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눈을 피해 움직이던 우리의 감정들
마지막 수업이 늦게 마무리되는 바람에 아이들은 청소도 제대로 못하고 교실을 떠났다. 갑자기 조용해진 교실에는 아이들의 흔적이 나뒹굴고 있었다. 주인을 잃은 연필들과 부러진 연필심들, 시커먼 지우개 가루, 그리고 오늘 나눠줬던 활동지도 몇 장. 그것을 갈무리한 후 책상마다 소독제를 뿌린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허리를 낮추어 닦는다. 코로나 시대에 추가된 교사의 일. 그 일을 하면서 아이들의 책상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깨끗하고 밝은 나무색, 매끄러운 단면, 플라스틱 테두리와 철제 다리로 안전하게 마무리된 책상. 높낮이 조절이며 연필이 굴러 떨어지지 않게 설계된 모서리. 아이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책상을 닦으며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보기도 하고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도 한다.
초록색 나무책상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앉았던 책상은 둘이 짝으로 앉아야 하는 초록색 나무책상이었다. 낡은 책상의 상판을 다시 초록색 페인트로 칠한 건지 원래부터 초록색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좁고 기다란 상판의 좌우에는 책상다리를 잇는 나사가 두 개씩 박혀있었는데 대부분의 나사못은 위로 쑥 잘도 빠져나왔다. 가끔 내 신체 크기와 안 맞아 무릎이 책상 상판을 들어 올리면 헐거운 나사못과 함께 상판도 따라 올라왔다. 은빛이 사라진 녹슨 나사못은 손을 하도 많이 타 만질만질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 위를 진한 연필심으로 새까맣게 색칠하기도 했다. 온전한 책상은 거의 없었다. 자주, 나사가 하나 도망간 책상을 만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굳이 그 자리에 연필을 꽂아 넣고 돌려 한쪽 구멍을 더 크게 만드는 장난을 쳤다. 간혹 나사 구멍이 아닌 곳에 구멍이 뚫린 책상도 있었다. 제법 두툼한 책상 두께를 뚫고 기어이 새로운 구멍을 만들어 놓은 책상이 내 자리가 되는 건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몹쓸 장난의 주범이 한 명이 아니라는 점에서 따질 수 있는 일도 아니거니와 수십 시간의 인내와 수고로 완성된 공동작업의 결과물에 겸손해지기도 했다.
공부했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책상의 본질은 효과적인 학습 성취를 위한 물리적 공간이겠지만, 사실 책상에 앉아 공부했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빨간 다이아몬드 색연필 껍질을 반복적으로 벗기며 채점에 바쁘신 선생님의 손놀림과 검사를 받느라 길게 줄을 서 기다리던 아이들, 그리고 그 사이 선생님의 눈을 피해 움직이던 우리의 감정들이 더 진하게 기억난다. 책상은 짝과의 치열한 영역 설정으로 경계를 세우던 장소이자 비밀스럽게 놓고 간 쪽지를 확인하는 희열의 공간이기도 했고, 다리에 쥐가 나도록 벌을 받던 고통의 장소이기도 했다.
동성끼리 책상을 쓰다가도 한 번씩 남학생-여학생 짝이 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남학생들에게 누구와 짝이 되고 싶은지를 묻곤 하셨다. 평소엔 어렵기만 했던 선생님의 다정한 말투에 긴장이 풀린 남학생들은 누구, 누구 이름을 대기도 했고 선생님은 흥미로운 표정이 되어 그 이유를 묻곤 하셨다. 속에 있는 이유를 폭죽처럼 터뜨리는 남학생들의 대답을 들으며 선생님은 교실이 떠나갈 듯 웃기도 하셨다. 그 속에서 내 이름이 들리는가 싶으면 귓불이 달아올랐다.
평소 내게 짓궂게 굴던 현호가 내 이름을 지목했다는 게 이상했지만 다음날 정말로 현호와 짝이 되어 앉았다. 그 애는 꼭 나를 골려주려고 작정한 아이 같았다. 우린 책받침으로 어림하여 잰 책상의 절반쯤에 반듯한 선을 그어 38선이라고 표시했고 잘못해서 넘어오는 것은 모두 땅 임자가 가지기로 약속했다. 현호는 번번이 선을 넘어오며 장난을 걸었고 나 역시 질세라 넘어오는 지우개와 필통에 연필로 주욱 선을 그어댔던 것 같다.
