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딸기
“뭐가 그리 빠르니? 조금만 쉬었다 가자.”
5월의 햇볕은 제법 따가웠지만, 산들바람이 시원했다. 모처럼 둑을 걷고 언덕을 오르는 기분은 상쾌했다. 하지만 20분을 넘게 걸어도 마을이 나타나지 않자, 차를 가져올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길 중간중간 바퀴 자국과 지푸라기가 섞인 흙덩이가 말라붙어 있는 걸로 보아 농기계가 다니는 길인 것 같았다. 미선은 결국 길가에 보이는 넓적한 바위 위에 풀썩 걸터앉았다. 아이는 저만치 앞장서 가다가 슬금슬금 미선에게로 폭을 좁혀 오고 있었다.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오는 아이. 새까만 얼굴 때문에, 치아가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어! 뱀딸기다!”
아이는 미선에게 다가오다가 풀밭 사이에서 발갛게 익은 뱀딸기를 발견하고는 허리를 숙였다.
“안돼! 뱀딸기는 먹는 거 아니야!”
미선은 아이를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뱀 나온다, 가까이 가지 마래이. 뱀딸은 먹으면 탈이나. 어릴 때 뱀딸기를 보면 어른들은 그렇게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어린 미선은 뱀딸기가 보이면 도망쳤다. 근처에 독기를 품은 뱀이 똬리를 틀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선의 만류에도 아이는 손을 뻗어 열매를 똑, 똑 땄다.
“슨생님, 이거 약이라예. 먹어도 되는 거라예.”
아이는 열매를 쥔 손바닥을 미선의 눈앞에 펼쳐 보이며 말했다. 아이의 손을 탄 열매는 작고 빨간 알갱이들을 후두두 떨어뜨리며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약이라고? 뱀이 먹는 딸기 아니었어?”
미선은 눈을 크게 뜨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우리 옴마가 전번에 기침을 마이 했는데 이거 달여 묵고 나았으예. 이기 약이라예. 근데 맛은 없어예. 안 죽어예.” 하며 한입에 훅 그것을 털어 넣었다. 아이의 목소리가 이렇게 크고 씩씩했었나. 맛없다는 시늉으로 입을 쩝쩝거리며 웃는 아이를 보며 미선은 생각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니?”
미선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말했다. 바람을 따라 흙먼지가 날렸다.
“이제 다 왔으예. 바로 요 앞이라예.”
아이는 입술을 앞으로 쭉 내밀며 말했다. 입이 말랐는지 하얀 침이 입가에 거품처럼 일었다. 언덕을 내려가자 곧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이런 곳에 마을이 있다니. 전쟁이 나도 모를 것 같았다. 시절을 뒤로 돌려놓은 듯한 촌락의 모습에 미선은 눈을 껌뻑거렸다. 아이는 돌담길을 따라 걷다 어느새 골목길로 몸을 틀어 보이지 않았다. 미선은 아이의 꽁무니를 놓칠세라 걸음을 재촉했다. 돌담길 아래로 고양이 한 마리가 느긋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좁은 골목은 가파른 오르막길로 이어져 있었다. 미선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