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이름은 김영희. 그 시절 가장 흔했던 이름이다. 내 어릴 적, 국어 교과서에도 볼 수 있었던 이름. “영희야 안녕?”
“영희야 놀자!”
교과서에 엄마 이름이 나올 때마다 웬일인지 나는 오금이 저렸다. 교과서에 나오는 영희와 우리 엄마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았다. 단정하게 미소 짓고 있는 영희를 보며 우리 엄마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과연 있기나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에게서 내가 보지 못한 어린이 얼굴을 유추해 내기란 무척이나 힘들었다. 엄마의 얼굴을 한 어린이가 멜빵 치마를 입고 뜀박질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이었다. 양갈래로 땋은 머리칼은 더더욱. 엄마는 언제나 뽀글뽀글 아줌마 파마가 옳았다.
“너네 엄마 이름은 뭐야?”
여덟 살 가을. 동네잔치나 다름없던 가을 운동회를 위해 대형 연습을 하던 날이었다. 행진곡에 맞춰 활기차게 손을 앞뒤로 흔들고 발맞춰 걷다가도 필시 어느 편에서 대형이 흐트러지기 마련이었다. 선생님의 호령이 떨어지고, 대형이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면 처음의 가벼웠던 발걸음이 무거워지며 몸이 점점 땅으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모두 제자리 앉아!”
마이크를 잡은 선생님도 지친 기색으로 잠시 휴식을 선포하시면 우르르 화장실로 달음질하는 무리가 있었고, 그들이 일으키는 뿌연 먼지 속에서 코와 목이 칼칼해졌다. 나는 뙤약볕 아래서 정수리가 뜨끈뜨끈한 걸 느끼며 운동장 바닥에 철퍼덕 앉아 손장난이나 했다. 무슨 이야기 끝에 나왔던 질문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친구가 엄마 이름을 물었다.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이름은…”
갑자기 엄마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가 하얘졌다. 아무리 엄마 이름을 떠올려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버퍼링 걸린 화면 마냥 암울하고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이런 사실이 당황스러워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한참 뜸을 들이다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마침 “전체 일어 섯!”하는 선생님의 구령이 떨어져 위기를 모면했다. 엄마 이름을 말하지 못한 충격이 컸던지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딴청 부리며 흙먼지를 일으키던 손, 그리고 뽀얗게 일던 흙냄새까지. 어쩌면 엄마 이름이 기억 안 날 수 있지? 어쩌면 그렇게 쉬운 이름을 까먹을 수 있지? 난 한동안 내가 정말 바보라고 생각했다. 저녁에 아빠한테 딴청 부리다 엄마 이름을 알아냈다.
“김영희지. 엄마 이름은 김영희.”
그래. 엄마는 김영희지. 너무나 당연했던 그 이름이 반가웠다. 엄마에겐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