현호는 수학에 꽝이었다. 선생님은 수학 시간에는 맹꽁이처럼 앉아있는 현호를 무안하게 다그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현호는 평소와는 딴사람 같이 조용해졌다. 38선을 넘는 법도 없었다. 그러면 나는 덩달아 어색하고 무안해져 현호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면 우리는 선생님이 내주시는 수학 문제를 풀고 검사를 받으러 나가야 했다. 그날 난 일찌감치 문제를 푼 다음 선생님께 검사를 맡고 돌아와 다른 친구와 조용히 놀고 있었다. 웬일로 현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열심히 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선생님 옆으로 줄이 길어지는가 싶었고 선생님의 빨간 색연필도 점점 줄어드는가 싶었는데 선생님이 고개를 들다 현호를 보시더니 한참을 가만히 계셨다. 안경 너머로 미간을 좁혀 현호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데도 현호는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얼른 자세를 고쳐 앉고 현호를 툭 치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선생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셨기 때문이었다. 소곤대며 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눈이 모두 선생님을 향했다. 현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고개를 숙여 연필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다른 공책을 보고 자기 것에 옮겨 적는 것 같았다. 순간 내 머릿속이 어지러워지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디서 많이 본 글씨다. 또각또각 선생님의 딱딱한 표정과 발걸음은 내가 앉은 뒤에서 멈췄고 선생님의 손은 현호 앞의 공책을 낚아채갔다. 고개를 올려다보지도 못한 채 선생님의 존재를 느꼈던 그 시간이 너무 오싹했다. 1, 2, 3... 얼마간의 정적이 지나고 번개가 쳤다. 내 머리에 두세 번 부딪히는 공책의 힘. 동일하게 현호의 머리를 내리치던 공책은 우리 책상 위로 팽개쳐졌다. 공책에 적힌 이름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내 것이었다. 아프거나 부끄러운 것도 없이 내 눈은 동그랗게 커지기만 했다. 왜 내 공책이 여기에 있는지 나도 모르겠는데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이 자리로 돌아가셨다. 얼굴이 벌게진 현호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나는 공책만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엉엉 울었을 것 같은데 너무 억울해서인지 내 심장은 압력솥처럼 씩씩거리고 있었다. 난 현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현호도 아무 말이 없었다. 38선은 조용해졌고 앞자리에 앉은 혜영이는 둘이 휴전 중이냐고 놀렸다. 시간이 흐르고 짝이 또 바뀌었다.
토요일 점심, 슈퍼에서 라면을 사고 나오던 길이었다. 즐겨먹던 신라면을 옆구리에 끼고 가다가 현호와 마주쳤다. 라면을 뒤로 살짝 숨겼던 것 같다. 현호는 못 본 척 땅을 내려다보며 지나쳤다.
주말을 지내고 온 학교는 여전히 왁자지껄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공기놀이를 하는데 멀찍이서 현호 목소리가 들렸다. "야~너네는 무슨 라면 좋아하냐?" 안성탕면이지! 너구리! 삼양라면! 남자 애들 무리가 좋아하는 라면을 말하기 바빴고 한참을 어쩌고 저쩌고 라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신라면 맛있냐?" 현호 목소리이었다. 순간 바짝 신경이 쓰였다. 종이 울렸고 아이들은 모두 후다닥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날 청소시간이 끝나고 책상 서랍을 정리하는데 쪽지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연습장 한쪽을 찢어 접은 작은 종이에는 휘날린 것 같은 글씨가 적혀있었다. 나도 신라면 맛있더라...
난 가끔 내 눈에 보이는 아이들의 행동과 결과를 놓고 잔소리를 꺼내려다가도 한참 아무 말 없이 아이들을 쳐다보곤 한다. 혹시나 내가 모르는 일로 아이를 다그치는 건 아닌지, 내게 보이는 것이 아이들 세계의 전부가 아닐 텐데 하면서 말이다. 내가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아도 정작 아이들은 자신들의 세계에서 부딪히고 흔들거리며 성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말을 아끼고 더 많은 시선을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