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녀들에게 동화책에 나오는 동물들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동물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아쿠아리움에도 데려가서 다양한 바다생물도 보고 스쿠버 다이버들이 바다생물들과 함께 하는 공연도 관람하였다. 재밌게 관람하였고 아이들도 좋아했는데 어딘가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동물들이 좋아서 동물원에 있는 것은 아닐텐데 야생에서 살 곳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리고 생태계가 건강치 못하니 야생에 풀어놓은들 살아갈 수나 있을지 의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태계가 나빠진 것은 동물들의 탓은 아니다. 환경파괴의 주범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제 환경은 자정작용으로 회복하기에는 너무 나빠져서 더욱 혁신적인 해결책을 필요로 하고 있다. 또한 환경파괴로 인한 피해는 인간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함께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동물원은 과연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다. 게다가 동물원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관객몰이를 하면서 동물들의 자유를 빼앗고 있는 것이라면 현재의 동물원의 존재여부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피해를 당하고 있는 동물들은 야생동물들만이 아니다. 가축화되어서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데 깊이 관여되어 있는 동물들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어쩌면 더욱 비참한 상황에 처했는지도 모른다.
영화 '옥자'의 연출을 맡은 봉준호 영화감독은 영화제작을 위해 돼지가 도살되는 현장을 방문하였다고 했는데, 그 현장에서 받은 충격은 영화에서 표현된 것의 10배도 넘는 충격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일부 야생동물들이 인간의 정착생활과 함께 가축화되면서 현재는 끔찍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는 돼지의 경우, 태어난 순간부터 도살되는 순간까지 고작 몇주 동안을 살게 되는데,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움직이는 것조차 제한된다고 한다. 그리고 적당한 무게가 되면 생애 최초로 걸을 수 있게 되는데 그 걸음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이라고 한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를 꼽으라면 아마도 이 사람이 그 후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마하트마 간디이다. 그의 본명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이지만,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위대한 영혼'을 뜻하는 마하트마라는 이름으로 그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인도의 정신적 등불이자 비폭력 무저항 운동의 상징인 그는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에 대해 아름다운 말을 하였다. 한 국가의 위대함의 척도로 약자에 대한 처우를 말한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동물들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The greatness of a nation and its moral progress can be judged by the way its animals are treated. - Mahatma Gandhi
greatness - 위대함
moral - 도덕적인
progress - 진보
the way 는 how로 대체될 수 있음
"한 국가의 위대함과 그 나라의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의해 판단되어질 수 있다. - 마하트마 간디"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에 대한 문제에도 관심이 필요하고 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을 동물원에 데려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간디는 한 국가의 위대함을 이야기했다면, 나는 한 개인의 위대함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한 개인의 위대함은 그의 행동의 꾸준함으로 판단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The greatness of a person can be judged by how his actions are consist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