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살을 향해 던지려 했던 열세 살의 마음
어느 날, 퇴근해 온 남편이 글을 내밀었다. 이것 봐. 우리 반 여자애가 쓴 글인데, 너무 심각하지? 혹시 자살방지 상담이나 심리 치료 같은 걸 받아야 할까? 아이의 글은 줄공책 세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나도 너처럼 불안하고 힘들 때가 있었어. 누가 날 좋아할지, 누가 날 아껴줄지 몰라서... 나도 너처럼 잘하는 게 없거든. 똑똑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은 쓰레기 같은 존재야. 그래서 최대한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혼자 죽으려고 시도도 해봤고 생각도 해놨어. 죽을 날짜도 정해놓고... 근데 왜 아직도 살아있는지 알아? 사는 날이 다 불행한 건 아니야...
4학년 여자애의 글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글을 읽으며 난 오히려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힘든 주인공의 상황에 자신을 대입하며 죽어버리고 싶다고 한 문장 때문에 남편은 그토록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열세 살,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말이 단숨에 우리를 묶었다
우리는 떡보 다리로 갔다. 원래 이름이 따로 있었지만 모두가 그렇게 불렀다. 떡장수가 지나가다가 빠져 죽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나. 이제 떡보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질 거다. 알 수 없는 저항심과 자기 연민의 감정으로 뒤섞여 비장하기까지 했던 우리, 무거운 걸음으로 걷는 동안 아무도 말이 없었다. ‘열세 살 소녀들의 장례식’ 따위의 문구가 실린 신문과 뉴스가 상상 속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누구의 입에서 먼저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맞아. 맨날 공부만 강요하는 세상이 싫어. 우리 같이 죽어버리자.
시험을 친 날이었다. 공부라고 해봤자 학교에서 받는 수업이 전부였던 우리에게도 시험과 성적은 가장 두려운 것이었다. 성적에 따라 선생님과 부모님, 친구들로부터 받는 대우가 달라졌으니까. 있잖아, 사회 맨 마지막 문제 말이야, 2번 맞지? 종례가 끝나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실을 빠져나간 후였다. 우리 여섯 명은 여느 때와 같이 각자의 공깃돌 주머니를 들고 교실 뒤편으로 모이며 넋두리를 쏟아놓았다. 알록달록한 공기알들도 바닥에 쏟아졌다. 공기알 속의 수많은 금속알갱이들이 부딪히며 묵직하게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어제는 경쾌했던 그 소리가 오늘은 시시했다. 어떡해. 이번 시험 망했어. 이번에 평균 90점 이상 못 받으면 엄마한테 쫓겨나는데. 울상이 된 지영이가 말했다. 모두 비슷한 말을 한마디씩 하며 풀이 죽어 앉았다. 선정이는 또 올백일 거야. 걔는 지금도 집에서 공부만 하고 있을걸! 항상 반에서 2등이었던 나는 자리에도 없는 선정이를 들먹였다. 그래야 예상보다 낮은 점수로 인해 우울한 내 맘이 친구들에게 먹힐 것 같았다. 부러움과 시기심, 그리고 좌절된 마음. 그래, 그때였다. 우리 그냥 다 같이 죽어버리자는 어떤 목소리가 너울처럼 우리를 묶었다. 바닥에 뒹굴고 있던 공기알들을 대강 몰아넣고 모두 가방을 둘러멨다. 웬일로 여섯 명의 마음이 하나 되었던 날이다. 보이지 않는 질투와 경쟁으로 은근히 당을 짓던 열세 살 여자애들에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만화 영화보다 청소년 영화를 훔쳐보는 걸 열세 살의 자격쯤으로 생각했던, 그래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같은 영화에 눈물을 흘리던 때였다. 뭔가 외치고 싶었다. 세상은 성적순으로 우리를 줄 세우고, 어른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만을 좋아했으며, 우리의 존재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학교 정원에 서 있는 이승복 동상을 지나다가 다시 돌아보았다. 하늘을 향해 뻗은 작은 주먹에서 힘이 느껴졌다.
물살에 흔들리는 수초 같았다
난간도 없는 콘크리트 바닥, 5미터 남짓한 높이의 다리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검푸른 하천물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이끼가 잔뜩 낀 돌들이 수면의 파장을 따라 넘실거리고 있었다. 책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은 우리는 손을 잡고 다리 끝에 섰다.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뛰어내리는 거야. 우리 중에 가장 기 센 현정이가 결연한 눈빛으로 말을 꺼냈지만 다리 끝에 서는 순간, 단단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없었다. 마구 자란 수초들이 물살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뱃속에서 올라오기 시작하는 긴장감을 떨쳐버리려 큰 소리로 외쳤다. 하나, 둘, 셋!
조용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발이 안 떨어졌다. 모두 그랬나 보다. 뭐야.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서서 헛웃음을 웃었다. 맥이 풀렸다. 하늘은 유난히 푸르렀고, 햇살은 눈부셨으며, 바람은 선선했다. 바람결에 친구들의 잔머리가 흩날렸다. 고요한 오후였다. 우리, 이렇게 가면 엄마, 아빠가 너무 슬퍼하시지 않을까. 유서를 남기자는 내 말에 모두 동의했다. 책가방을 무릎 위에 올린 후 받침을 삼고, 수첩을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를 위해 슬퍼할 사람들을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딸을 잃은 부모들은 통곡을 했고, 꽃다운 나이에 가버린 어린 소녀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조용하던 시골동네에서 일어난 이 비통한 일은 9시 뉴스에 보도되고 있었다. 울고 있는 엄마, 아빠 얼굴이 떠오르자 살짝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다가 두 살 위인 오빠 얼굴이 떠올랐다. 오빠는 표정이 없었다. 궁금했다. 내가 사라지면, 오빠는 울까? 뭐, 이런 상상을 해가며 글을 쓰는데 생각보다 쓸 말이 없었다. 다들 그런 눈치였다.
