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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momo Aug 28. 2024

믹스커피


“미선샘! 바빠? 커피 한 잔 하자.”

옆반 지은샘이 앞문을 열고 얼굴을 빼꼼 내밀며 말했다. 할 일은 많았지만, 미선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따라나섰다. 지은샘은 고작 한해 선배였지만 살갑게 사람을 챙기고, 배울 점도 많아 한참 위로 느껴졌다. 학년 연구실에는 이미 두 분 선생님이 차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지은샘은 믹스 커피를 흔들어 보이며 미선의 눈을 바라봤다. 미선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아, 이놈의 믹스커피는 진짜 못 끊겠다니까요. 아침에 교무샘이 내려준 커피를 마셨는데도 뭔가 허전한 거 있죠?”

지은샘은 믹스커피를 뜯으며 말했다.

“그거, 당 떨어져서 그런 거야. 요새 젊은 사람들은 믹스커피 입도 안 대던데 둘은 참 특이하다.”

한참 연배가 높은 3반 선생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러게, 작년에 우리 동학년 샘은 항상 아이스커피를 들고 다니는 거야. 뭐, 얼죽아? 내가 그 말을 처음 배웠다. 그것도 꼭 출근 전에 테이크아웃해서 먹어야 하루가 잘 풀린다나. 그래도 칼같이 출근 시간에 맞춰 들어오는 거 보면 신기하더라.”

1반 부장 선생님이 거들었다.

“MZ세대, MZ세대 하시는데 저는 거기에 공감이 좀 안 가요. 제가 아무래도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가 봐요.”

미선이 입을 열었다.

“시골에서 자랐다고 뭐 그럴까, 그냥 샘이 순진하니, 성격이 그런 거지. 저는 어릴 때 할머니랑 같이 자랐거든요. 할머니가 꼭 식사하시고 나면 이걸 타 드셨어요. 제가 좀 크니까 저보고 타오라고 시키셨는데, 잘 탔는지 한 번씩 간 보다가 반했잖아요.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쯤이었을걸요?”

지은 샘이 간 보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미선은 주변 분위기를 유쾌하게 하는 지은 샘의 말재주가 부러웠다. 한바탕 웃음이 지나가고 난 연구실은 또다시 어두워졌다. 학교 안팎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3반의 주현이 이야기며, 하루가 멀다 않고 민원전화를 하는 1학년 학부모 이야기로 흘렀다가, 학군지의 중요성으로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마지막은 연금 수령이 가능한 날까지 잘 버텨보자는 응원과 다짐으로 끝났다. 선생님들의 하소연 틈 사이에서 미처 말을 꺼낼 수 없었지만, 미선은 내내 자기 반 현수가 떠올랐다.

"자, 자. 또 일하러 가자. 미선샘, 평가지 수정해서 제출했어요?"

"아, 이제 한 과목 남았어요. 살펴보고 지금 바로 제출할게요."

 미선은 남은 믹스커피를 한 입에 털어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연구실 문을 열고 나선 선생님들은 각자의 교실로 쏙쏙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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