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결핍 속에 있는 아이를 만나는 일은 여전히 나를 흔들어 놓는다
민철이는 우리 반 부진아였다. 5학년임에도 한글을 읽고 쓰는 것조차 어려운 기초부진이었다. 학기 초 아이의 집을 방문했을 때, 시대를 거슬러 70년대쯤으로 온 것은 아닌가 내 눈을 의심했었다. 앞서 걷는 녀석의 속도를 쫓아가기에 벅차 아이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는지 모른다. 그러면 아이는 웃음을 깨문 채 못 이긴 척 나를 기다려주었다. 말할 때마다 입을 삐죽이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아이는 고작 2학년이라 해도 믿을 만큼 말랐고, 작았다. 끝이 없는 좁은 길은 어느 동네의 가파른 언덕을 올라 소여물과 분비물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멈췄다. 쓰러져가는 한옥. 격자무늬의 나무 창살에 누렇게 뜬 창호지는 툇마루에 앉아 계신 할머니의 머리칼 색과 비슷했다. 좁은 마당 한 켠에 우람한 소 한 마리가 짚을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었는데 아이의 집에서 그럴듯해 보이는 유일한 재산 같았다. 아이의 온전한 양육자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할머니뿐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정신이 온전치 못했고 아이의 삼촌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는 유명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아이는 늘 반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놀림거리가 되곤 했지만 가끔은 제 논리로 주먹을 불끈 쥐고 대들기도 했다. 아이의 주먹을 겁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업 중 아이는 없는 아이처럼 조용했다. 간혹 입술을 삐죽 내밀거나 머리를 긁적거리거나 열심히 연필을 움직이긴 했다. 맞춤법이 틀린 글씨가 또박또박 진하게 공책을 눌러 뒷장에 음각처럼 새겨졌다. 운동감각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땀이 날 만큼 밖에서 움직이는 걸 좋아했다. 제 차례가 되면 누구나 싫어하는 화장실 청소를 싱글벙글 웃어가며 기가 막히게 잘 해내던 아이였다. 아이는 방과 후에도 집에 가지 않고 항상 교실에 남았다. 아이를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부진아 지도라는 이름으로 남겨 공부를 시켰다. 수업이 끝나면 당연한 듯 내 책상 옆에 책가방을 내려놓는 아이. 아이는 어제 했던 것을 또 까맣게 잊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꺼내 주는 간식을 먹는 행복으로, 나는 간식이라도 줄 수 있어 다행인 마음으로 마주 앉았다.
여름방학이 찾아왔고 연수를 듣느라 출장 중이던 내게 뜻밖의 연락이 왔다. 아이의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가정방문을 갔을 때, 할머니와 대면하던 나를 문짝 사이로 살짝 엿보던 어머니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닫힌 문짝 뒤에 있을 어머니의 존재가 서늘해 자꾸 그쪽으로 눈길이 갔었다. 교장 선생님과 교무 선생님을 모시고 아이의 집을 찾았다. 조문이란 걸 생전 처음으로 해 보는 데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선 길이라, 내 마음은 가시방석이었다. 블라우스와 흰색 팬츠, 맨발인 채로 신은 샌들은 누가 봐도 조문에 어울리는 복장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의 집을 아는 사람은 나였고 나는 아이의 담임이었다. 대안을 제시하기에 난 너무 소심한 신규였다. 냄새는 전보다 더했다. 사람의 수고가 닿지 않은 마당은 소 마구에서 흘러나온 분비물 냄새로 진동을 했다. 앞선 교무 선생님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듯했다. 초상집이 아닌가 했다. 조문객도 없이 조용한 그곳을 쇠파리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따가운 여름 볕에 데워진 디딤돌을 오르며 내 마음도 알 수 없이 뜨뜻해졌다. 툇마루로 올라설 때쯤 향을 태우는 냄새가 났다. 어두운 방 안, 아이는 슬픈 건지 알 수 없는 기색으로 우두커니 방구석에 서 있었다. 삼베로 된 상복은 아이에게 너무 컸다. 새까만 얼굴이 더 작게 보였다. 오른팔에 채운 완장이 덜렁거렸다. 때마침 쇠파리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와 주변을 성가시게 했다. 교장 선생님께서 대표로 분향을 하시는 동안에도 맨발로 선 내 발이 부끄러워 눈은 계속 아래로 갔다. 얼른 내려가고 싶었다. 다행히 같이 간 교장 선생님과 교무 선생님이 몇 마디 말로 위로를 표하고 급히 신을 신으셨다. 난 그 뒤를 아이처럼 졸졸 따라나섰다. 오는 길에 계속 마음이 덜컹덜컹했다. 어쩌자고 아이를 한 번 안아주지도 못하고 나왔을까.