아이고! 너거 요 앉아서 머하노? 공부하는갑네. 그것들 참 이쁘다야. 다리를 지나시던 할머니 한 분이 가던 길을 멈추고 말을 거셨다. 그 말이 하도 요란하여 고개를 들었다. 머리에 수건을 둘러쓴 할머니 한 분이 웃고 계셨다. 해를 등지고 선 할머니의 얼굴이 그늘져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람. 살짝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할머니의 등을 한참 쳐다보았다.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고, 한 김 식어버린 탓에 뛰어내릴 용기는 사라졌다. 쪽지를 남기고 나서도 미적거리는 우릴 제치고 다시 불을 지핀 건 지영이와 정아였다. 하기 싫음 하지 마라! 뛰어내리는 게 안 되면 나라도 들어갈 거야. 지영이가 먼저 신발을 벗고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 씩씩거리듯 정아도 뒤따랐다. 정말로 가는 거야? 야! 야! 그러지 마. 호정이는 둘을 따라가며 만류하듯 소리쳤다. 수영을 못하는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동동거렸다. 물가에서부터 천천히 걸어가던 지영이는 헤엄치듯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그러곤 푹 하고 머리를 담갔다. 꺅! 호정이가 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터뜨리는가 했는데 이내 젖은 머리가 수면 위로 뽕 하고 솟아올랐다. 애들아~! 하나도 안 깊어. 발을 딛고 일어선 지영이의 허리짬에서 물이 찰랑거렸다. 머리끝에서부터 지영이 얼굴을 타고 내린 물은 턱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그런 몰골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지영이의 모습에 모두 깔깔 거리며 고꾸라졌다. 배꼽을 잡고 웃어대던 열세 살 소녀들의 웃음이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내친김에 모두 멱을 감고 놀았다.
배가 고팠다. 옷은 젖었고, 이렇게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아쉬웠다. 우리 집에 갈래? 호정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좋아! 라면 끓여 먹자. 김치만 있으면 되지 뭐. 호정이의 형편을 아는 우리는 호정이 마음이 변하기 전에 맞장구를 쳤다. 어른이 없는 집이 필요했다. 다들 무슨 라면 좋아해? 난, 계란 안 넣은 라면! 그래야 국물이 깔끔해. 마지막에 파도 좀 넣으면 시원하고. 흥분한 목소리로 현정이가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도! 나도! 하는 소리가 났다. 파는 끔찍이 싫어하고, 계란을 국물에 휘리릭 풀어서 먹는 나로서는 도무지 동의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분위기를 깰까 봐 그냥 잠자코 있었다. 그게 같은 편으로 살아남는 열세 살 소녀들의 방식이었으니까. 호정이네 집은 좁은 골목길을 얼마쯤 지나서였다. 작은 마당이 딸린 옛날 집은 아무도 없는지 조용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강아지 한 마리가 마루 밑에서 나와 꼬리를 흔들었다. 병이 들었는지 눈 주변이 지저분했다. 강아지가 내 곁에 올까 봐 친구 등 뒤에 바짝 붙어 마루로 가 앉았다. 햇볕에 데워진 마루는 아직도 따뜻했다. 젖었던 옷이 반쯤 말라 있었지만 우리가 앉은 곳은 동그랗게 자국이 남았다. 몇 명이 라면을 끓이러 부엌에 들어간 동안, 남은 우리는 마루에 찍힌 물 자국이 스르륵 사라지는 걸 보며 깔깔댔다. 곧, 호정이가 양은 냄비의 손잡이를 행주로 감싸 쥐고 나왔다. 라면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다. 마루 한쪽 구석에 쌓인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전화번호부를 찾아 던지듯 마룻바닥에 놓았다. 이미 냄비받침대로 쓴 흔적이 있었다. 호정인 마루에 놓인 키 작은 냉장고 문을 열며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신 김치랑 식은 밥 조금 있는데 먹을래? 내 키보다 작은 냉장고 안에 정말로 반찬통 하나와 공깃밥 한 그릇만 있어서 놀랐지만 반가운 눈빛으로 반찬통을 건네받았다. 반찬통을 열자, 먹다 남은 김치에서 강렬한 냄새가 났다.
그날에 먹은 라면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언어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밥 먹는 것이라면 고역으로 생각했던 내가, 김치라면 질색이었던 내가, 신 김치 한 조각 더 먹겠다고 젓가락질 싸움을 하고, 면발 한 젓가락 더 먹으려고 냄비 속을 휘젓고 있었다. 순식간에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면발과 주홍빛 라면 국물이 주는 미각의 즐거움은 곧, 살아있음의 즐거움을 알게 했고, 물살을 향해 던지려 했던 열세 살의 마음은 물결처럼 꼬불거리는 면발 앞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식사다. 그때의 면발이 여전히 기억 속에서 탱탱하게 살아 있는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