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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원 Apr 23. 2022

마지막 10개의 주제

끝이 주는 삶의 깊이

죽음을 가까이 앞두고 마지막 힘을 끌어 모아서 쓰고 싶은 이야기를 정하라면, 고를 수 있는 주제들이 무엇이 있을까? 올리버 색스 박사는 이미 많은 글을 썼지만, 삶이 다해가는 마지막 주어진 시간에 10가지 주제를 정해 글을 썼다. 저자의 책들은 한 가지 큰 흐름 안에서 여러 가지 주제들로 쓴 에세이가 많은데,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된 여러 주제들 가운데 하나가 그 책의 제목인 경우가 많다. 그가 죽기 전에 쓴 마지막 에세이집인 [의식의 강]도 10개의 단편 글들 중 하나인 ‘의식의 강’이 제목이 되었다. 이전에 읽었던 그의 책 [모든 것은 그 자리에]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역시 한 책으로 출판된 단편들 가운데 하나의 제목이다. 


색스 박사의 글에는 그의 관심영역이 다채롭게 드러나면서 그 깊이가 깊고, 거기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나는 작가로서의 올리버 색스를 좋아한다. 그는 나의 글쓰기 선생이면서, 글쓰기에 관해서는 나의 영웅이기도 하다. 나는 그처럼 글을 쓰고 싶고, 그의 글쓰기 방식을 배우고 싶다. 비록 어떤 사람들은 그의 글을 읽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고, 읽다보면 금방 책을 덮어버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종종 그의 그런 글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깊이 공감하고 동의하기도 한다.


색스 박사는 분명 자타공인 ‘독서광’이었을 것이다. 그의 글에 묻어나는 지식들이 그 증거가 될 수 있는데, 그는 책을 통해 알게 된 과거의 위인들의 삶을 자주 인용한다. 이번 책에서도 그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을 소개하는데, 대표적으로 찰스 다윈, 지그문트 프로이트, 앙리 푸엥카레, 험프리 데이비 등이 있다. 그는 이런 인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나는 종종 그의 글을 읽으며 그가 인용하는 위인들과 대화하는 것인지 그와 대화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존경하는 인물들의 삶을 깊이 공감하며 그 마음을 담은 글을 써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가 되었다. 이 책에서는 특별히 다윈과 프로이트의 이야기가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삶과 올리버 색스의 삶은 어딘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나 역시 올리버 색스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서만 접해서 나의 느낌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다윈, 프로이트, 그리고 색스 박사 이 세 사람은 닮은 점이 느껴졌다.




나는 그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에세이를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짧은 시간에 모든 순간들을 훑어봤을 그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글에 나와있는 것처럼 속도를 느끼는 것은 항상 똑같은 것이 아니다. 아마도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에는 지나온 모든 인생을 쭉 돌아보게 될텐데, 물리적 시간에 비해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은 아주 느릴 것이고 실제로는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 전 인생을 되돌아보기에 충분한 시간으로 여겨질 것이다. 아마도 죽음을 바로 앞에 두고는 우리의 뇌가 마치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이 모든 기능을 활성화시켜 최후의 빛을 번쩍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장렬하게 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의식의 세계 뿐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한번도 인지하지 못했던 무의식의 세계로의 탐험을 모두 마치고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책.

올리버 색스, [의식의 강] 2018






Photo by Ricardo Roch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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