그날 저녁에 잡혀 있던 직원회식이 당연히 취소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 일은 없었다. 안 간다고 말하면 그만이었을까. 나는 신규였고, 너무 어렸다. 복잡한 마음인 채로 회식 자리에 앉았다. 내 앞에 계시던 선생님이 왜 기운이 없냐며 이 반찬 맛있다 먹어보라 하셨다. 콩잎지가 담긴 접시가 내 앞에 왔다. 고춧가루 양념이 얹힌 노랗고 투명한 콩잎지였다. 완장을 찬 민철이의 표정이 떠올랐다. 슬픔조차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고 섰던 그 아이처럼 나도 어리숙하게 콩잎지나 쳐다보고 있었다. 콩잎지가 흐릿해졌다가 선명해졌다. 입술을 꾹 깨물었다. 교사가 된 걸 처음으로 후회한 날이었다.
2학기, 민철이는 언제나처럼 같은 모습으로 학교로 돌아왔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나라고 아이에게 달리해 줄 것도 없었다. 아이를 보면 그저 마음만 먹먹했다. 아이가 6학년이 된 다음 해까지 우린 같은 반이었다. 아이는 여전히 부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으며 우린 서로에게 익숙해진 채로 비슷한 날들을 보냈다. 계절은 빠르게 지났다. 또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동네 저수지라 했다. 동네 형과 멱을 감으러 들어간 아이는 차가운 물속에서 눈을 감았다. 한낮에 벌어진 이 끔찍한 일을 알게 된 건 늦은 오후, 어느 학부모의 전화 한 통 덕분이었다. 전화를 끊을 때쯤 내 목소리가 무지하게 떨렸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며칠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자꾸만, 보지도 못한 아이가 떠올랐다. 뜨거운 태양 아래 눈부셨을 그 물빛과는 상관없이, 수면 위로 떠 올랐을 아이의 주검이 계속 떠올랐다. 같이 있던 아이가 집으로 가서 119에 신고를 하고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2시간이 지난 후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철저하게 혼자였을 아이가 너무 가여워 꺼이꺼이 울었다.
장례식도 없었다. 아이의 집을 혼자서라도 찾아가야 하는 건지, 가서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물 쭈물거리다 시간이 흘러버렸다.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아이의 죽음이 거짓말처럼 여겨졌다.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민철이가 왜 안 오지. 유난히 민철이와 자주 다투던 녀석이 한 마디를 꺼냈다. 금기의 말을 꺼낸 듯 반 아이들이 눈치를 주었고 민철이의 죽음을 뒤늦게 안 아이는 믿기지 않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민철이와는 다른 면에서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던 아이였다. 민철이를 제일 괴롭히기도 했지만 제일 가깝기도 했기에 민철이의 죽음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 해가 마무리될 즈음 6학년 졸업앨범에 들어간 단체 사진에 있는 민철이를 보았다. 2년마다 5, 6학년이 함께 가는 수학여행이라 사진에서 민철이를 지울 수 없었다. 단체 사진에는 새까만 민철이가 왼쪽 구석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생의 고단함을 덜어주고 싶어서 한 해 먼저 간 엄마가 데려간 건 아니냐고, 어쩌면 아이에게 잘된 일인지 모른다고 누가 그랬다. 잘된 일? 잘된 일. 나는 아이의 까맣고 마른 얼굴을, 기분 좋을 땐 입가에 하얗게 거품이 생기도록 재자대던 아이를 떠올리며 그 말을 몇 번이고 굴려보았다. 부족한 아이 잘 부탁한다며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네 장을 내 손에 던지듯 주고 돌아서던 할머니는 도대체 어쩌고 계시는지, 나는 내내 그냥 무기력했다. 지금쯤 그 아이를 만났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달라졌을까. 철저히 결핍 속에 있는 아이를 만나는 일은 여전히 나를 흔들어 놓는다. 때로는 슬픔조차 위로받지 못한 아이의 상황이 온전히 내 책임같이 여겨지기도 했다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에 무기력도 했다가.
16년 만에, 우연히 아이의 이름을 다시 들었다. 2020년 6월, 친할머니의 빈소에서 일을 거들면서였다. 아버지를 찾아오신 조문객 한 분이 상을 차리는 내게 민철일 아냐고 물었다. 내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더니, 아이가 살던 동네 교회에서 아이를 가르쳤던 적이 있다 했다. 아버지로부터 내가 근무했던 학교와 상황을 듣고 하시는 말씀이었다. 민철이 죽은 거 알죠? 민철이가 그때 저한테 그랬거든요. 우리 선생님이 너무 좋다고요. 그러면서 일행에게 아이에게 일어난 자초지종을 이어가시는 동안 나는 얼른 접시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목울대가 시큰해 계속 침을 삼켰다. 하얀 이가 드러나게 웃던 새까만 민철이가, 계속 둥둥 떠 있다. 보지도 않은 아이의 주검이 머릿속에 계속 둥둥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