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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묭 Dec 09. 2019

단편집이라는 가능성

손보미,『그들에게 린디합을』, 문학동네, 2013

「담요」로 시작해 「애드벌룬」으로 끝나는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수록 단편을 어떤 순서로 놓았는지의 문제다.

 소설집의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 「애드벌룬」에서 여자는 “다른 세상에서는 나만 사랑해줄래?”1)하고 묻는다. 그 말에 남자는 그러겠다고 답한다. 그러나 다른 세상, 첫 번째 수록된 단편 「담요」에서 남자는 사실 그 시점은 맞이하지도 못한 채 죽었다. 수록 순서를 바탕으로 「담요」를 원래의 세계로, 「애드벌룬」을 그들이 맞이한 다른 세계라 가정할 때 그녀만을 사랑할 그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약속한다. 이 물음이 독자에게 주는 감정은 사실 「애드벌룬」이 가장 마지막에 오면서 더욱 강화된다. 독자들은 남자가 다른 세상에서는 여자를 만나기도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애드벌룬」 속 약속은 지켜지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여자는 약속해달라고 말하고 남자는 그 약속에 응한다. 이게 부질없는 것일까.  

 셰익스피어의『햄릿』에서 햄릿은 죽어가며, 최후로 되찾은 제정신으로 호레이쇼에게 말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후세에 전해달라고. 정말로 이게 호레이쇼의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 대사로 『햄릿』이 호레이쇼가 우리에게 전달한 이야기일지 모른다고 믿게 된다.

 손보미의 소설은 그런 서사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가능성은 각각 단편만 보았을 때는 알 수 없지만 두 단편을 단편집의 시작과 끝에 배치함으로써 기능하기 시작한다. 가장 작은 이야기에서 가능성의 세계는 가장 넓어지고야 만다.


1) 손보미, 「애드벌룬」, 『그들에게 린디합을』, 문학동네, 2013

"있잖아 약속 하나만 해줄래?" "뭔데?"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그러니까 다른 세상에서는 나만 사랑해줄래?" 그는 가슴이 무척 아팠지만, 그녀를 더 꼭 끌어안은 후 대답했다. "그래, 너만 사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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