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by 꿈꾸는 momo

“엄마, 시집살이는 어땠어요?”


가끔 내가 물어보면 엄마는 “고됐지, 뭐, 그때 다 그랬지.” 했다.


“지금은 도시지만 아빠가 창원에 발령 나서 세 얻어 살았지. 주변은 허허벌판에 아는 사람도 없고, 애만 보며 살았어. 그런데 어느 날 새벽에 아기가 깨서 막 우는 거야. 왜 우나 싶어 일어나는데 머리가 어질어질 한 거야. 연탄가스였어. 그때 생각하면 아찔해.”


세상에 먼저 나온 오빠가 진심으로 기특했던 순간이었다. 오빠가 울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갓난아기와 함께 어지러웠을 그 고비가 참으로 난감했겠다. 그래서인지 이 셋방살이는 얼마 가지 못했다. 아빠는 본가 쪽으로 근무지를 이동했고, 동시에 엄마의 진정한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시부모뿐 아니라 결혼 안 한 작은 고모, 두 명의 삼촌 밥까지 해야 하는 대가족 살림꾼이 된 것이다.


“돌아서면 밥이었어. 너 임신하고 입덧이 심해서 밥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는데 어쩔 수 있나. 그때 세끼 밥이 전부였으니까. 아빠는 출장 가면 늦고, 과일 하나 먹고 싶어도 사 올 줄을 몰랐어.”


외할머니 증언에 따르면 엄마는 어릴 때부터 밥보다 간식을 좋아했다고 했다. 그래서 알밤, 곶감, 감자라도 늘 챙겨두었다고 했는데, 아빠가 자라온 환경은 세끼 밥 챙겨 먹기도 빠듯했단다. 엄마는 속으로 꽁꽁 참다 어렵게 말을 꺼냈다고 했다.


“여보, 내가 사과나 간식 같은 게 먹고 싶은데….”


그날 저녁, 아빠는 사과 한 봉지도 아니고, 궤짝으로 사 들고 와 엄마를 놀라게 했다고 했다. 제삿날이나 되어야 맘먹고 장을 봐 올리던 과일을 궤짝으로 사 먹는 게 시댁에선 눈치 보였을 게 빤했다.


“아니, 조금씩 자주 사 오면 얼마나 좋아. 다음에는 부탁도 못 했어. 아빠가 사다 준 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나중에 너희 태어나고 나선 애들 핑계 삼아 슈퍼에 가서 간식도 좀 사 먹고 그랬지.”


아빠의 궤짝 같은 사랑의 표현방식은 꽤나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역할로 학습된 경상도 남자였으니까. 예쁜 간식꾸러미나 꽃다발을 들고 미소 짓는 아빠를 상상하는 것보다는 어색하지 않다. 엄마는 그렇게 집사람, 안사람, 새댁으로 불리며 대식구 밥과 빨래를 하고, 아이를 키우며 20대를 보냈다. 엄마의 20대가 그렇게 지나가버렸다니, 난 괜히 미안하고,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꽃같이 아름다울 그때를 꼭 내가 뺏은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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