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노란, 신부

by 꿈꾸는 momo

외할머니께서 여든 무렵, 혼자 사시던 집을 정리하시고 엄마 집으로 오시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아빠 눈치를 그리 보셨다. 얼마 지나 시골 생활에 완벽히 적응하신 후에야 얼굴이 좀 펴지셨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삐대는 일이 많았기에 외할머니와도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다. 외할머니는 이야기꾼이셨다. 외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곧 엄마와 이어지는 이야기라 늘 재미있었다.


“내가 아직도 좀 맘에 걸려. 너네 아빠 말이다. 내가 결혼을 1년이 넘게 반대했었지. 딸린 식구도 많은 장남한테 딸 못 보낸다고.”


외할머니는 아직도 미안한 맘이 드시는지 쑥스럽게 웃으며 눈을 찡긋했다. 아들을 귀하게 생각하던 시대였는데 다행히도 엄마는 그리 구박받지 않고 산 것 같다. 모난 데가 없는 엄마 성격도 그 때문이구나 싶었다.


축협을 다니던 아빠는 엄마가 살던 지역에 첫 발령을 받았다고 했다. 두 분은 그때 중매로 만난 사이였다. 중매쟁이가 아빠 귀에 대고 처녀 귀가 이상하게 생겼다고 말했지만, 아빠 눈에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단다. 덕분에 난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뜻을 제대로 이해했다. 외할머니의 반대에도 아빠의 구애는 꽤 끈질겼던 모양이다. 결국 엄마의 마음이 넘어왔고, 외할머니도 엄마의 마음까지는 꺾을 수 없었다. 혼례는 외갓집 마당에서 치러졌다. 엄마는 새로 지은 연노란 한복을 입고 혼례를 했다. 흑백 사진 속의 한복이 연노랑인 것을 아는 이유는 엄마가 특별한 날에 입던 유일한 한복이었기 때문이다. 달랑 한 장밖에 없는 결혼사진 속, 엄마는 봄을 누비는 노란 나비 같았다.

친정 근처에 살림을 차렸으니, 엄마는 누구보다 든든했을 것 같다. 머슴 열을 두고 농사를 짓던 기와집 마님이 나의 외할머니였으니. 배만 안 곯고 살았지 해가 질 때까지 일이 끝없다 했던 시절이라도 말이다.


“아, 시어머니가 그리도 영희를 좋아했지. 딸이라고 구박 안 하고, 예뻐했어. 장날, 읍내에 갔다 오는 길에 꼭 네 엄마 신혼집에 들렀다 오는 거라. 영희네 장독이 없더라, 채반이 없더라. 그리 말하면 내가 또 채워 넣었지.”


모자란 살림을 보태주면서 외할머니도 제법 안심이었겠다. 하지만 1년도 안 되어 아버지는 본가 근처로 발령이 났고, 그때부터 엄마의 타향살이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승용차로 세 시간은 족히 걸리는 곳이니 친정에 자주 발걸음하지 못했을 건 뻔했다. 딸을 멀리 보내면서 외할머니는 얼마나 서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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