에게 매일매일 변하는 거대한 놀이터였다. 우리는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개미가 줄지어 가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하고 그것을 종이에 그려보기도 했다.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는 일은 즐거웠다. 무심코 지나쳤던 주변의 것들이 부지런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계절을 따라 변하는 자연의 섭리가 놀랍도록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왜 어릴 때 이런 걸 보지 못했을까. 아이와 함께 숲길을 걸으며 잔뜩 웅크리고 있던 유년의 내가 보였다. 소나무가 빽빽한 언덕배기에서 아이와 함께 야호 소리도 치고 예쁘게 생긴 솔방울을 주워 오기도 하며 그때의 나를 위로했다. 흑백과 같던 어린 시절의 풍경이 알록달록해지기 시작했다.


사계(四季)의 위로

얼었던 땅이 녹기 시작하면 땅은 어김없이 생명을 퍼 올렸다. 밭두렁마다 쑥과 냉이가 올라오고 그것이 다시 밥상에 올랐다. 된장국에 고스란히 섞인 쑥 향과 냉이 향은 허약한 내 몸에 기운을 북돋았다. 아이는 양지바른 곳에 촘촘히 핀 개불알꽃을 좋아했다. 아이의 손가락이 작은 꽃잎을 건드리면 이른 봄의 쌀쌀한 바람결을 따라 꽃잎이 흔들렸다. 봄이 되면 외할머니는 신이 나셨다. 새로 돋은 찔레 순을 따 껍질을 까 주면 아이는 그것을 맛있다고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해가 길어지고 봄이 깊어지면 앞산 뒷산 할 것 없이 꽃 천지가 된다. 매화꽃, 벚꽃, 복사꽃…. 꽃이 지면 열매가 익기 시작한다. 뽕나무에는 오디열매가 새까맣게 달렸다가 후두두 떨어지고 앵두와 산딸기, 보리수는 발갛게 달려 눈과 입을 즐겁게 했다. 한 움큼 따서 입에 넣어주기가 무섭게 손을 벌리고 서 있는 아이를 보며 외할머니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부엌에선 어머니가 오디 잼을 졸이고 계셨다.


여름이 오면 낮은 길어지지만 산책시간은 제한된다. 이른 새벽에 한두 시간 잡초를 뽑고 나면 농사일도 잠시 쉬어가야 한다. 뜨거운 볕 아래서 수국은 화사하게 피고 곡식들은 여물어 간다. 한낮의 더위에 모두 나른하고 조용한 오후를 보낸다. 멀리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을 자는 아이 옆에는 부채질을 해 주시며 꾸벅꾸벅 졸고 계시는 외할머니가 계셨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해질녘에야 마실을 나서면 고추밭의 고추들은 드문드문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어느새 내 키를 넘어선 옥수수 밭을 지나 초록의 파도처럼 넘실대는 논 옆을 지나면 귀가 따갑도록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어머니가 알이 여문 옥수수를 골라 삶아 오면 우리는 한자리에 둘러앉아 후후 불어가며 옥수수 알을 배어 물었다. 그게 그렇게 꿀맛이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바람으로 알 수 있다. 가을이 왔다고 느낄 때쯤 아침, 저녁의 기온은 떨어지고 곡식들은 색깔을 바꾼다. 굵은 감은 붉은 노을을 빨아먹은 듯 주홍빛으로 익어가고 밤송이는 입을 벌려 알밤을 토해낸다. 집집마다 자리를 깔아놓고 깨를 털어 말리거나 고추를 말리느라 여념이 없다. 시골길은 널어놓은 곡식들 때문에 다니는 길이 좁아진다. 그러다 갑자기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면 비설거지를 하느라 분주해진다. 하지만 아이는 비가 오든 말든 상관이 없다. 하늘이 울고 비가 쏟아져도 그저 즐겁다. 장화를 신고 비가 고인 웅덩이에서 찰박거리다보면 금세 배가 고파지고, 때마침 할머니가 부쳐온 호박전 냄새에 달음박질한다. 비가 그치고 나면 숨어있던 지렁이와 민달팽이가 바닥에서 구물거리는 것을 구경하다 수풀 사이를 뛰어다니는 메뚜기를 잡느라 쫓아다니는 것도 큰 재미다. 분주했던 가을걷이가 끝나면 시골의 창고에는 먹을 것이 차곡차곡 쌓인다. 누런 호박과 말린 고추, 콩과 깨….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알이 꽉 찬 배추를 뽑아 손질하고 김장을 준비한다. 어머니가 절여놓은 배추에 다 같이 양념을 바른다. 아이는 곁에서 구경을 하다 외할머니가 내미는 김치 한 조각을 맛보다 인상을 찌푸린다.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코에서는 맑은 콧물이 찍 흐른다.


외할머니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독사 같다고 하셨다. 시골의 겨울은 춥고 황량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매일 언덕을 올랐다. 떨어진 솔잎과 낙엽을 밟고 오르다 아직 썩지 않은 밤과 도토리를 찾아내기라도 하면 횡재한 듯 즐거웠다. 도토리를 삶아 머리에 이쑤시개를 쑥 끼워 넣으면 우리들만의 멋진 팽이가 완성되었다. 도랑물이 꽁꽁 얼면 아이의 새로운 놀이터가 생겼다. 언젠가 아버지는 누가 버린 눈썰매용 썰매에 끈을 매달아 아이의 썰매를 만들어 주셨다. 털장갑에 모자를 눌러쓰고 두툼한 외투를 입고 선 아이의 눈이 빛났다. 썰매를 끌어주자 처음엔 무섭다고 겁을 내더니 곧 신이 났다. 불룩 튀어나온 돌멩이에 걸려 뒤로 넘어져도 아이는 그저 깔깔 웃었다. 끌어주는 나도, 수십 번 엉덩방아를 찧은 아이도 지칠 때쯤 갓 삶은 고구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와 볼이 빨갛게 된 아이는 할머니 최고를 외치며 고구마를 먹었다. 고구마에서 피어오르는 뽀얀 연기가 달콤했다.


복직을 하면서 나는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이제 교육기관에 맡겨져 반복되는 일상을 보낸다. 얼굴이 하얀 도시 아이들과는 달리 아이들의 그을린 얼굴은 눈에 띈다. 하지만 계절이 변하는 풍경을 알아차리는 눈과 발밑의 작은 생명도 사랑할 줄 아는 밝은 마음을 가졌다. 어쩌면 자연 속에서 자연을 누리며 자연스럽게 자라는 것 자체가 내가 아이에게 준 유년의 선물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을 다녀와야겠다. 아마도 우리가 간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외할머니와 엄마는 분주하실 것이 틀림없다. 아이들에게 먹일 알밤을 틈틈이 까놓고 기다리고 계실 외할머니 모습이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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