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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원 Sep 05. 2019

버릴 수 없는 옷

내겐 너무 소름돋는 이야기

  나는 비싼 옷을 사지 않는다. 괜찮은 옷을 사도 그 옷을 아껴가며 오랫동안 입어야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질 않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내가 입었던 옷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구멍이 그렇게 잘 생겼다. 소매 부분이 뜯어지기도 했고, 소매와 몸통의 연결부위라고 할 수 있는 겨드랑이 쪽이랑 등 또는 배 부위에도 구멍이 났다. 그리고 꼭 날카로운 부위에 옷이 걸려 많은 옷을 찢어먹곤 했다. 런 나의 옷입는 습관 때문에 오랫동안 입어본 옷이 없었다.



  그런데 유독 한 벌의 짧은 팔 면티셔츠는 버리질 못하고 있다. 그 옷 역시 배 쪽 부위에 구멍이 생겨서 집에서 잠옷으로만 입고 있는데 그렇게 입은지가 벌써 6년이 넘었다. 그 옷을 버릴 수 없는 건 그 옷이 원래는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이다. 버지는 내가 결혼한 후, 2년이 좀 넘게 지난 2013년 광복절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그 해, 본가에 들러 식사를 했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편하게 입고 있으라며 아버지서 최근까지 입으셨던 티셔츠를 꺼내주셨고 나는 그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옷이 내가 버리지 못하는 바로 그 옷이다.



  버지께서는 지금 9살인 큰 조카만 보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의 자녀들을 만나질 못하셨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우리 가정에도 자녀들이 생기길 기도셨지만 그 기도는 살아계실 때는 이뤄지지 않았다. 버지의 부재는 내가 자녀가 없었을 때에 시작되었고 겨우 그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할 때 선물처럼 우리 가정에 자녀가 생겼다. 막상 자녀가 생기고 나니 아버지라는 존재는 더 큰 그리움으로 내게 다가왔다. 내 아버지는 지금 세상에 안계시고 나는 아버지가 된 상황이었다. 아버지가 직접 손녀를 안아보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지 본가를 방문할 때마다 어머니랑 그 이야기를 했다.



  그 후 더 시간이 흘러 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낡은 티셔츠를 집에서 입고 있었고 항상 괜찮다가도 뜬금없이 떠오르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나를 잠시 멈추게 해 먹먹해진 가슴을 추스르게 했다. 그리고 아버지없이 아버지로 살던 나는 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둘째의 탄생은 우리 부부를 비롯한 가족들을 소름돋게 하였는데 우리 아들은 2017년 광복절에 태어난 광복둥이다. 정확히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4년만에 태어난 아들이었다. 나는 둘째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리고 오늘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아주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랐는데, 국민학교도 입학하기 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아빠에게 숫자 중에 어떤 게 제일 좋냐고 물었을 때 아빠의 대답은 이랬다.


   "럭키 세븐~!"


  아빠는 숫자 7을 좋아하셨는데 우리 아들이 태어나는 그 순간 나는 분만실에 있었던 때가 또렷이 기억난다. 간호사는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핸드폰 액정 화면을 보았고 그 때 보인 시각은 오후 7시 7분이었다. 그렇다. 우리 아들은 2017년 8월 15일 오후 77분에 태어났다. 아빠가 좋아하는 숫자가 저기에는 세번 반복되고 있고 날짜는 아빠를 바로 연상되게 한다. 아빠는 우리에게 손자의 이름을 알려주신 적이 없어서 우리 뜻대로 이름을 지었는데 하늘 건, 빛 휘 라는 한자를 써서 '하늘빛' 건휘라고 이름을 지었다. 휘는 아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을까. 낡고 오래 된 티셔츠로 생각을 계속 하다보니 별걸 다 갖다붙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겐 소름 돋는 이야기가 맞다.



이 티셔츠가 내가 버리지 못하는 아빠의 유품이다. 배 쪽에 구멍이 있다.


PS. 아빠, 보고 싶네요.






photo by Lian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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