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학생 월간지였던 하이틴이라든지 학생과학 등 월간지가 유행을 했었는데그 잡지 후미에는 꼭 펜팔이라고 해서 지역별 나이별 사진과 함께 올라온 여학생 이나 남학생들 또는 30세 이하의 성인들까지도 그곳을 통해 펜팔을 하려고 했는데, 그곳을 통해서 펜팔을 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나도 하고 싶었지만 글 쓰는 재주가 없다 보니 그저 잘하는 친구들이 부럽기만 했었다.
그런데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찾아왔다.
한번은 올라온 여학생의 사진과 이름에 끌려 주소지로 짤게 엽서를 보냈는데 장문의 답장이 온 것이다.
편지를 개봉할 때 정말 심장이 두근거리고 어떤 내용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예상하지 않은 편지가 오니 마냥 좋기만 했다.
특히 나는 엽서로 보냈는데 그녀는 편지로 답장을 보냈다.
그녀는 상업고 1학년이고 문학을 좋아해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자취를 하고 있다고 했다.
충남의 시골마을의 상업고 회계과 1학년이라고 한다.
중학교 때 공부를 좀 잘했는데 당시에 그 상고에 들어가기가 주변에서는 공부 좀 한다는 애들만 가는데 자신도 합격을 해서 입학을 했는데 학교 주변에 친척도 없어 어쩔수 없이 형편은 어렵지만 자취를 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글을 3장의 편지지에 적어 보내왔다.
나름 정성이 있고 글 쓰는 솜씨도 좋았고. 글씨도 예쁘게 적었다.
근데 충격적이었던 것은 잡지에 올려진 사진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얼굴이 못생겨 사진을 보낼 자신이 없어 사진 없이 친구에게 사진을 달라고 해서 친구 사진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나는 믿지 않았다.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편지를 받은 다음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편지가 왔다고 자랑을 했다.
예쁜 글솜씨와 장문의 편지에 부러움들이 보였다.
그리고 당시에는 이런 편지들을 주고받으면 친구들과 돌려보며 히히덕거리고 여학생을 상상하고 놀리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였다.
간혹 내성적인 친구들은 몰래 혼자만 펜팔 한 친구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나도 답장을 보냈다.
운동선수이고 기숙사 생활을 해서 내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등 하소연도 하고 선배들에게 단체로 빳다를 맞는 얘기와 공부는 반에서 골찌 수준이라는 등등을 편지로 보냈다.
이런저런 사연들로 편지를 1년 이상 주고받고 하다가 만날 기회가 왔다.
마침 그곳 주변으로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대회에 참가하면 걸스카웃 여학생들이 봉사도하고 결승테이프를 잡고 있거나 운동장일 경우는 학생들을 동원해서 응원도 하고 구경도 오고 했었는데 그때 그녀도 응원하러 왔다.
원래는 그 학교는 응원 동원에 해당되지 않았는데 그녀는 단임 선생님께 집에 일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나를 보러 왔다고 한다.
만나고 보니 내가 1년 동안 상상하고 기대에 차 있던 얼굴과는 확연히 달라서 살짝 실망을 했다.
안경을 쓰고 있었고 살짝 통통했다. 키는 여학생 치고는 좀 컸다.
근데 그녀는 그날 소풍을 가는 것처럼 김밥과 반찬을 정성스럽게 싸왔고 나름 기대치가 높았는지 한껏 들떠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그날 대회에서 학년별 입상을 해서 자랑할 수 있었다.
대회 후 학교 숙소로 돌아와서는 선배들에게 죽도록 맞았다.
허락 없이 이탈했고 선배들이 참가할 때 후배들이 짐도 받아주고 이것저것을 챙겨줘야 하는데 그녀 때문에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동부 숙소에서는 기합도 체벌도 개인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한 명이 잘못해도 연대책임으로 단체로 체벌을 하는데 그때는 나 때문에 단체로 빳다를 맞아서 정말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첫 만남에는 상상과 다른 얼굴을 보고 실망도 했지만 그 후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내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 멋있었다고 하며 반했다고 먼저 그녀가 고백을 했고 나를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글들에 나도 공감이 되었고 이해가 되었고 힘들 때는 위로가 되었다.
그 후로도 그녀 하고는 쭈욱 편지를 주고받았고 2학년 겨울방학 때 휴가를 받아 그녀가 있는 곳까지 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아마도 충남 예산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겨울에 버스를 타고 내려갔는데 도착하니 오후 4시쯤 되었다.
당초에는 잠깐 얼굴 보고 다른 데를 가려고 했었는데 시골이다 보니 5시가 넘어서는 버스가 다니지 않아 자고 갈 수밖에 없었다.
참. 난감했다. 주변에 잘 때도 없었다.
갈 때도 없으니 어쩌겠는가. 자취방이 주인집에서 사랑체처럼 살짝 떨어져 있어서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그녀 말고도 몇 명의 자취생들이 있었다. 짐착컨데 이미 다른 방 자취생들은 친구들이 자주 놀러들을 와서 이렇게 오고 가고 하는 다른 방 자취생들에 대해 관심들이 없었는 듯했다.
방에 이불을 따로 깔고 누웠다.
그러나 잠이 오겠는가. 불을 끄지도 않고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다. 남자 친구는 있는지 공부는 몇 등이나 하는지 졸업하면 서울로 대학교 진학하고 싶은지 등 궁금한게 많았다.
그녀도 나를 평가하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뭐 하고 있는지, 대회 가면 몇 등이나 하는지. 여자 친구는 있는지 등 나름 서로 상대를 분석하기에 바빴다.
이렇게 주고받는 질문들이 어느덧 새벽 3시가 되었고 나는 피곤해서 자자고 했다.
드디어 불이 꺼지고 암혹의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잠이 오겠는가. 혈기 왕성한 고등학교 시절에 철 모르고 그곳까지 갔다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가슴이 요동치고 아랫도리가 불끈 힘이 솟았다.
호흡이 거칠어지는걸 간신히 참고 참고하다가 손을 내밀어 그녀에게 보냈다.
그런데 그녀도 잠을 못 자기는 마찬가지였다.
뜨거운 나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으니 그녀의 손도 어지간히 뜨거웠다.
이걸 확인하고 나니 참지를 못해서 잽싸게 그녀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 가슴 위로 올라갔다. 심장이 터질 듯 빨라지고 아랫도리가 송곳처럼 차 올라 미칠 것 같았다.
그녀도 어지간히 긴장했나 보다. 난생처음 남자가 자신의 가슴 위에 올라오니 코에서 나오는 심장의 뜨거운 기운이 밀려 나왔다. 조심스럽게 키스를 하고 그녀의 가슴을 손으로 잡으니 헉~ 하고 가는 신음소리를 냈다.
이미 나는 이성을 잃어갔고 그녀의 바지를 벗겨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자이기에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그녀도 타오르는 몸을 추스르고 나에게 진정하라고 토닥인다. 그리고 약속하라고 한다. 지금 자기와 이렇게 자고 나면 이제 자신은 다른 남자는 못 만나니 영원히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나는 일단 빨리 일을 치러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충 대답하고 다시 그녀 가슴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녀는 말로만 대답하면 못 믿을 거니 글로서 언약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불을 켰다.
불을 켜고 나니 그녀의 볼테기는 터질 듯이 불그스레 상기되어 있었고 옷매무새도 반은 벗겨져 있는 상태라 뽀얀 그녀의 가슴살이 살짝 비쳤다.
나도 이미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있었고 상체는 벗겨진 상태로 그녀가 불러주는 말을 글로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와의 언약의 글을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치는 사이 새벽동이 훤하게 올라왔고 그녀는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하고서는 밖으로 나가더니 들어올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궁금하기도 했지만 잠시 그녀가 들어올 때까지 누워야겠다는 생각에 누웠는데 깜박 잠이 들어버렸다.
몇 분을 잤는지 몇 시간을 잤는지 그녀가 깨워서 일어나니 이미 밥상이 차려져 있고 아침이었다.
아차 기회를 놓쳐버렸다 싶었다.
나는 그날 아침을 먹고 오전에 대전행 버스를 타고가서 대전에서 광주행 버스를 탔다.
광주에 라이벌 친구가 있었는데 그놈과 만나기로 했기에 광주행 시외버스에 내 몸을 실었다.
그리고 그녀와의 아쉬운 하룻밤은 그렇게 홀연히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순진한 처녀, 총각의 하룻밤의 춘몽인 것을 ~~~
그녀 하고는 그렇게 1년을 더 편지를 주고받고 지냈다.
고3 졸업 때 그녀는 약속대로 서울로 대학에 합격해서 올라왔고, 나는 대구의 대학에 운동부로 진학을 하게 되어 그녀와의 인연이 그렇게 조용하게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